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저기 화려한 꽃들이 어느새 지고 온 대지를 초록 물감으로 칠하고 있듯이 새순으로 또다시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을 주고 있다.
얼마만인지 기억도 없을 만큼 오랜만에 휴가를 내고 아내와 무작정 떠난 길에 장수 호숫가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고 아내는 마냥 행복해 했다.
좀 더 일찍 함께 하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 꽃 아래에서 잠시 멈추어 꽃과 호수를 바라보고 있으니 그동안의 삶에 놓치고 간 것들이 참으로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그 큰 벚나무 아래에서 쭈그려 앉아 쑥을 캐며 앞으로 밖에 나올 땐 호미를 갖고 와야겠다고 한다.
그렇게 화려했던 꽃들도 어느덧 지고 있다.
가끔 사람들은 늘 푸르기만 하기를 꿈꾸던지 아니면 내 삶이 꽃처럼 화려하기만을 희망하며 살아간다. 필자 또한 그 범주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가는 봄날을 아쉬워하며 다음 봄을 기다리기도 한다.하지만 그토록 화려하게 피어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했던 벚꽃도 만개한 후 바람과 비를 이용하여 스스로 떨어트려 새순을 돋게 함으로 다시 살아서 다음 해에 화려한 꽃을 피우게 된다.또한 새순도 강렬한 초록을 뽐내다가도 어느덧 겨울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가지고 있던 잎을 스스로 모두 떨굼으로써 척박한 겨울을 이겨낸다.
이 과정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나무에게는 꽃도 새 순도 헐벗은 나무도 모두 스스로 살아가는 순수한 과정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삶에 있어서도 마냥 화려하기만 할 수는 없다.
물론 그 나무가 살아오는 그 과정에서 양분을 얻으면서 희생되는 생물도 있을 것이고 강인하게 버텨 후손을 만들어 내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수십, 수백 년의 세월 속에서 말없는 서로간의 공존 방식을 찾아냈을지도 모른다.필자 또한 10여년 몸담은 시절동안 꽃을 피우고 지기를 여러 번 했을 텐데 아마도 앞에 언급했던 일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꽃을 떨 군 다고 항상 새순이 돋는 것은 아닐 것이다.늘 푸른 소나무만이 삶의 봄날이 아니듯이, 늘 피기만 하고 지지 않는 나무는 결국 새 순을 돋게 하지 못할 것이고 새 순을 겨울에 떨궈 내지 못하면 그 순을 키우기 위해 척박한 대지에서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해 결국 고사하고 말 것이다.잊지 말아야 할 것은무엇을 강렬히 찾고 있다면 많은 또 다른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을,무엇인가를 마냥 기다리기만 한다면 기다리는 중에 지나가는 그 많은 것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꽃만을 기다리다가는 새순도 메마른 나무의 지혜도 그냥 지나칠 수 있듯이 말이다.꽃도 때가 돼야 피고 때가 되면 진다는 것은 진리이다.빨리 피고 싶어서 피게 되면 빨리 지게 되며 새순 또한 쉽게 돋지 못하게 될 것이다.
지금 처한 상황이 최악도 아니고 최고도 아닐 수 있다.
삶속에서 이어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봄날을 통해서 나와 가족에게 자유를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은 사실일 것 같다.달리는 말에겐 채찍이 아닌 휴식과 음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진정 인생의 봄날은 꽃이 피며 지고 새순이 돋고 메마르는 모든 과정인 것임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
오늘 밤엔 가장 좋아했던 영화 테오도로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율리시즈의 시선”을 봐야겠다.
대사 중 “신이 세상을 만들 때 처음 만든 것이 여행이며 그다음 의심과 노스텔지어 ”를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