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엽의 진료실 일기] 통일에 대한 의학적 농담

통일 교육위원회 전북 협의회 워크숍에서 <북한의 보건의료 실태 파악 및 보건의료 지원을 위한 법. 제도 정비> 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유인물로 이미 배포되어 있어서, 그 내용은 파워포인트로 한 장으로 요약을 하고, 나머지는 ‘건강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 이라는 제목으로 따로 준비해 갔다. 제목이 거창한데, ‘의학적 잡설(雜設)’ 또는 ‘의학적 농담(弄談)’ 정도로만 해도 충분한 내용이었다.
발표를 하고 나오는데 북경대학교에서 북한 연구로 박사학위까지 받으신 한 교수님의 뜻밖의 질문에 순간 ‘멍’ 해졌다.
“ 어떻게 의사선생님이 통일 문제에 이렇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셨어요” “아! 네! 현시점의 통일 정책이나 이런 것은 하나도 모르는데요, 다만 어렸을 때부터 역사에 관심은 있었어요. 특히 고대사인데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어물쩍 둘러대다 보니, 어느 순간 이 날 발표한 내용을 가지고 또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놀랐다.
“통일에 대한 문제에 대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지내면 안 됩니다. 그냥 되는 게 아니에요” 하시며 열변을 토하시는 교수님 앞에서 나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제가 ‘건강은 조상의 음덕이다’라고 말씀드리면서 건강은 유전이 50%정도 되고, 환경이 25%, 생활 습관이 25%정도라고 했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자기가 대단한 노력과 훌륭한 능력으로 높은 지위에 올라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에서와 마찬가지로 인생에서도 자기 능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은 대게 약 25%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50%는 유전으로 아무 노력 없이 받은 것이며, 환경도 대부분은 운명처럼 주어지거나, 바꾸기 쉽기 않기 때문입니다. 가령,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공기도 좋고 물도 좋고, 생활환경이 좋은 알프스로 옮겨가 스트레스 받지 않고, 적당한 운동과 섭생을 하며 살 수는 있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습니다. 내가 50년 전 6.25 전쟁 때 태어나지 않는 것은 참 다행한 일이지만, 지금 살고 있는 이곳도 그리 낙원은 아닙니다. 사회적, 경제적 압박과 스트레스는 고사하고라도, 하루하루 자동차 매연에, 앉아만 있는 작업환경, 각종 약물 처치된 물과 인공 식품들을 일일이 나열한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내 건강, 내 인생에 직접 관여해서 바꿀 수 있는 부분은 생활습관이 차지하는 25%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폐암에 걸릴 수 있는 것처럼, 인생의 75%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갑니다. 반대로 내가 높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위치에 있을 때 우쭐해 할 것도 없습니다. 75%는 분명 내 노력 없이 거저 받는 것일 테니까요. 그렇다고 회의론자, 염세주의자처럼 아무 노력도 하지 말자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위험한 발언이지만, 그래서 우리나라의 통일도 건강에서 75%에 해당하는 그러한 이유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역사적 맥락에 의해 통일이 될 수도 있다. 다만, 그때까지 우리가 할 일은 겸허하고 신중하게 정책을 마련하고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 건강의 차이는 25% 생활습관에서도 현저하게 나듯이, 통일 후의 대한민국의 건강상태는 현재의 노력과 준비에 달려있다. 차마 이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건강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 사회와 역사에 확대해석한 탓이지만, 내가 이야기한대로 '의학적 농담(弄談)’정도로만 이해해 주면 문제될 것 없어 보인다.
그리고 통일 후의 세상은 지금과 다른 다양한 가치관의 사회가 될 것이다. 1939년 정도에 '찰스 무어' 가 주도한 보편주의에 입각한, '세계의 철학적 종합을 시도한다'는 ‘세계주의'와 ‘글로벌리즘'이 대두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할 때는, 그 속내에는 ‘돈’이 지배하는 사회를 전제로 한다. 현재 세계에서 어떤 가치관보다 ‘돈’ 이 우선하기 때문에 그 다양한 사상들이 동일한 경제 시스템 안에서 통일 될 수 있다는 전제로 나온 사상인 듯하다. 말하자면 '경제적 제국주위' 뿐 아니라 이제는 '문화적 제국주의'를 조장하는 분위기였다.
16세기에 시작했던 서구열강의 지배가 사상의 강요와 신앙의 전파가 목적이었다고 하면 이제는 사상과 신앙의 인정과 배려를 추구한다. 이러한 세계적 현상은 ‘건강'이라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4차 산업은 ‘돈’을 벌기 위한 방법으로 강구되었지만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새로운 ‘배려’과 ‘가치관’이 태동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차원의, 지배를 위한 ‘국수주의’가 아닌 ‘세계주의’를 지향한 건강한 ‘민족주의’나 ‘국가주의’가 태동하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의학적 농담’을 던져본다. 또한 그런 의미에서 보면, 세계주의를 표방한 통일 정책 중 하나로 개인적 권력에 의해 점철되지 않는 ‘역사 교육’ 이 꼭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유명 패밀리 레스토랑과 호텔 식당에서 세계주의를 표방하면서 자취를 감춘 ‘김치’ 가 ‘오이피클’에게 빼앗긴 자리를 당당하게 다시 회복할 그 날까지 말이다.

/전주 우리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