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가 끝나면 집에 가기 전에 1시간 정도 음악을 듣는다. 장르에 큰 상관이 없는데 클래식을 자주 듣는 편이다. 낱장으로 사기도 하고, 박스 떼기로 사기도 하고 해서 어찌 어찌 해서 LP 가 대충 1만장 정도 되었다. 턴테이블에 올려져 돌아가는 엘피판에서 들려오는 지직 거리는 소리의 향수를 이야기 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LP 를 1931년 RCA victor 가 처음 소개한 이후로 1948년 컬럼비아 음반사가 12인치 레코드판을 내놓으면서 상용화되었으나, 1983년 소니사에서 CD 가 나오면서 점점 자취를 감추었다가 요즘은 '아날로그의 반격'이라고 해서 다시 붐이 일어나고 있다.
사람이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는 20~ 20000 Hz 로 그 이상이 되면 박쥐들만 들을 수 있는 초음파 영역이다. 그래서 정보를 아주 간략하게 압축한 mp3 나 CD나 LP의 음 차이를 일반인은 구별할 수 없다고 한다. 어차피 똑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LP 를 들어보면 MP3나 CD 보다 자연스럽고 덜 피곤하게 느껴진다. 음질이야 요즘 고음질 CD 는 100,000 Hz 에 해당하는 소리를 담고 있는 것도 있다는데, LP 는 기껏해야 16,000 Hz 까지 밖에는 표현하지 못한다. 그런대도 LP가 더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소리의 단순한 물리적 특성 이외에 음악을 손으로 만져지는 느낌, 눈에 보이는 듯한 느낌, 돈을 주고 레코드판을 얻었기 때문에 그 음악을 진정으로 소장한다는 자부심 같은, 그런 취향에 따른 편견 때문은 아닌 것 같다. 턴테이블 바늘에 의해 LP 판에 새겨진 골을 따라가며 물리적으로 내는 소리는 자연에 실재하는 현실이라면, CD 에서 디지털 신호로 읽어 들이는 소리는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소리다. 음식이 아니라 합성한 종합 비타민 같은 것이다. 유전자 변형 콩이다.
그 비유가 너무 극단적이라면 한국인의 '정' 과 같은 것이 LP 고 서양의 '에티켓'이 CD 와 비슷하다. 요즘은 좀 익숙해졌지만, 백화점에 가면 안내원들이 입구에 서서 그토록 정중하고 무미건조하게 90도로 고개를 숙여 '안녕하세요?' 하는 예법이 여전히 내게는 어색하다. 게다가 손가락까지 펴고 별빛이 반짝이는 무용처럼 손까지 돌려주면 더 어쩔 줄 몰라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누구말대로 아날로그인 LP 의 부흥에 일조한 것이 다름 아닌 디지털이었듯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아날로그적 진료는 어쩌면 CT, MRI 등 디지털 첨단 진단 장비 때문에 더욱 필요성이 증가되고, 더욱 부흥할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아무 의미 없이 대량으로 쏟아지는 진단 장비의 데이터 중에서 어떤 것이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어떤 것을 치료해야 하는지 말이다.
척추로 예를 들자면 MRI 가 너무 발달해서, 자세히 잘 보여주어 이상이 있는 부위를 빠짐없이 잘 보여주는데 이상이 보이는 부위를 모두 치료하거나 수술을 해야 하냐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사진 상에 크기가 더 커 보이는 디스크 보다는 작은 디스크 탈출증이 현재 환자를 괴롭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수술도 이상이 보이는 모든 부위를 포함해서 크게 수술하기보다 원인이 되는 부위를 잘 골라내어 그 부위만 최소한으로 수술하는 것이 더 결과가 좋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떤 논문에서는 정상 성인에서도 50% 에서 많게는 80% 까지 이상소견이 있으므로 MRI 만으로 특히 수술 결정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의사의 치료는 LP 를 읽어나가는 턴테이블의 바늘과 같이 환자의 몸에 실재로 기반을 두고 밝혀가는 예술이어야 한다. 자세히 물어보고, 직접 만져보고, 두두려 본 후에 판단해야 한다. 그동한 경험으로 예측해도 보아야 하고 때로는 어떤 치료를 진단겸 치료겸 시도해서 반응을 보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을 MRI 등 영상 소견과 종합해서 최종 결정을 좁혀간다.
몇일 전에 천재가 만들었다는, 직경 30cm 가 되지 않는 아주 소형 스피커를 하나 샀다. 그런데 소리는 다른 자기 몸보다 10배가 넘는 다른 스피커 못지 않았다. 그에 비해 인터넷에서 이 작은 스피커에 대한 평은 그리 좋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작고 싼 스피커기 때문에 그 가격에 걸맞은 대충 출력이 약하고 싼 엠프를 짝으로 연결해주었는데 그래서는 이 스피커의 성능을 재대로 울릴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이 스피커는 주인이 울리고 싶은 만큼 출력이 크고 고급 앰프를 걸어주어야 소리가 재대로 난다는 것이었다. 좁은 국토의 우리나라도 실은 이 천재 스피커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지만 진정한 출력이 좋은 나라 말이다. 게다가 작은 땅덩이인 우리나라를 울려보겠다고, 항상 출력이 큰 앰프 같은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이 설치니 말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심금을 울리고 진정한 동의와 변화와 개혁을 이루어 내려면 대내외적으로 큰 출력과 함께 정성을 다하는 고급앰프의 구동력이 더욱 필요한 때이다. 정성과 사랑이 없는 무절제한 관심은 그저 시끄럽기만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