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서수 이엽사 소작쟁의
[온누리] 서수 이엽사 소작쟁의
  • 이종근 문화교육부 부국장
  • 승인 2018.03.13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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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서수 이엽사(瑞穗 二葉社)소작쟁의는 일제 강점기 군산 지역에서 일어났다. 옥구 이엽사 농장은 일본인 지주 시라세이(白勢春三)가 1926년에 설립한 식민지 농업 회사로 전주에 본점을 두었다. 이엽사에서는 전주 삼례 농장, 익산 황등 농장, 옥구 서수 농장 등 3개의 농장에 총 1,200정보의 농지를 확보하고, 이를 한국 소작인들로 하여금 경작케 하면서 식민지 농업 수탈을 자행했다.
일제 강제 병합을 전후로 한국에는 일본인 농장 기업이 많이 진출했다. 그 중 생산된 미곡을 이출할 수 있는 시설과 넓은 평야 지대를 갖춘 군산 지역에는 불이농촌(不二農村), 웅본(熊本)·이엽사(二葉社) 농장(農場) 등과 같은 많은 일본인 농장들이 자리를 잡았다.
일본인 농장주들은 군산에서 자신이 확보한 농장 경영을 위해 일본에서 농업 이민자를 모집하여 관리인으로 종사케 했다. 또한 수리 조합을 설립, 농민들을 수탈하기 위한 체제를 갖추어 나갔다.
옥구의 서수농장은 1905년 서수면에 있던 가와사키 농장(川崎農場)을 인수한 것으로, 이 옥구 농장에서 1927년 8~11월 사이 소작 쟁의가 발생했다. 소작 쟁의의 원인은 75% 달하는 고율의 소작료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우선, 옥구 농민 조합 장공욱을 비롯한 조합 간부들이 일본인 농장측에 소작료 인하를 요구하면서 진행됐다. 하지만 일본인 농장측에서는 이들의 요구를 무시했고, 소작료 인하를 요구한 주요 인사를 체포해 서수면 경찰 주재소와 임피면 경찰 주재소에 구금했다.
이같은 행동에 울분을 느낀 500여명의 이엽사 농장 소작인들은 서수면 경찰 주재소와 임피면 경찰 주재소를 습격해 조합 간부를 석방시키는 투쟁을 전개해 나갔다. 이엽사 소작 쟁의는 농민 조합을 중심으로 서수 청년회가 참여하며 진행됐다. 그러나 일본은 다시 이들을 검거했고, 이에 농장 소작인 외에 군산 지역 노동자·학생들과 합세했다. 그 후 이들은 군산 경찰서 체포된 주요 인사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 운동을 전개했다.
소작인·노동자·학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시위가 연대 투쟁으로 격화되자 군산경찰서는 무력을 동원한 탄압을 기도했다. 결국 소작 쟁의에 참가한 80여명이 체포됐다. 체포된 이들은 검찰에 송치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서수 이엽사 소작 쟁의는 지역 농민 조합을 중심으로 전개된 농민 운동으로 일본의 수탈 체제를 비판하며 대항한 항일 농민 운동으로 의의가 있으며 그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군산 문화원이 중심이 되어 기념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행사는 임피중 교정 내 기념비에서 소작 쟁의에 참여한 농민들의 넋을 기리고 청소년들에게 소작 작쟁의 의미와 항일 운동의 정신을 이해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때 빼앗긴 들에 서서히 봄이 오고 있는가./이종근(문화교육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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