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엽의 진료실 일기] 직업은 수입이 아니라 지출이다

아내가 담임선생님께서 부탁이라며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 직업 체험 수업을 해달라고 했다. 나이가 어려 세상물정 하나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어떤 설명을 할 수 있을까 난감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파서 병원 다녀 본 아이들이 많을 테니 청진기 보여주고, 이런 저런 병 치료 한다고 주사기 가져가서 보여주면 간단히 되겠지 했다. 아내는 그런 내 속내를 알아챘는지 아들의 기를 살려줄만큼 성의껏 준비하라는 엄명이었다. 성인이 아닌, 아이들 눈에 맞게 미리 강의록까지 쓰라는 것이다. 그래서 국어사전에서 '직업'을 찾아보았다. 직업은 '개인이 사회에서 생활을 영위하고 수입을 얻을 목적으로 한 가지 일에 종사하는 지속적인 사회 활동' 이라고 나와 있다. 요즘 아이가 "아빠 내가 뭐가 되면 좋아?" 라고 물으면 넌 '대통령' 되라고 대답하곤 하는데, 국어사전에 적힌 대로 하면, 문제인 대통령이 수입을 얻을 목적으로 하는 지속적인 사회활동을' 정치'라고 확대 해석해도 무방해 보인다. 하기야 요즘엔 '생계형 정치인'이란 용어도 인터넷에 범람하니 저런 해석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해석은 '생명' 이나 인생'이란 '공기 중에 산소를 탈취하고, 먹을 것을 얻기 위한 활동' 이라고 정의하는 것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다. 
수업 중에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보았더니 대답이 다양했다. 앞 수업에서 엄마가 경찰관 정복을 멋지게 입고 나와서 인지 경찰의 인기도 대단했다. 건축가도 있었고, 선생님도 있고, 목사님도 있고, 의사 선생님도 있었다. 내 꿈은 외교관이었는데, 지금 의사를 하고 있다. 의사가 되고 나서는 ‘의과대학 교수’가 희망이었는데, 지금 ‘취업반’ 중에서도 ‘개원의’를 하고 있다. 노력을 했는데도 운이 없어서 교수가 될 수 없었다고 가끔 위안한다.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로 교수는 1) 연구 논문을 아주 잘 쓰거나 2)환자를 아주 잘 보거나, 수술을 아주 잘 하거나 3) 다른 사람을 아주 잘 가르치거나 해야 한다. 최소한 3개중 2개는 잘 해야 하는데 실상 나는 하나도 해당사항이 없었다. 
사람이 능력이 완벽하다면 농사도 짓고, 건축가도 하고 의사도 하고, 목사님도 하고, 경찰관도 하고, 될 수만 있으면 대통령도 1인 다역으로 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내가 불완전하여 잘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어쩌면 개성이라는 것, 저마다의 필수 불가결함과 대체 불가능성은 이런 내 자신의 ‘불완전함’에서 생긴다는 것이다. ‘장점'으로 흔히 묘사되는 ‘개성個性'은 오히려 나의 ‘단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빅터 프랭크가 이야기 한대로 모든 사람들이 완벽하다면 각 개인들은 모두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다양한 직업이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내 ‘불완전함’에서 기인한다고 보면, 직업은 국어사전에 나오는 대로 ‘수입'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어찌 보면 ‘재능 기부’고 ‘봉사하는 사회적 방법’이다. 내가 잘 하는 것을 내 이웃과 친구들에게 나누고 베풀어 주고, 내가 부족한 면은 다른 친구들의 은혜를 받는 그런 사회활동 말이다. 
물론 잘하는 것이 원래 좋아하는 것이면 더없이 큰 복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살면 좋겠지만,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직업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닌 듯하다. 왜냐면 1)좋아하지는 않지만,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택한 경우와 2) 좋아하지도 않고, 잘하지도 못하는 직업의 경우라 하더라도 ‘직업’을 ‘수입’ 창출이 아닌 ‘재능 기부’나 ‘봉사하는 사회적 방법’이라고 볼 때, 성실히 최선을 다하기만 한다면, 내 직업이 가치가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과정도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직업을 찾고 개발하는 것도 어렵고 힘든 일이다. 다만 아이들이 그런 노력과 더불어 직업을 대하는 마음이 벌어들이는 ‘수입’보다는 남에게 배풀려는 ‘지출’ 에 더 관심을 가지도록 열심히 강의 했다. 
“여러분!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그리고 제일 잘하는 게 뭔지 두고두고 생각해보고, 그 다음 그것을 어떻게 친구들에게 가르쳐주고 나누어 줄 지 생각해봐요” 
지방선거가 이제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특히 그 분들 역시 ‘생계형’ 보다는 ‘봉사형’ 직업관에 더 주안점을 두고 선거에 임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전주 우리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