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진을 돌다보면 의외로 밥을 못드시는 분들이 많다. 일단 나이가 많다. 대게 여자분들이다. 나이가 들면 미각세포도 퇴화되고 먹을 때 맛을
내주는 데 중요한 보조역할을 하는 시각과 후각도 퇴화한다. 게다가 타액 분비도 떨어져 가끔 밥알이 모래알 같이 느껴진다는 분들도 있다. 입원해
계신 어르신들은 질병과 더불어 치료약물의 작용, 그리고 운동 부족도 식욕 감퇴에 더 가중치를 준다. 그래서 무식하게 들리지만 안타까운 맘으로
이렇게 말씀을 건넨다.
“
반면에 우리집 아이들은 "엄마! 오늘은 돈가스 먹고 싶어", "멸치에 김싸서 먹고싶다" 등등 식사때마다 요구사항이 많아 아내가 곤혹을
치룬다.
평소에 잘 먹고 건강하기 때문일까? 나는 의외로 주는대로 밥은 맛깔스럽게 잘 먹지만, 내가 먼저 뭐 좀 해달라는 말은 거의 해본 적이 없다.
이처럼 평상시에는 간절하게 먹고 싶은 것이 별로 없지만, 아프면 별나게 먹고 싶은 것이 생긴다.
언젠가 감기로 거의 죽을 만큼 아팠다. 같은 공간, 같은 집 침대에 끙끙앓고 누워있지만 혼자있는 것처럼 외롭고 서러웠다. 왜냐면 애가 많은
집에서는 아내가 침대 옆을 오가며 “여보 어떻게...... 어쩌냐...... 어쩌지?...... 힘내!” 하며 화려한 립서비스는 해주지만 정작
간호에 필요한 손과 몸은 아이들에게 가 있다. 애들 육아에 다 쓰고 남는 짜투리 시간에 “아참! 남편이 지금 아프다고 했지!” 한 번 떠올리는
수준이다.
그런데 그날따라 왜그리 감이 먹고 싶었는지. 때마침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라 사방이 홍시가 풍성할 때였다. 자구책으로 밥도
거른채 자고 일어나면 먹고, 배고프면 일어나 다시 먹고 자고......
그럭저럭 자구책으로 이틀이 지나고 감기도 우선해지고 몸이 한결 가벼워진 후에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물론 평소에서 홍시를 좋아했지만 아이가
들어선 것도 아닌데. 어쩌면 그렇게 홍시가 눈에 아른 거렸던 것일까?
그래서 홍시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참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감에는 비타민 C가 귤보다 3배 이상 들었으며......’
병원에서도 비타민 C는 면역력을 높여 주거나 감기나 독감에 도움이 된다고 하여 고단위 주사제로도 이용하고 있는 곳들이 많이 있다.
사람은 어릴때부터 음식을 먹을 때 그 음식의 정보를 무의식적으로, 그러나 아주 정확하게 정보화해서 뇌에 기억한다고 한다. 가령 밥을 먹으면
어떤 영양소가 들어오고 어떤 것과 먹으면 잘 소화되는지, 또는 김치를 먹으면 어떤 효소가 얼마만큼 들어오며 섬유소는 얼마나 되는지 말이다.
그래서 병이 나서 그 영양소가 필요하면 꼭 그 음식이 먹고 싶어진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내가 감을 찾았던 것은 단순히 목이 마를 때 물을 찾았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생명의 기본적인 순수함 말이다. 순수함이라는 표현을 본능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생명의 순수한 그 본능에 충실하면 나를 살린다’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여러해 동안 환자를 보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생명에 대한 이와 같은 순수한 본능?을 저버림으로써 병이 가중된다는 것이다.
뇌에 본능이 있다면 잠을 자는 것이다. 생각하는 뇌보다 어쩌면 쉬는 뇌(수면)가 사람에게 더 중요할 수도 있다. 피곤하면 잠이 오고 그러면
자야한다. 그러나 요즘은 한방중에도 대낮처럼 불을 밝히고 컴퓨터 앞에서 삐딱한 자세로 밤을 세우는 사람들이 많다. 건강할 수가 없다.
근육에 본능이 있다면 수축하는 것이다. 근육 수축을 우리 몸에서는 운동이라고 한다. 직립 보행시 척추 근육의 본능이 있다면 곧추 세우는
것이다. 다리 근육에 본능이 있다면 걷는 것이다.
건강하고 싶다는 본능에 충실한, ‘운동’을 해야 하는데 대부분은 되도록 편하고자 하는 욕망에 충실한, 자동차 타기를 한다. 급기야 동네
슈퍼 갈때도 자동차를 타야만 간다.
가끔 정말 절실히 필요할 때 나도 이용하기는 하지만, 아미노산 영양 주사제나 힘이 불끈 불끈 난다는 마늘 주사제, DNA 주사제가 밥
한수저로 인한 위 운동을 대신하기는 힘들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건강은 가치관의 산물이다. 생활습관 병 (당뇨/고혈압/심장병/뇌졸증) 뿐만아니라, 생활 하나 하나가 선택의 연속이고
선택은 가치관의 결과다. 물론 모든 환경을 우리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건강하고 싶으면 건강할 짓을 해야 하고,
행복하고 싶으면 행복할 짓을 해야 한다. 그리고 미래의 의학이 있다면, 편하고 손쉽게 하려는 욕망 보다는 그 생명 본연의 본능을 충분히
활용하는 방향으로 펼쳐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 정권의 여러 정책들도 우선 편하고자 하는, 단발성 영양제나, 조효소가 아니라 국력이 신장되는 실질적인 ‘운동’과 ‘작용’
이 있는 좋은 처방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란다.
/전주 우리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