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그리드의 전주살이-번역본] JSA 탐방기-친구 Sherry와 함께
[잉그리드의 전주살이-번역본] JSA 탐방기-친구 Sherry와 함께
  • 최수희 번역작가
  • 승인 2018.08.09 1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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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Sherry의 세 번째 한국방문이 막 2주가 지났다. 우리는 “탑”어학원에서 일을 하다, 23년 전에 만났고 2명의 다른 캐나다 여성들과 동거인이었다. 나의 강아지 Ainslie까지 함께 살았다. 한국으로 오기 전, Sherry는 중국으로 출장을 갔다. 이곳보다 훨씬 더 시원한 지역인 캐나다 동부 연안 New Brunswick에 있는 한 중학교에서 그녀는 교감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녀의 주에서는 그들이 실행하고 있는 교육과정으로 중국에도 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캐나다에 있는 학교에서도 중국어과목을 조만간 시작하려고 한다. 내가 살고 있는 한국과 출장지 중국이 이웃하고 있기에, 그녀는 나를 보기위해 출장 중 짬을 내서 짧은 방문을 하기로 했다. 전에 그녀가 한국에서 몇 번의 여름철을 보낸 적이 있기에, 여름 날씨가 얼마나 끔찍하며 지독한 더위인지 익히 알고 있는 터라 주저했다. 그녀는 이번 여름을 과소평가했다. 나는 이런 날씨라면 익숙해졌지만, 작년 8월과 올 들어 지난 주 날씨는 과히 충격적이었다. 
공항에서 그녀와 만났다. 중국에 있는 동안 날씨가 무척이나 나빴는데, 이곳 한국의 날씨도 몹시 무섭게 덥다고 나에게 말했다. 난 우리 집 앞문을 열어 젖혔다. 일렬로 선풍기 여러 대를 늘어놓고, 선풍기 한 대는 바람이 앞 쪽에 있는 방을 향해 불도록 했고 다른 선풍기 한 대는 그녀의 침대가 놓여있는 방을 향해 바람이 불어가도록 했다. 또 다른 선풍기 한 대는 실내의 공기가 밖으로 나가도록 방향을 잡아놓았다. 집안은 잠을 자는데 꽤 적당한 온도가 되었다. 하지만 나날이 더위가 맹렬해져 에어컨을 사용하기로 했다. 휴대용 에어컨인데, 수리공에게 설치를 부탁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저기 선풍기를 놓고 돌린다고 해도, 휴대용 에어컨으로는 집안 전체를 시원하게 유지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용량이다. 잘 때는 온도를 낮추기 위해 Sherry는 접이용 매트리스 위에 젖은 수건을 깔고 잠을 청했다. 
에어컨이 있는 장소만을 골라 들어가면서, 우리는 서울에서 두 번째 주를 보냈다. 이태원만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성공적이었다. 에어컨이 빵빵한 호텔을 잡아 우리는 밤낮으로 에어컨을 가동했다. 사실 나는 이따금씩 추웠다. Sherry가 한국에 머문 마지막 날, 우리는 온종일 DMZ와 JSA를 탐방했다. 버스 뒷자리는 시원하지 않아 앞쪽 시원한 곳에 앉아있는 운전수에게 에어컨 온도를 올려달라고 계속 졸라댔다. 오전에 우리는 3호 터널로 갔는데, 북한이 DMZ 지하로 땅굴을 파놓은 것이다. 몇 년 전 나는 땅굴 한 곳을 탐방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본 땅굴이 그때 보았던 터널이리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땅굴의 기온은 시원했고 심지어 춥게 느꼈기 때문에, 처음에는 좋았다. 하지만 내 무릎은 통로를 따라 내려가기를 거부했다. 이어서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힘겨운 분투 끝에 나는 350미터까지 내려가는데 성공했다. 우리 모두 딱딱한 헬멧을 의무적으로 착용하라는 주문에, 나는 예전에 탐방했던 터널이 아니다 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봤던 땅굴은 남한 군인들이 북한 사람이 그 통로를 따라 오는 사람이 없는지 유리를 통해 관찰하기 위해서 바닥의 커다란 유리가 있는 곳까지 단거리 보행으로도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아무튼 이번에 탐방한 땅굴은 머리 위로 파이프가 지나가고 울퉁불퉁하고 자주 자주 매우 표면이 고르지 않은 낮은 바위 천정이 나타나는 터널을 통해서 약 300미터를 걸었다. 똑바로 설 경우, 페소공포증에 나는 간담이 섬뜩했다. 머리를 약간 수그리고 걷는 편이 안전했고, 천장이 너무 낮아서 심지어 허리마저 구부리고 걸었다. 거부반응으로 뇌가 계속해서 벌떡벌떡 뛰었으니, 그 상황에 딱 맞는 명령은 아주 많이 안 좋다는 신호였다. 수차례나 천장에 내 머리를 부딪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는 온화하게 침착성을 잃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대규모의 탐방객들이 내 곁을 지나갔다. 터널 끝에 있는 작은 유리를 통해 관찰을 하고 되돌아가려는 순간이었다. 그때도 나는 당황하지 않으려 애썼다. 단체 관광객은 그 곳을 너무 협소하고 무질서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들 중 몇 명은 내 쪽으로 쳐들어오듯 가까이 걸어왔는데, 중심을 잃은 나는 지팡이를 든 체 넘어졌다. 비좁은 터널을 빠져나와, 350미터를 간신히 되돌아 나왔다. 가이드와 Sherry는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내게 도움이 필요할 때, 몇 명의 근육질 남성들이 나를 붙잡아 주었다. 인내심이 있는 사내들이었다. 심장의 질환 때문에 작년 10월 병원 생활을 끝내고, 나는 내게 주어진 남은 삶을 살고 있다. 하늘이 아직 나를 기다려주기에 말이다. 언제나 나는 나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고 하지만, 이번에도 사람들은 나 때문에 기다려야했다.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말이다. 돌아가는 버스는 결국 10분 늦게 출발했다. 
불고기 점심을 먹고, 우리는 JSA로 향했다. 예전에는 미국인 병사 한명이 우리를 안내했는데, 이번에는 남한 군인들만 있었다. 북한 사람들은 화요일의 폭염 때문인지 지혜롭게 실내에 머물러 있었다. 우리를 안내한 병사는 설명을 굉장히 잘했고 우리의 질문에도 응대해주었다. 전에 탐방했던 때가 기억이 났다. 그대 남한 병사들은 북한 군인들이 남측에서 어디를 감시하고 있는지 알 수 없도록 그리고 상대의 기를 제압하기 위해 썬그라스를 끼고 있었다. 양쪽 진영의 병사들은 피신할 경우를 대비해 건물을 지나 노출된 도로의 중간 지점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내게는 재방문이 흥미롭기는 했지만, 판문점을 제외하고는 예전만큼 감흥이 없었다. 최근에는 텔레비전에서 여러 차례 판문점이 보였다. 그래도 Sherry가 정말 가보기를 원했기 때문에, 우리는 JSA 탐방을 나선 것이었다. 서울에 일찍 도착하기 위해서 우리는 새벽 3시 리무진을 탔다. 저녁밥을 일찍 먹고 나서, Sherry의 여행 마지막 밤 우리는 아주 일찍 둘 다 널브러진 채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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