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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 김제 의견비

임실군 '오수(獒樹)'라는 지명은 '주인을 구한 의견(義犬)'에서 비롯됐다. 이 의견이야기는 고려 때 최자가 쓴 '보한집(補閑集)'에 수록한 '오수설화(獒樹說話)'에 근거를 두고 있다. 거령현(居寧縣, 오수, 지사, 삼계 등 오늘날 임실군 남부의 고려시대 지명)의 김개인(金盖仁)이라는 사람은 기르는 개를 매우 귀여워했다. 하루는 나들이길에 개도 따라나섰는데 주인(主人)이 술에 취하여 돌아오다 취기(醉氣)를 못이겨 들에 쓰러져 깊은 잠에 빠졌을 때 들불이 일어났다. 잠에서 깨어난 주인은 자기의 생명을 구해주려다 처참하게 죽어간 개의 모습을 보고 슬픔과 감동을 노래하면서 개를 묻어주고 무덤의 표시로 자기의 지팡이를 꽂아두었다. 새봄이 오자 그 지팡이에서 싹이 텄고 세월이 흘러 큰 나무가 되자 사람들이 그곳의 지명을 獒(개 오) 樹(나무 수)라 불렀다.
김제시 순동에도 이와 흡사한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옛날 김제군 옥산리에 김득추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개를 몹시 좋아했다. 어느 날 개를 데리고 친구 집에 놀러갔다. 그는 친구네 집에서 술상을 마주 대하고 서로 정담을 나누었다. 개를 앞세우고 집으로 향하는데 술에 취한 김득추는 나지막한 야산을 지날 때 그만 풀밭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때가 이른 봄이라 따스한 햇살 덕에 김득추는 맥을 못 추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산불이 일어났다. 불은 봄바람을 타고 미친 듯이 번져왔기 때문에 개는 김득추를 깨우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런데 한번 술에 곯아떨어진 김득추는 좀처럼 깨어나지 않았다.
김득추를 깨울 수 없는 것을 깨달은 개는 가까이에 있는 방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온몸에 물을 적셔서 잠이 든 김득추 옆 풀밭 위를 사정없이 나뒹굴었다. 곤한 잠에 들어 꿈속을 헤매던 김득추는 해가 서산에 질 무렵에야 겨우 잠에서 깨었다. 김득추는 개가 잠이 든 자기를 살리려고 불에 타서 이렇게 죽어간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취하도록 술을 마신 일을 후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김득추는 자기 목숨을 구하고 불에 타서 숨진 개를 그 자리에 고이 묻어 주고, 얼마 후 개 무덤 앞에 조그맣게 비석을 세웠다. 지금도 김득추가 세운 의견비 옆에는 조그마한 방죽이 있으며, 개가 몸에 물을 적셔 주인을 살렸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는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친 개에 관한 진화구주형(鎭火救主型) 의구전설(義狗傳說)이자 의견비 유래담이다. 의견비는 주인을 구하고 대신 죽은 살신성인의 개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순동 마을을 가로 지르는 호남선 철로변의 올림픽 기념 숲에 세워져 있다. 의견(義犬)이라는 글자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지만 비(碑)자는 많이 마모된 상태이다. 주변에는 김이제(金伊堤, 개방죽)가 있다. 실명으로 김득추가 등장하고 의견비가 세워진 옆에 실제 방죽이 있는 등 사실성이 좀 더 구체화된 것을 알 수 있다./이종근(문화교육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