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소년 명필
[온누리] 소년 명필
  • 이종근 문화교육부 부국장
  • 승인 2018.07.11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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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때 월성 위 궁에 붙인 김정희의 입춘첩을 본 박제가는 “이 어린 아이가 훗날 학예로 이름을 드날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희가 7살 때는 당대의 명재상 채제공이 역시 입춘첩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글씨로 이름을 날릴 만큼 명필(名筆)이다.” 그야말로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낭중지추의 재주였는데 당대의 재상 채제공은 추사의 앞날을 예지한 듯한 말을 남겼다. “만일 글씨를 잘 쓰게 되면 반드시 운명이 기구할 것이니 절대로 붓을 잡게 하지 마시오. 그러나 만약 문장으로 세상을 울리게 되면 크게 귀하게 되리다.”
전주 한옥마을의 편액을 자세히 살펴보면 소년 명필의 경연장으로 볼 수 있다. ‘한벽청연(寒碧晴煙)’은 ‘완산8경’의 하나로 수려한 풍광으로 이름나 수많은 선비들이 찾았던 전주 한벽당의 경치를 이름한다. 한벽당으로 오르는 돌계단에서 마주보는 ‘한벽당’ 편액은 낙관이 보이지 않는다. 행서임에는 분명하지만 조선시대를 풍미한 조맹부체와 흡사하다. 누각 안쪽 편액은 김예산(金禮山)의 친필로 9세에 썼다는 ‘의섬김예산구세근서(義城金禮山九歲謹書)’의 낙관이 있다. 강쪽 편액은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의 친필이다. 또한 한벽정 동편의 요월대(邀月臺) 편액은 석전(石田) 황욱(黃旭)의 친필이다.
부안군 주산면 예동마을의 김일재(金日載)는 아들 예산(禮山)과 석천(石川)을 위해 김제의 유학자 유재(裕齋) 송기면(宋基冕, 1882∼1956)선생의 집에서 4개월 여 동안 기숙하며 서예를 연마케 했다고 한다. 개암사의 요사채로 쓰는 월성대 능가산(楞伽山) 편액은 ‘김석천구세서(金石川九歲書)’, 개암사(開巖寺) 편액은 ‘김예산팔세서(金禮山八歲書)’라는 낙관이 있다.전주 최씨종대 화수각(花樹閣) 편액은 근원(槿園) 구철우(具哲祐:1904~l989)의 작품이다. 그는 전남 화순군 한천면에서 출생한 부잣집 외아들로 여덟 살 무렵에 이미 ‘소년 명필’로 알려졌다. 종대(宗岱)는 ‘조상 대대로 이어온 집터’, ‘화수(花樹)’는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니, 화수각은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친목을 다지는 건물을 의미한다.
천주교 전동교회와 성심유치원이란 전동성당 입구의 빗돌을 누가 썼는지 아는가. 천주교 전동교회(오른편)와 전주 성심유치원(왼편)이란 글씨는 중견 서예가 백담(百潭) 백종희(한국서예교류협회 회장)씨가 1985년 해성중학교 3학년에 다닐 때 쓴 것이다. 작가는 성심유치원이라는 의미에도 담겨있듯 ‘성심(聖心)’을 다해, 아니 ‘성심(誠心)’을 다해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는 1984년부터 1985년까지 소년 조선일보의 문예상에서 서예 대상을 차지, 문교부장관상을 2번이나 받았다. 그는 이 학교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학생이 문교부장관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새로운 문패가 들어서면서 내용이 달라진 가운데 그의 글이 떨어지지 않아 바로 아래에 묻혀버렸다고 하니 참으로 아쉽다. 전주 한옥마을의 스토리가 하나가 사라져 아쉽기만 하다./이종근(문화교육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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