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의 고장, 김제이야기] (9) 나라를 지키는 연기와 불꽃의 길, 김제 길곶 봉수대(烽燧臺)
[지평선의 고장, 김제이야기] (9) 나라를 지키는 연기와 불꽃의 길, 김제 길곶 봉수대(烽燧臺)
  • 정윤숙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 학예연구사
  • 승인 2018.09.13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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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시 진봉면 심포리 봉화산(84m) 정상에 길곶 봉수대 터가 있다. 길곶 봉수대는 서해로 돌출한 진봉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하여 만경강과 동진강 하구 사이 서해안이 한 눈에 조망되는 군사적 요충지이자 봉수대 설치의 최적지이다. 봉수는 밤에는 횃불인 ‘봉(烽)’을 사용하고 낮에는 연기인 ‘수(燧)’로 신호하여 지방의 상황이 가장 신속하게 중앙에 전달되는 통신수단이자, 국가와 지방을 수호하는 중요한 국방시설이었다. 

송나라인 서긍이 저술한 『선화봉사고려도경』(고려 인종 1년, 1123)에 의하면 ‘송의 사신이 흑산도에 들어서면 매번 야간에는 인근 지역의 산정 봉수에 순차로 불을 밝혀 왕성까지 인도 한다’고 한 것으로 보아 이미 봉수가 유지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 의종 3년(1149)에 봉수식, 거화방식, 근무정원 등이 정립되었으며, 조선 세종 때 4군 6진의 개척과 더불어 제도 정비된 이래, 1895년 봉수군이 해체되기까지 유지되었다. 

조선시대 봉수는 경(京)봉수, 연변(沿邊)봉수, 내지(內地)봉수로 구분되고, 총 5개 노선이 유지되었는데 각 봉수로에서 올라온 정보는 한양의 목멱산(현 남산)으로 집결되었다. 그 중 길곶 봉수대가 속한 봉수로는 제5거(炬)로 순천 돌산도에서 시작하여 전라 충청 경기의 서남해안을 아우르고, 목멱산에서 수렴하여 조정에 보고되었다. 약 60개의 직봉(直烽)과 34개의 간봉(間烽)으로 구성되었는데, 길곶 봉수대는 29번째 직봉에 해당된다. 

잠깐 제 5거 중 전북의 봉수를 살펴보면, 총13개소로 홍농산(전남 영광)을 받아 고리포 ‧ 소응포(이상 고창)로 연결되고, 월고리 ‧ 점방산 ‧ 계화도(이상 부안)를 이어 길곶(김제)에 닿는다. 길곶에서 사자암 ‧ 화산 ‧ 점방산 ‧ 오성산 ‧ 불지산(이상 군산)을 이어 소방봉 ‧ 광두언(이상 익산)을 연결하고 강경산(충남 논산)으로 넘겨준다. 설치 위치로 미루어 전북의 봉수는 해안경비 및 급보통신 기능과 동시에 조운(漕運)의 중요 해로인 서해항로와 상관된 것으로 보인다. 

봉수의 전달은 홰의 개수로 정해지고 해안과 육지를 구별하였다. 해안 신호에서는 평상시 1개, 왜적 해안 출연시 2개, 왜적 해안 접근 시 3개, 우리 병선과 접전시 4개, 왜적 상륙시 5개의 홰를 올렸다. 육지의 경우는 적이 국경 밖에 나타나면 2개, 변경에 가까이 오면 3개, 국경을 침범하면 4개, 우리 군사와 접전하면 5개의 홰를 올리도록 했다.

제5거의 시작과 끝을 어림하면 약 400㎞, 60여개의 직봉을 따라 정보가 전달될 경우, 각 봉수간 거리는 6.7㎞로 내지봉수 거리 약 20㎞에 비해 매우 조밀하게 구성되어있다. 근무태만이나 기상이상 등 다른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제5거의 서울까지 정보 도달시간은 약 4시간 정도 소요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시스템으로만 따진다면 파발 등과 비교해도 이보다 신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낮의 연기신호인 수(燧)의 재료는 이리의 똥을 태웠다고 하는데 그를 낭분(狼糞) 혹은 낭연(狼煙)이라고 한다. 내 손 안의 모바일폰은 지금도 전세계와 실시간으로 통하고 있다. 손 안의 모바일폰을 쥐고 몇 십리, 몇 백리 점과 선으로 연결되었을 나라를 지키는 연기와 불꽃의 길을 아득히 가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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