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그리드의 전주살이-번역본] 학교 총기난사
[잉그리드의 전주살이-번역본] 학교 총기난사
  • 최수희 번역작가
  • 승인 2018.03.29 1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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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최초의 학교 총기난사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사람들 대부분이 Columbine 고등학교 사건을 기억하고 있지만,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발생한 총기사건이 떠오른다. 1979년 Brenda Spencer라는 16살 소녀가 길 건너에서 초등학교를 향해 총을 쏘았다. 범인은 학교 관리인과 교장 선생님을 죽였고, 범행을 멈출 때까지 어린이 8명과 경찰 1명에게 총을 쏘았다. 왜 그런 짓을 했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범인의 단순한 대답은 월요일이 싫었다는 이유였다. 그룹가수 Boomtown Rats (아일랜드 뮤직밴드)는 그 사건을 인용해 유명한 노래를 만들었다. 난 그 노래를 결코 잊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 기억나는 총기사건은 1989년 캐나다의 몬트리올에서 발생했다. 엔지니어링 학급이 총기소지자에 의해 외부와 단절되었고, 범인은 반에서 9명의 여성을 따로 떼어놓고 그들에게 총을 쏘아 6명을 죽였다. 범인이 복도로 나오면서 28명이 넘는 사람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는데, 주로 여성들을 겨냥했고 14명이 희생되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캐나다는 총기에 관한 법률을 바꾸었고, 이러한 사건에 관해 경찰의 대처 방안도 모색하였다. 
Columbine 총기사건이 발생하고 20년이 흘러, 10대 소년 2명은 13명을 죽였고, 그들이 만든 폭탄이 폭발에 실패하면서 20명 이상에게 부상을 입혔다. 자살로 그들은 사건을 마무리했다. 이 사건은 미국 내에서 총기논란이 시작된 하나의 예가 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총기사건들이 발생하고 나면, 정치인들은 “사려와 애도”라는 헛소리를 표명할 뿐이다. 한 꼬마가 장난감을 삼킨다.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Kinder Eggs (계란모양의 초콜릿 속에 장난감이 들어있다) 라는 장난감은 불법으로 만들어진다. 이 장난감으로 수백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죽는다. 그리고 사건의 마무리는 “아, 그래. 할 수 없지” 이런 식이다.
플로리아의 Parkland 총기난사 사건을 전해 듣고 나는 분노에 차 진정할 수가 없었다. 만일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고등학교 교사가 되어 슬프게도 총기 소지자들이 쳐들어오는 것을 대비해 학교에서 “Lockdown(안전)” 훈련을 할 것이다. 캐나다에 있는 내 친구들은 이 훈련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캐나다에 영향이 미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캐나다와 미국은 국경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들의 문화와 우리의 문화가 서로 교차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어떤 일이 발생한다면 다른 어느 국가보다 우리에게 영향이 온다. 캐나다는 총기 제한을 더욱 엄격하게 하지만, 미국인 갱들은 캐나다로 넘어오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는 점을 이용해 무기를 소지하고 국경을 넘는다. 
Parkland 학생들이 정치인을 향해 공개적으로 시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그들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학생들은 다르다. 뭔가를 해낼 수 있다. 한국에서도 학생 시위가 뭔가를 이루어 냈으니 말이다. 학생들이 어른들에 의해 조직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나는 믿을 수가 없다. 그들은 우리가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라 생각하겠는가? 토론, 담화, 체계적인 논의와 사고, 우리 교사들은 학생들이 미래를 대비할 기량을 가르치고 있다. 그들은 세상을 보다 안전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을 하며 배운 기량을 펼치리라. 어른들은 오로지 돈만 생각하고, 어린이는 모두의 안전과 보호를 생각한다. 정치가들이 우리가 평화로운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반자동식 총기들을 불법화하고 범프스톡(반자동 소통을 자동으로 개조하는 악세사리)을 없애며 총알판매와 그 밖의 필요한 단계를 제한 한다면, 놀라운 일이 될 것이다. 학생들에게 힘을 실어주자! 그들은 우리의 미래다. 학생들은 성숙해질 기회를 갖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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