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엽의 진료실 일기] 행복은 몸으로 느낀다

 

애써 참으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묘한 신음소리가 새어나온다. 미장원에서 머리를 깎고 샴푸로 씻어주면서 두피 안마를 받았는데 눈물이 날 정도로 시원했다.
가끔 이런 감각적인 것들이 멋쩍게 웃지만, 그럴 때면 내가 나이가 먹어가며 뇌세포가 줄어들어 나오는 현상이 아닐까 하기도 한다. 마치 치매 환자들처럼 뇌가 많이 위축이 돼 기본적인 본능에 더 충실하고 만족해하는 것처럼 되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즐거움은 좋은 생각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몸으로 느끼는 것 같다'는 체득이 어찌되었든 나이 들면서 더욱 강렬해져서 '행복은 몸으로 느끼는 것'이라는 식으로 바뀌어, 큰 깨달음 뒤에 얻는 진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집에 와서 밥을 먹으면서도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탄성은 계속되었다.
옆에서 밥맛이 없다며 지켜보던 딸아이가 게걸스럽게 먹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내 밥을 다시 먹기 시작한다. 항상 내 주위 사람들은 내 먹는 모습을 보면 식욕이 돋는다 했다. 그래서 칙칙한 겨울에도, 나는 탄성을 지르게 하는 봄 햇살 같은 존재다.
미용실 원장님은 건강에 관심이 많아서 집에서 설탕도 안 먹고, 인공조미료도 안 쓰고, 오직 유기농만 먹는다고 했다. 갑자기 우리 첫애 얼굴이 떠올랐다. 첫애가 태어나고 나는 나름 건강지킴이라고 해서, 과자도 먹이지 않고, 사탕이나, 초콜릿은 물론이고, 탄산음료도 차단했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가족모임에 가면 다른 친구들이 자기 아이들 챙겨 먹일 과자를 가져왔어도, 눈치 보면서 감히 꺼내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손아래 매제가 명절날 집 앞 마트에 심부름을 가면서 우리 아이를 데려갔다. 뭘 사고 싶냐고 물었더니 '콜라'를 집더라는 것이다. 무심코 아무 생각 없이 집에 오는데 아이가 "고모부, 잠깐만요." 하더니 그자리에 서서 "원샷"을 하고 "자 가시죠" 하고 들어가더란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급기야 막내는 6달이 다 되지 않았을 때 초콜릿 맛을 보았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아무렇게나 먹인 막내가 신경 써서 골라서 먹인, 첫째보다는 건강하다. 우리 집 경우를 일반화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주변에서 보면 오히려 건강에 극도의 세심한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 오히려 건강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말하자면 유독 건강하고자 하는 사람은 건강하지 못하는 꼴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내 잠정적인 결론은 뭔가 특별하게, 절대로 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한가지만을 고집하는 사람은 대체로 건강하지 못하다. 신경질적이거나 아주 예민한 사람들만이 하나하나 다 따져가며 분별해서 유기농, 천연 식품만 골라서 먹일 수 있다. 세상사 모든 일들도 거의 비슷해서, 그렇게 빈틈이 없는 사람 중에는 인류사에 길이 남을 아주 특출하거나, 특출한 사람이 아주 드물게 생기기도 하지만, 대게는 피곤한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생각 없이 아무것이나 먹어야 할까.
입맛에만 좋다고 아무것이나 먹다보면, 특히 상업전술이 난무하는 현시점에서는 위험한 발상이다.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이 '되로록이면' 또는 '알맞게' 인 것 같다.
건강은 약 50%는 타고 난다. 확대해서 유추해보면 건강할 짓만, 잘 될 짓만 골라서 하는 유전자를 타고 태어난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건강한 사람은 건강해지려는 의식적 노력 없이 건강하게 산다. 부자는 '부자가 되려고 노력했다기 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 남을 위한 일, 그래서 보람 있는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부자가 되어있더라'는 경우가 대다수인 이유와 같다. 내가 그런 유전자를 타고난 것이 아니라면 아주 이성과 의지가 투철한, 피곤한 사람이 되는 것 보다는 '되도록이면' 또는 '알맞게' 하고 사는 사람이 더 건강한 것 같다.
일본인 의사 곤도 마코토는 그의 책 『의사에게 살해되지 않는 47가지 방법』에서 이런 사례를 밝힌다. 핀란드에서 1200명 남녀를 대상으로 600명은 4개월에 한 번씩 5년 동안 의사가 지극정성으로 금연, 균형 식사, 건강에 도움 되는 식품, 고혈압, 고지혈증 약 처방등 적극적인 개입을 하고, 나머지 600명은 건강 조사표만 작성하고 그 후로 방치했다. 10년 뒤에 조사해보니 심근 경색, 심장 돌연사,자살및 사고에 의한 총사망자수가 적극적인 개입 그룹에서 훨씬 더 많았다고 한다. (다만, 적극 개입그룹에서 금연 효과로 인해 방치그룹보다 암 사망자수는 적음)
‘검사결과 병이나 이상이 발견되어 의사의 지도나 약 처방을 지속적으로 받으면, 그것이 정신적 스트레스가 되어 심근경색이나 우울증으로 이어진다’라고 분석했다.
요즘 정부의 개입이 여느 때보다 의지도 강하며, 그 영역도 무척 다양하다. 세월이 흐른 뒤에 역사가 평가할 일이지만 '과유불급' 이라는 한자 성어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주 우리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