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면 더 생각 나지…”
"매년 이맘때면 더 생각 나지…”
  • 공현철 기자
  • 승인 2018.02.13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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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출신 최창욱 할아버지의 향수
부산에서 살다, 다시 전쟁터로 돌아가
전쟁 중 마주친 형, 5분이 마지막 만남

명절때면 누구나 떠올리는 추억, 바로 고향이다.
그러나 자신의 어떠한 몸부림에도 밟아보지 못할 고향을 가진 실향민에게는 가슴을 에이게 하는 아픔 그 자체다.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도 살아남긴 했지만 정신적 삶의 터전인 고향은 빼앗겨 버린 최창욱(군산시 오룡동·87)씨. 13일 기자의 수첩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애절함이 가득 배인 최씨의 이야기가 오롯하게 담겼다. “이 사진 한 장이 유일하게 남은 사진이야”라며 목소리가 잦아들던 최씨의 이야기는 19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당시 20살의 나이로 전쟁이라는 거친 폭풍 속에 휘말려 가족과 뿔뿔이 흩어지는 아픔이 시작됐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먼저 형과 같이 친척집으로 떠나라는 부모님의 말씀은 그가 생전에 들을 수 있었던 유언이 되버렸다. 고향인 황해북도 봉산군에서 친척이 살고 있던 인천시 웅진군까지의 피난길은 그야 말로 아수라장이었지만 형과 함께였기에 든든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부산으로 몸을 피하는 과정에서 형마저 잃어버렸다. 그는 홀홀단신으로 외로움과 배고픔으로 부산의 밤을 꼬박 지새웠다. 아무 연고 없는 곳에서 홀로 살아가기가 힘에 겨웠기에 그는 UN군에 자원입대했다. 이후 공병부대로 배치된 뒤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다시 북으로 향했다. 압록강까지 회복했던 국군의 전세는 투입된 중국군의 인해전술에 밀렸고 이 와중에 최씨는 고향마을을 지나게됐다. 바로 이때 연일 계속된 전투로 인해 사고마저 마비된 것 같은 그에게 환청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피난길에 헤어졌던 형이 '창욱아, 창욱아'라고 애타게 부르는 소리였고 그 소리는 환청이 아니었다. 그를 발견하고 숨 가쁘게 뛰어 온 형은 힘껏 최씨를 껴안고 연신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부대 행렬을 이탈 할 수 없었던 최씨는 불과 5분 남짓한 시간만을 형과 함께 한 채 그 곳을 다시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최씨의 손에는 형이 황망한 가운데 쥐어준 사진 한장 만이 들려 있었고 이 사진은 현재 그가 간직한 가족의 유일한 흔적이다. 다시 만나자고 울부짖으며 했던 형과의 약속은 68년이 지난 2018년 설 명절을 앞둔 군산 하늘에 헛된 메아리로 애잔함을 던져주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헤어진 가족을 찾기 위해 얼마전까지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했던 그였기에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오는 설 명절은 가슴이 더욱 먹먹해지는 순간일 뿐이다. 한서린 삶을 마감하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은 고향을 다시 찾아가보는 것이라는 최씨는 “평창동계올림픽대회에서 남북이 함께 경기장에 들어서던 순간 막혀있던 물고가 트이는 느낌이었다”면서 통일에 대해 염원했다. 
한편,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이산가족 인구는 13만1,447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7만2,762명은 이미 생을 마감했으며, 80세 이상 고령 인구는 3만7,7966명으로 전체 생존 인구의 64.7%를 차지한다. 전북 지역에는 1,001명의 이산가족이 거주하고 있다. /공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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