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엽의 진료실 일기] 환자의 진료는 맘으로 본다

다둥이 애들과 외출뿐 아니라 모든 소소한 일상이 너무 진땀을 빼게 한다. 그 통에 우리 부부는 가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쳤지. 저 죽을 줄 모르고 우리가 애들을 이리 많이 나았을까?” 하며 웃을 때가 있다. 퇴근해서 애들 밥 다 먹이고, 씻기고, 여자애들은 드라이로 머리까지 말려서 잠옷으로 갈아입히고, 신나게 놀아준 다음에 잠자리를 펴고 누우면 거의 자정이 다 된다.
하지만 이때부터 '불행 끝, 행복시작'이 되는 시간이다. "아이고, 허리야” 하고 누우면 큰 녀석이 “애들아 우리 같이 할까?” 하는 말을 하자 마자 딸애는 머리, 한녀석은 어깨, 막내는 허리에 올라가서 뛰고, 큰 녀석은 제법 그럴싸하게 마사지 책을 펴놓고 경락을 짚으며 종아리와 다리를 주물러 준다. 애들 나름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마사지다.
백과사전에서 ‘마사지’를 찾아보면 신경과 근육 계통에 치료효과를 주며 전신 순환의 효과를 높여 주는 것으로 19세기 초 스톡홀름의 의사 페르 헨리크 링이 관절과 근육에 관련된 병을 치료하기 위해 체계적인 마사지를 고안했다고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마사지(massage) 는 의사의 진단 방법 중에 우리 말로 하면 ‘만져보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볼때 청진기를 상징되는 오감(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을 사용하게 되는데 특히 나는 진료실에 걸어들어 오는 자세를 보고, 아픈 부위 몸을 직접 만져보는 것을 많이 사용한다. 영어로 하면 ‘touch’ 하는 ‘촉각'을 말이다. 그런데 이 ’touch’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우리말의 ‘만져보다’는 좀 애매한 것이 ‘touch’는 ‘촉각’에 해당하지만 ‘만져보다’는 서양식 5감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촉각(만져) + 시각(보다)’의 합성어다. 말하자면 복합감각이다. 
본다는 것에 대해서도 살펴보면 영어에서는 ‘look’과 ‘see’를 구별하여 말하고, 한자에는 ‘見’,’看’ 이 있고 추상적 의미의 ‘觀’, ‘視’ 가 있다. 그런데 우리말에는 ‘보다’라는 말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말의 ‘본다’ 라는 말처럼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의미를 가진 언어가 없는 것 같다. 언젠가 이어령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본다’는 것은 망막에 맺히는 영상들을 본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을 뿐더러 시력이 좋다하여 사물의 의미를 정확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눈으로 보기도 하지만 먼저 얼의 눈으로 본다. 그것을 ‘얼핏 본다’ 라고 하는데 ‘얼’의 ‘빛’으로 본다는 의미이다. 빛이 초속 30만 Km 정도이니 그보다는 좀 더 빠르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어릴적 시험을 치며 사지선다형 답안을 쓸 때 그 선택의 기로에서 겪었던 그 주술적인 경험(처음에 얼핏 찍었던 답안이 대게 정답이었다) 이 아니더라도, 특히 의사로서 진료실에 들어오는 얼핏본 환자의 첫인상은 내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다. 논리적 분석이나 판단이 아니고 환자의 자세와 안색이 나의 모든 오감과 직감에 호소하는 그 느낌(?) 이 대부분 가장 정확했다.
두 번째 우리는 맘으로 본다. ‘맘으로 본다' 해서 ‘만져 본다’ 라고 한다고 한다. 맘은 우리의 뜨거운 ‘심장'이나 차가운 ‘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맘은 우리 피부세포 하나하나에도 있으며, 그리하여 연인의 손은 그리 따뜻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일본의 어떤 학자는 그래서 피부를 제 3의 뇌라고도 한다. 나는 내 삶의 방관자도 아니며 영역이 구별되는 절대적 독립체가 아님을 표현하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의사와 환자가 하나 되는 성스러운 의식이다. 그래서 일부 의사선생님들은 5감이 아니라 6감이라고 해서 사람이 서로 만져보며 생기는 ‘전기자기장’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한다.
눈으로 보고, 보이는 모든 것들이 하나로 융합되어 내 삶에 뿌리 깊게 나타나는 것이 ‘해보다’ 는 말이다. ‘하다’는 행위이다. 영어에 ‘try’ 가 ‘그것이 적당한지를 발견(discover) 하기 위해 한다’ 라고 풀이 되어 있지만, 우리말의 ‘해본다’는 의미처럼 행위와 그것을 보고 있는 내 몸을 하나로 묶어, 융화하려는 적극적인 표현은 거의 찾을 수 없다고 한다. 말하자면 ‘아는 것’과 ‘행동 하는 것’이 별개가 아니고, 의학에서 보자면 ‘진단’과 ‘치료’ 가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사회의 많은 변화들 뿐 아니라 젊은이들도 어떤 일을 할때 ‘만져보기’보다는 ‘건드려 touch’ 보거나, ‘해보기’보다는 ‘간보기 try’만 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
‘그 분이 만지기만 하면 병이 낫는’ 수준의 명의가 되기만을 바라며 오늘도 나는 계속 ‘만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