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그리드의 전주살이-번역본] Sherry 모험담
[잉그리드의 전주살이-번역본] Sherry 모험담
  • 최수희 번역작가
  • 승인 2018.07.26 2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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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친구들을 좋아한다. 정말이다. 친구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도 내 일이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 말도 안 되는 운전을 한다. 예를 들자면, Sherry 그녀다. 그녀는 믿기기 않을 정도로 대단한 친구다. 23년 전, 전주에서 우리는 만났고 내 룸메이트로 두 번째 짝이 되었다. 첫해는 세 명의 사내들과 함께 집을 나누어 사용했고, 이듬해에는 세 명의 여자들이 같은 집에서 살았다. 그녀와 나는 가장 잘 통하는 룸메이트였다. 학원에 출강하러 나온 첫날, 나는 그녀에게 우리 숙소로 되돌아가는 방법을 알겠냐고 물었다. 학원에서 차를 태워 그녀를 데리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데 나는 도움이 필요했다. 집으로 가는 도중, 술에 취한 나이든 남자가 그녀를 보자 팔을 움켜잡았다. 여관으로 끌고 가려고 했다. 남자가 원하는 심사가 무엇인지 짐작한 그녀는 저항을 했다. 한참이나 우리를 뒤따라오며 사내는 흐뭇해했지만, 우리는 힘을 합쳐 그를 밀쳐버렸다. 사내를 향해 나는 한국말로 욕을 했다. 화가 난 사내는 씩씩대며 욕지거리를 퍼부으면서 투덜거리며 따라왔다. 우리 둘은 집을 향해 달렸다. 사내는 우리를 놓쳤으나, 우리를 찾으러 한 시간이나 골목마다 오르락내리락 했다. 그 사건은 Sherry와 내가 겪은 갖가지 모험담 중 하나다.
나처럼 Sherry도 몸무게 때문에 약간의 고민을 한다. 하지만 나와 비교하면, 얼토당토않은 처지이다. 그녀는 사내라면 저항할 수 없는 매력적인 파란 눈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나는 어디든 가기위해 자전거 한 대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강아지를 태우기 위해서 캐리어를 달고, 뒤 자리에는 한 사람이 앉거나 물건 보따리를 묶을 수 있는 받침대도 얹었다. 오후가 되면, Sherry와 나는 똑같이 집을 나왔지만, 나는 학원까지 걸어서 가기 싫었다. 학원은 대학 근처 덕진 지하도 옆에 있었다. 우리는 전북대 후문 근처 언덕 꼭대기에서 살았다. 아래로 내려가면 곧장 닿는 도로는 백제로였다. 그래서 그녀는 뒤쪽에서 깡충깡충 뛰어서 내려갔다. 우리는 언제나 그 언덕을 바람처럼 내려갔다. 사람들은 그저 우리를 빤히 쳐다보며 길을 비켜주었다. 
그녀는 유럽에서 교사로 일을 하고 싶어서 떠났지만, 한국으로 되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생길정도로 썩 좋지 않았다. 그러다 서울 지역 한쪽 끝에 있는 일산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우리의 모험은 계속 되었다. 한 달에 한차례 나는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갔다. 그 시절에는 비행기 값이 버스 요금보다 조금 더 비쌌다. 그러나 네 시간 이상이 걸리는 버스대신에 비행기를 타면 사십오분 만에 서울에 도착했다. 그러다 그녀에게 가정이 생겼기 때문에, 다시 떠나게 되었다. 캐나다로 돌아가 동쪽 해안가에 있는 New Brunswick까지 갔다. 한때 나도 온타리오에서 살았다. 하지만 운명이 그렇게 된 것처럼 그녀는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에서 자랐고, 종종 아주머니가 살고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비행기를 타고 내가 집으로 간다면, 그녀는 이십사 시간이나 운전을 해서 내가 집에 도착하는 시간과 똑같은 시간에 맞추어 아주머니댁에 도착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면 어디라도 운전해 주면서 나랑 사오일을 지냈다. 그녀의 운전 덕택으로 나는 다른 친구를 만나러 가거나 친척들을 방문하고 우리부모님 묘소도 찾았다. 쇼핑이나 먹으러 다녔다. 작년에도 나랑 일주일을 함께 보냈다. 그때도 영희를 마중하러 공항까지 나갔고 우리를 태우고 온타리오 남부 전 지역을 누비고 다닌 후 한국으로 돌아갈 때는 배웅까지 해주었다. 우리 여동생들도 그녀를 아주 좋아한다. 그랬던 그녀가 이곳 한국으로 오는 중이다. 현재 교감으로 재직하고 있는데, 그녀의 주(州)에서는 중국에도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학교 측에서 경비를 부담해주는 업무 출장 중이다. 중국과 한국 사이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잠시 한국에 있는 나를 만나러 오는 중이다. 나는 그동안 그녀를 맞이하기 위해 청소하고 집 정리도 했다. 이번 주에는 침대 하나를 구입해서 들여놓았다. 비행기 번호를 알았는데 인터넷이 또 안 된다. 그래서 오늘아침 비행기를 확인하지 못했다. 번호를 받아 적을 때, Korean Air인지 물었다. 공항 제 2터미널로 마중을 가야하기 때문이었다. “김포공항에서 보자”는 문자를 받았을 때, 나는 인천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 있었다. 좀 더 일찍 문자를 확인해야 했는데, 청소를 하느라 너무 바빴다. 전화로 확인해보니, 그녀가 김포공항으로 오는 것이 확실했다. 지난 2월 나는 중국에 가는데 인천공항을 이용했다. 그래서 김포공항으로 온다는 가능성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물론 보통 김포공항을 들러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을 나는 타지 않았고, 곧장 인천공항으로 달리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탄 것이다. 그녀를 만나기까지 무척이나 힘든 여정이었다. 그렇다. 나와 Sherry에게는 항상 모험이 따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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