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
  • 박제원(전주 완산고등학교 교사)
  • 승인 2018.02.01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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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인문학을 엿보다⑫] 피카소

『1926년 가을, 무솔리니(Benito Mussolini, 1883~1945)는 자신에 대한 암살 기도가 있었다는 것을 구실로 삼아 반대파들을 체포했다. 그들 중에 ‘안토니오 그람시’가 있었다. 당시 그는 의회의 대의원이었지만 신분을 보장받지 못했다. 1928년 5월 그람시에 대한 재판에서 검사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로 그에 대한 논고를 끝맺었다. "우리는 이 자의 두뇌가 작동하는 것을 20년 동안 중지시켜 놓아야 한다." 파시스트 정권이 그를 감옥에 가둘 수는 있었지만, 두뇌가 작동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람시는 감옥에서 죽어가면서도 오히려 역사와 사회에 대한 예리한 분석으로 2,848 페이지에 달하는 필사본을 남겼다. 그람시가 죽은 후 그가 감옥에 있을 때 작성한 [옥중수고]는 그를 자주 면회 갔던 처형에 의해 고스란히 전해져 이후의 서구 마르크스주의(Western Marxism) 형성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채하: 현대 마르크스주의에 영향을 끼치는 사상가를 여럿 들 수 있다. 플란차스, 알튀세르, 푸코, 에릭 홉스 붐 등이 대표적인데 백미(白眉)는 ‘안토니오 그람시’라고 할 수 있다. 그람시는 마르크스주적인 경제결정론을 수정한 까닭이다. 

선아: 제가 대학에 다니던 1990년대 초에 대학의 학술동아리나 시민단체에서 안토니오 그람시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가끔은 교수연구단체에서도 그람시에 대한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하는 플랑카드를 걸곤 했습니다. 그때는 임용고사준비로 시간이 부족했지만 그람시에 대해 무척 궁금했습니다. 어떤 인물이기에 시대적으로 한참 지났고 공간적으로도 떨어진 90년대 한국에서 주목받나 해서요. 

채하: 1991년 구 소련의 공산당이 몰락하지 않았다면 한국 사회에서 그람시에 대한 관심은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냉전의 한 축이었던 소련의 몰락은 진보적 사회운동가들에게는 큰 시련이었지. 역사적 모델이었던 모범답안이 사라졌다고 할까? 직선제에 의해 대통령이 선출되었지만 군부출신이었던 노태우의 정통성은 취약한 상황이었고 군부, 관료, 매판적 재벌 등으로 연결된 강고한 기득권 구조는 크게 흔들리지 않아 사회경제적으로 여전히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그러한 한국사회의 모순을 타파하고 해체하려는 이데올로기적인 탐구와 모색이 있었고 주목한 인물이 바로 그람시였다. 

선아: 그람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그가 낡은 마르크스주의를 지양하여 마르크스주의의 새 지평을 열었듯이 가끔은 비상식적이라고 비판받는 진보적 의제를 개선하여 새로운 진보, 미래지향적인 진보를 말하며 행동하고 싶거든요.

채하: 그가 탁월한 정치이론가로 주목받게 된 것은 러시아 혁명에 대한 그의 글 때문이었다. 그람시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던 해 12월에 사회당 일간지인 <전진>에 ‘자본론에 거역한 혁명’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마르크스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다고 했으나, 후진 농업국인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마르크스 이론이 잘못되었는가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있었다. 이에 대해 그는 마르크스이론이 옳다고 말하면서 그 근거로 역사유물론을 결정론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했다. 즉 사회구조나 사회변화를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이라는 경제적 제 관계로만 설명하는 것은 옳지 않고 인간들의 의지 및 실천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러시아 혁명은 어디까지나 자본론에 부합한 혁명이라고 하였다.

선아: 마르크스가 고도로 발달된 자본주의 국가에서 노동자와 자본가의 갈등이 최대치에 이를 경우에 내부모순이 폭발함으로써 노동자 혁명이 일어나고 자본주의가 소멸한다고 보았는데 그람시의 주장은 매우 독특하고 이례적입니다. 그람시 이전의 정통마르크스주의로부터 벗어난 주장이기도 합니다.

채하: 아까도 말했지만 그람시는 인간들의 의지 및 실천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렇기에 혁명적 소수가 폭력적으로 권력을 장악하는데 성공할지라도 노동자들의 의식적인 투쟁이나 실천이나 지속되지 않으면 혁명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가 사회변화의 가장 중요한 조직으로 기존의 노동조합과 다른 ‘공장평의회(수평적 노동조합)’을 강조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선아: 공장평의회? 대학 때 들어본 것 같아요. 노동조합의 진화적 발전방향을 알리는 현수막이나 대자보에서 본 것 같아요. 

채하: 노동조합은 임금인상, 노동시간, 휴식 등을 대상으로 자본가로부터 좀 더 많은 양보를 이끌어내는 것에 집중하지만 공장평의회는 조합원, 비조합원이 모두 동등하게 참여하고 근로조건의 개선을 넘어서서 생산력 향상 등의 전반적인 공장운영을 함께 토의하는 기구였다. 심지어 공장평의회가 국가자산을 통제하고 운영하는 수준에 이르는 것이 진정한 사회주의라고 보았다.

선아: 우리 재벌기업인 삼성에 견주어 보면 공장평의회는 삼성그룹의 모든 정책을 수립하는 ‘전략기획실’ 같은 조직이군요. 비조합원이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이례적이고요. 비조합원도 생산의 주체라는 점에서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군요. 우리 사회의 노사협상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대기업노조들이 비정규직이나 비조합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거나 의사결정에 동등하게 참여시키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그람시의 주장은 이례적이고 파격적이군요. 대중매체를 통해서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이 같은 사업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배려하지 않는 여러 경우를 자주 보게 되는데 그람시라면 어떻게 말할지... 

채하: 역사적 가상을 해보면 그람시의 경우에는 부정적이었지 않았을까? 아무튼 이때까지의 그람시의 삶보다는 그가 감옥에 간 이후의 여러 저작들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는 가난한 노동자와 농민이 다수였던 이탈리아에서 폭압적인 무솔리니가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가에 대해 고민했다. 이러한 고민은 곧 “왜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가?”로 확대되었다. 

선아: 그런 현상은 지금도 지속되는 것 같아요. 우리사회도 마찬가지고요. 노동자, 농민, 가난한 서민 등의 사회적 약자가 오히려 부당한 정치권력이나 재벌 등을 지지하는 것을 여러 번 봤잖아요. 선거 때 뚜렷하게 드러나거든요. 역사가 과거만이 아닌 현재로의 연속이자 미래라면 그람시의 고민은 지금도 진행형이라고 봐야할 것 같아요. 

채하: 선아야 너도 들어봤겠지만 헤게모니(Hegemony)라는 말을 기억하니? 사실 헤게모니라는 용어는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였던 ‘게오르기 플레하노프’가 처음 쓴 용어란다. ‘정치적 지배를 의미한다. 그것을 확장시켜 지금 일반적으로 쓰는 헤게모니 개념을 만든 사람이 바로 그람시란다. 그의 방대한 사상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연결고리란다. 

선아: 요즘은 학생들도 ‘웹툰’ 같은 매체를 통해서 보고 들어서 가끔 쓰는 것 같아요. 헤게모니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어요. 

채하: 헤게모니는 한 마디로 ‘지도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계속 지배하기 위해서 정치적이거나 군사적인 힘으로만 강제하지 않고, 피지배계급이 자발적으로 동의할 수 있도록 문화적, 도덕적, 이데올로기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힘을 의미한다. 즉 지배계급의 세계관이나 사회규범을 피지배계급이 자연스럽게 자신에게도 이익이라고 받아들이는 힘이다. 

선아: 그람시 이전의 마르크스주의자와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그람시 이전에는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지배하는 힘은 오직 자본가의 노동자에 대한 강한 지배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고 보았거든요. 그렇기에 자본주의 사회구조나 사회현상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라는 점에서만 분석했고 그것을 벗어난 분석은 비합리적으로 옳지 않다고 여겼거든요. 고전파 경제학의 시조였던 ‘아담 스미스’ 이래로 지속되어왔던 고전적 자유시장이론이 ‘케인스’에 의해 비판받고 야경국가(night-watch state)정도로 치부되었던 국가의 위상이나 정부의 역할이 확대되어 정부의 시장개입을 정당하다고 여겼던 사건과 비슷한 것 같아요. 물론 케인스도 시장경제원리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람시도 그랬나요?

채하: 맞다. 그람시도 그랬다. 그람시도 마르크스의 사상을 모두 버린 것이 아니다. 그것을 시대의 변화에 맞게 재구성하였고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여 이론적 정교함을 추구했던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자본가에 의한 지배만이 아니라. 특정 정당 및 지식인 세력, 특정 자본가 세력이 헤게모니 그룹을 형성하고 포괄적 지배를 한다고 본 것이다. 또한 헤게모니는 헤게모니 그룹의 의도적인 노력이나 의지에 의해서 만들어지며 교육, 언론, 종교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고 보았다. 특히 교육, 언론, 종교 등의 문화조직이 헤게모니 그룹의 이데올로기를 상식으로 포장하고 이들 그룹의 이익이 마치 국가전체의 이익인 것처럼 대중들을 세뇌시킨다고 보았다. 

선아: 자본가만이 아닌 왜 그런 광범위한 블록적(집단적) 지배가 이루어진다는 것이에요? 자본가가 단독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잖아요? 

채하: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결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수결은 대중적 지지를 받는 중요한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으로 대중을 결집시킬 수 있는 힘이다. 그렇게 해야만 지배계급의 권력이 흔들리지 않고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람시는 경제적 힘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경제외적 힘들을 무시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것들이 현실에서 강하게 대중의 의식을 사로잡고 행동하게 하거든. 얼마 전에 상영되었던 장준환 감독의 영화 ‘1987’이나 전두환 정권하에서 용공조작사건이며 故 노무현 대통령이 관여한 ‘부림 사건’을 다룬 ‘변호인’이 대중적 결속력을 크게 강화함으로써 정치,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을 생각해보렴. 
선아: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에서 특이한 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점이 무엇인가요?

채하: 지식인의 역할이다. “누구나 계란 요리를 만들 수 있지만 모두가 전문적인 요리사는 아닌 것처럼, 누구나 지식인의 역할을 할 수 있으나 모두가 전문적인 지식인은 아니다.”는 말은 인상적이었지. 즉 헤게모니에 참여하는 지식인들이 해당 자본가 세력의 권력을 강화하고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사회 전체의 상식으로 만드는데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하지만 그렇지 않은 지식인들은 억압에 저항하는 해게모니를 만들고 기존의 블록적 권력을 해체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즉 지금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여러 제도나 가치들이 사실은 그렇지 않고 오직 지배계급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며 오히려 ‘대중들에게는 독’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선아: 지식인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군요. 그 점에서 비판철학의 산실이라고 불렸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허버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와도 비슷한 것 같아요. 사회변화의 주체를 지식인에서 찾았잖아요. 

채하: 그람시는 기동전(급진적 속도전)을 통한 개혁은 성공할 수 없고 대중과 깊이 공감하는 진지전(개혁적 장기전)을 통해서 서서히 대중의 상식을 바꾸고 세계관을 변화시켜 그들 스스로가 새로운 사회의 주체이자 구성원이 되었을 경우에 인간다운 사회가 완성된다고 보았다. 아무리 사회적 문제점이 심각해도 조급하게 바꾸려는 것은 옳지 않으며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는 대중적 공감대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기존의 마르크스주의를 해체하여 더 나은 마르크스주의를 복원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결론지을 수 있다.

선아: 오늘은 왜 그림 이야기를 하지 않으시나요? 그림이야기는 없는 것인가요?

채하: 하하하, 어쩌다 보니 그림 이야기를 하지 못했구나. 잠깐 언급해볼까... 큐비즘[cubism]이라고 들어봤니?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예술운동의 하나인데 유럽 회화를 르네상스 이래의 사실주의적 전통에서 해방시킨 회화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선아: 들어봤어요. 입체파를 말씀하시는 것이잖아요? 그 창시자는 피카소라고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입체파하면 피카소를 말하잖아요~~

채하: 피카소의 작품 중에서 입체파의 문을 연 작품이 있는데 그 작품을 말해보자. ‘아비뇽의 여인들’이라고 알고 있니?

▲ 피카소, <아비뇽의 여인들>, 1907

선아: 실물을 관람한 것은 아니었지만 화보집에서 보았어요. 독특한 그림이던데요. 

채하: 독특하지. 그때까지 그림을 그리던 방식을 벗어나서 새로운 기법을 쓴 것이니까! 같은 대상을 그렸지만 표현을 다르게 했다고 해야 하나. 즉 원근법과 명암법에 기초를 두고 사실에 근접한 그림을 그리고 있던 르네상스 미술의 500년 전통을 완전히 뛰어넘은 최초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림을 그린 배경에는 자연을 원과 기둥, 구로 표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 작품의 원래 이름은 ‘아비뇽의 홍등가(사창가)’였지.

선아: 그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릴게요. 

채하: 그림을 보면 5명의 발가벗은 여인들이 기하학적으로 구성된 몸을 갖고 있다. 여러 각도에서 대상을 보고 조각을 나눈 뒤 한 화면에 종합하여 배열한 것이지. 가운데 두 여인은 그나마 제대로 된 형태를 갖고 있지만 양쪽의 여인 셋을 보면 신체의 조각들이 섞여있다. 왼쪽 눈은 정면을 보지만 오른쪽 눈은 3/4의 각도로 옆을 응시한다. 등을 보이고 앉은 아프리카 가면을 쓴 것처럼 보이는 여인은 정면을 응시한다. 공간 배경은 푸른색과 흰색으로 기하학적 윤곽만을 담아서 입체적인 느낌을 강조했다. 

선아: 저는 처음보고 괴이하다고 생각했어요. 매춘부들로 보이는데 얼굴도 변형되어 있고, 해부학적으로 엉망이며 원근법도 파괴했잖아요. 전통적으로 아름다운 여성상이 아니라 전통에서 벗어난 매춘부들이었고요. 오죽했으면 어떤 비평가는 “부서진 유리의 파편” 같다고 했겠어요. 

채하: 피카소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사람들은 이 그림에 대해 기괴하다고 느낄 수 있었지만 그는 이 그림이 사실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 이유는 대상의 모습은 관찰자의 신체의 움직임에 따라 다양하다는 것을 그림으로 드러내고 싶어 했거든. 즉 우리가 어떤 대상을 눈으로 보더라도 어떤 자세로 보느냐에 따라 대상의 모습은 다를 수 있거든. 가령 꽃을 보더라도 한 위치이지만 누워서 보거나 서서 볼 경우에 대상의 형체는 다르게 보이지 않니? 결론적으로 피카소가 추구하려는 것은 사물을 한 방향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관점으로 해석한 뒤에 켄버스에 다시 구성해 담는 것이었다. 사실적으로 어떤 것을 보여주려면 반드시 다양한 관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여겼거든. 

선아: 그람시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는데요. 그람시가 권력을 헤게모니라는 다양한 측면에서 본 것은 사실적으로 현실을 조명하고 더 나은 대안을 추구하려고 한 것과 비슷하군요.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정해진 확고부동한 도그마가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사실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그것들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밝히려고 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채하: 나는 이런 그람시나 피카소의 시도를 기존체계의 파괴로만 보고 이단시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조야한 이념적으로 도그마의 안경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냉철한 눈으로 세상을 폭넓게 보면서 잘못된 구도를 바로잡는 것이 진정한 변혁의 출발이라고 본다. 그 점에서 피카소가 원근법을 파괴했다고 보지 않는다. 피카소나 그람시의 새로운 접근시도를 오히려 세상과 미술적 가치에 대한 ‘복원’이라고 본다. 복원은 흠이 나거나 오염된 것을 원래의 순수한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잖아. 

선아: 제가 봤던 어떤 책이었는데 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책에 나왔던 그람시의 말을 기억합니다.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 작가가 상한 영혼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독자들에게 희망과 다시 일어나라는 메시지로 하는 말인데 절절했었습니다. 오늘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선생님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꼭 선생님이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의 진짜 속내이기도 하고요. 언젠가 더 나이가 들더라도, 선생님과 제가 보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도 그때도 잊으시면 안 됩니다. 

채하: 무슨 말인데 그러니? 

선아: 가장 먼저 이 말을 쓴 사람은 프랑스의 문학가인 로맹 롤랑인데요. 이 말에 영향을 받은 안토니오 그람시는 옥중에서 동생 카를로에게 편지를 보낼 때 썼던 말이에요. 다시 말씀드릴게요. "나의 지성은 비관적이지만 나의 의지는 낙관적이다 (I'm a pessimist because of intelligence, but an optimist because of will)". 

채하: 고맙다 선아야. 보수든, 진보든 현실을 멋대로 진단하고, 거짓을 사실처럼 말하면서 권력에 골몰하는 행태가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에게 그람시나 피카소는 항상 현재이자 미래라는 것, 그 점을 선아도 잊지 말거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면 무늬만 요리사가 아닌 진짜 요리사가 많아져야 한다고 본다. 멋진 선아야, 다음 시간에 다시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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