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침탈 흔적 '다가교', 관리는 '허술'
일제 침탈 흔적 '다가교', 관리는 '허술'
  • 최정규 기자
  • 승인 2018.03.13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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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곳곳 깨져있고 비둘기 변으로 가득한 바닥. 다가교 석등 관리도 엉망
완산구청 “교량 보수공사와 함께 비둘기 못 앉도록 하는 그물망 설치 검토"
13일 전주시 완산구 고사동에 위치한 다가교가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은 채 사실상 방치되어 있다.
13일 전주시 완산구 고사동에 위치한 다가교가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은 채 사실상 방치되어 있다.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해도 이렇게 방치하다니…”
13일 오전 전주시 완산구 고사동 다가교. 교량 입구에 ‘다가교’라고 써져있다. 모퉁이는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져있고 광고전단지가 붙어있던 흔적이 덕지덕지 남겨져 지저분했다.
10년 전에 설치된 인도 역시 곳곳이 깨져있었고 비둘기 배변이 널려있다. 성인 남성 가슴높이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교량 펜스 역시 페인트가 벗겨지고 갈라져 있는 모습은 흔하다.
일부 펜스의 콘크리트는 깨져있기도 했다. 
다가교 모퉁이 4곳에 설치된 석등도 관리가 되지 않았다. 석등 일부는 깨져있었고 한 곳의 석등은 삐뚤어져 균형이 맞지 않기도 했다.
시민 송모(29)씨는 “전주에서 오래된 다리인 것으로 아는데 관리가 전혀 안되고 있다”면서“비둘기 변들도 많아서 불쾌하다”고 꼬집었다.
신모(27)씨는 “일제 침탈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다리로 알고 있다”면서 “아픈 역사도 우리의 역사인데 보존은 커녕 방치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폭 25m, 총 길이 75m인 다가교는 우리 아픔의 역사를 담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사마교(당시 다가교)는 신사를 왕래하는 일본인의 참배 통로였다. 그러던 중 1920년 홍수로 사마교가 유실되어 버리자 1935년 일제는 총길이 58m, 폭 7m의 교량을 다시 세웠다. 이름은 ‘대궁교’였다. 이 대궁교도 1935년 홍수로 인해 교량의 3분의 1이 유실됐다. 일제는 본격적으로 다가교를 대폭 확장했다. 1937년 길이 75m, 폭 7m의 교량이었다. 이때 4곳의 모퉁이에 있는 석등도 함께 만들어졌다. 신사의 배전 앞에 두는 일본 석등과 같은 모양으로 밝혀져 철거논란이 일고 있다. 현재의 다가교는 1981년 2월 10일부터 9월 26일까지 확장해 완성된 것이다.
일제강점기 침탈자료 수집가인 군산 동국사 종걸 주지 스님은 “다가교에 설치된 석등은 분명 유물은 아니다. 하지만 아픈 역사를 증명해주는 석등을 전주역사박물관으로 옮겨 관리하고 전시해 후세에 전달해야 한다”고 관리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에 완산구청 관계자는 “최근 다가교를 현장방문해 조사하고 있다. 앞으로 본격적인 관리에 나설 것”이라며 “교량 보수공사와 함께 비둘기로 인한 피해도 없도록 교량 밑에 그물을 설치하는 등의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석등에 관련해서는 “철거 민원이 접수되는 등 논란이 불거져 지난해 김승수 전주시장이 주최한 간부회의에서 일제강점기 잔재청산을 위한 대책을 주문해 다울마당이 구성됐다”며 “다울마당의 의견을 수렴해 처리 할 것이고 이번 보수공사에 석등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최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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