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다리군수 유범수

김제 고은교는 백구면에서 시작되어 평고를 거쳐 김제∼이서∼전주선에 이어지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었다. 교통수단에 문제가 있어 조선시대 세조 때 순수한 화강석으로만 교량을 축조하였는데 축조된 다리는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희귀한 무지개식 돌다리였다. 고은교는 고은 안지공으로 인해 놓여지게 되었다고 전한다. 공은 세조가 어린 조카인 단종을 축출하고 왕위에 오르자 영월파천을 비분개탄하고 조정에서 은퇴하고 친형의 은거지인 김제시(김제군) 용지면 평교리 안촌마을을 찾아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이때 공은 평고라는 마을이름 끝자를 따고 아래에 숨을 은자를 붙여 고은이라는 아호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세조는 고은선생의 인물을 아끼어 누차 소명을 했지만 응하지 않았다.세조는 생각다 못해 고은 공의 옛 제자를 기용, 김제군수로 임명하고 군수로 하여금 선생을 모시도록 했다. 군수는 고은선생의 성품과 지조를 잘 아는지라 매일 문안을 드렸다. 사정이 이같이 되자 고은도 사랑하는 제자인 군수를 한번은 방문하기 위해서 김제동헌을 나왔으며. 용지천에 이르러 냇물을 다리를 걷고 건넜다. 이 말을 전해들은 군수는 민망하게 여기고 그 용지천에 군비를 투입, 영구적인 훌륭한 무지개 돌다리를 놓아 군민의 불편을 덜어 주었고, 다리 이름을 ‘고은교’로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고은교는 화강석 순석조물로 네 개의 무지개문으로 되어 있는데, 다리의 길이는 30척이요, 넓이는 9척3치, 높이는 10척으로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71년도에 현대식 시멘트 콘크리트 교량 확장 공사로 말미암아 철거돼 그 잔영조차 볼 수 없게 되면서 고은교 옆에 유허비를 세워 보호하기에 이르렀다.
완주출신 다리군수 유범수(柳凡秀)를 알고 있나. 과거 선거때마다 다리군수로 통했던 유범수. 완주군에 이어 고창군에서도 유군수가 만든 다리 기념비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필자가 2017년 10월 13일 취재 결과, 고창군 아산면 번암리 영모교 옆에 세워진 '아산초등학교 통학의 다리 준공 기념비'는 1966년 전북일보사가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한타깝게도 비석엔 날짜가 보이지 않았다.
유범수씨는 완주군수로 재직하며 다리를 세운데 이어 고창군수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이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65년 3월 26일부터 1966년 12월 3일까지 제19대 고창군수로 일했다. 앞서 그는 완주군 상관에 다리를 세웠다. 
완주군 상관면 산정리 입구 '유범수공적비'엔 다리군수 유범수와 지역 사람들이 협심해 1964년 6월 5일 산정교를 세웠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는 제14대 완주군수로 1964년 2월 1일부터 1965년 3월 25일까지 일했다. 이어 그는 제16대 정읍군수로 1962년 9월 21부터 1964년 2월 1일까지 봉직했다. 이어 제7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그는 완주군 소양면에도 다리를 세웠다. 소양면 황운리 소양초등학교 옆 ‘국회의원유범수건교기공비’는 1969년 가을에 세워졌다. 
유범수씨는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 98번지에서 살았다. 오늘날 천주교인들이 많이 찾고 있는 초남이성지가 그가 살았던 곳이라고 이승철(국사편찬위사료조사위원)선생이 증언했다.
1967년 6월 8일에 치러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완주군(전북 제4선거구)에서 민주공화당으로 출마, 3만5,329표를 얻어 당선이 됐다. 이성노 자유당 6,944표(10.55%), 임희영 정의당 2,579표(3.92%), 배성기 신민당 1만9,445표(29.55%), 유범수 민주공화당 3만5,329표(53.68%), 김택주 독립당 1,512표(2.3%)의 득표율을 보였다. 그는 1만5,884표차로 당선됐으며, 선거인수는 9만294명으로 6만5,809명이 참여, 투표율 80.61%의 투표율을 나타났다. 
그 당시 국정감사장에서 국방부장관을 향해 “별을 단 장성들이 골프에 미쳐 나라의 국방을 책임질 수 있냐”는 주장을 했다. 서슬퍼런 국부통치시대에서 현역 군인들이 벌때처럼 들고일어나자 결국 사과를 하면서 사태가 일단락 된 것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일화의 하나다. 
그러나 그후 2번에 걸쳐 국회의원(9대 무소속, 11대 한국국민당)으로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신 후 1984년 7월 30일 57세로 별세했다. 11대 국회의원으로 출마했을 때 자신이 군수 시절에 지방 일을 많이해 「多利郡守(다리군수)」란 닉네임을 과시하며 유세했다는 경향신문의 기사가 보인다.또 다른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 국민당 당무위원으로 병원에서 숙환으로 사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국민당 전북도당을 역임 오전 8시 신촌 원불교교당에서 별세했으며, 장지는 익산 월불교공원 묘지였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복임과 2남 1녀를 두었다.
“사적인 일이지만 파일을 펼쳐보니 편지 29통이 나온다. 당시 초등학교 교원인 나에게 스물아홉 통 적은 수가 아니며 군민 여러 분에게도 보냈을 것이니 가히 편지 왕이라 할 수 있다. 다리군수로 유명했고 처음 호는 남계(南溪)이더니 글씨를 쓰면서 승당(丞堂)이라고 했다”그와 주고받은 편지를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는 이승철선생은 여자 선거운동은 유범수 부인이 처음으로 기억한다면서 얼굴이 미남형인데다가 친근한 성격의 소유자로 기억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져 가는 인물이 돼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오는 6월 13일 열리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출마자 가운데 다리를 놓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이종근(문화교육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