[잉그리드의 전주살이-번역본] 마지막 강의 주간
[잉그리드의 전주살이-번역본] 마지막 강의 주간
  • 최수희 번역작가
  • 승인 2017.12.28 1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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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하지 않은 나의 삶이 재미있다. 어떤 학기가 끝나가는 마당에서 나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다. 나와 함께 학기를 보낸 학생들이 떠나고 나면 그들이 정말 보고 싶을 것 같고 다른 해 내가 그들의 기말 시험을 지켜볼 수 있을지나 모른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이번 학기는 조금 슬프다. 수업이나 학생 어느 부분도 싫었다고 말할 수 없다. 대체적으로 학생들의 태도는 매우 좋았다. 비록 몇몇 학생만이 힘들게 했을지언정 말이다. 교과서를 가지고 오지 않은 몇 명을 제외하면 수업 중에 특별히 꾀부린 학생은 없었다. -개강 첫 주 책을 잃어버렸다고 하더니, 그들은 결코 책을 다시 구입하지 않았다. 우리 반은 재수강 신청을 한 학생들이 많았다. -첫 학기부터 가르쳤던 학생들이나 작년에 배우고 다시 수강신청을 한 학생들이다. 한 남학생은 항상 내 강의를 듣는다. 2년간 군대에 갔다가 온 지금은 마지막으로 내 수업에 출석하고 있다. 4학기 모두 회화수업을 받는 셈이다. 성실한 학생임에 틀림없다.
일요일 회화 반 시험문제를 출제했다. 시험유형과 학생 개개인의 구술시험 시간표를 알려주었다. 이번 시험에서는 형식을 조금은 갖추었다. 중간고사 구술시험을 수업과 병행하면서 서둘러 치러야했고 중간고사 주간 내내 나는 병원에 입원해 있었기에, 정상수업을 시작하면서부터 보강수업도 같이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학생들 대부분은 준비를 잘 해주었고 학생 몇 명만이 중간고사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었지만, 한 사람도 낙오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공부할 포인트를 꼭 집어서 말해주었기에 말이다. 중간고사 기간에는 시험에 관한 설명을 반드시 했다. 어떤 학생들은 시험이 너무 쉽다 생각하고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점이 바로 시험을 망치는 이유다. 누군가 설명을 할 때, 완전히 이해했노라고 그들은 말한다. 하지만 이 점 또한 우리가 연습을 시키며 과제를 내주는 까닭이다. 그래야 나중에 기억이 나니 말이다. “So am I" "So did I" 그리고 그 밖의 주제를 가지고 우리는 단락 I 복습을 했다. 심지어 시험에 나올 첫 번째 문항은 단락 I에 나와 있는 것이라고 말해두기도 했다. 그리고 내 말에 따르라고 당부했다. 내게 보답하는 표시로 모두 머리를 끄덕끄덕했는데도, 막상 시험에 임해서 몇 명은 완전히 까먹었다. “지친다.”라고 나는 말했다. “Agree with me." "You are tired. I'm tired, Me too." 모두가 틀린 답들이었다. 다 끝나고 난 뒤 “So am I"라고 그들에게 말했다. 두 번의 기회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좋은 친구들이었다.
난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려고 노력한다. 영어로 붙여진 이름이 아닌 그들의 진짜이름을 부른다. 내가 그들의 이름을 바꿀 권리는 없다. 그들 중 몇몇 학생의 이름은 언제나 기억이 나는데, 나머지 학생들은 누구인지 출석부를 보고 이름을 호명한다. 만일 복도에서 마주쳐도 이름이 생각나지 않지만, 내 수업에 출석했던 낯익은 얼굴이다. 항상 강의실에서 본 사람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매학기 160 여명의 학생들을 가르칠 때 겪는 서바이벌이다. 학생들이 와서 나의 삶으로 들어온다. 어떤 학생들은 재미있어 다시 우리를 찾아오길 기도한다. 또 다른 부류의 학생들과의 작별인사는 행복하다. 그들의 이름을 기억할지라도 6개월이 지나 지나가는 길에 다시 만나도 이미 거리감이 존재한다. 난 스스로 학생들과의 거리를 두는 법을 배웠다. 몇몇 학생과는 꽤 가깝게 지내고 좋은 인간관계도 맺는다. 그러다 일단 내 곁에서 떠나면 돌아오지 않는다. 그때 나는 버림받은 부모심정이 된다. 그래서 상처받지 않으려고 마음을 굳게 다졌다. 그저 우리 각자의 인생길에서 만났다는 사실을 행복으로 여긴다. 그리고 그들이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길 바란다. 나로서는 아무 것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것이 교사의 본연이다. 그들이 배움에서 우리를 존경하도록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각자의 길을 간 것이다. 이곳 한국으로 왔을지라도 나는 캐나다에 계신 우리 은사님들을 찾아뵙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분들 중 한분이 내가 찾아뵙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스승으로서 그 분을 얼마나 존경했는지 은사님께서는 아시리라. 그리고 나도 우리 학생들로부터 존경받는 스승이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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