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농악의 역사는 멀리는 마한시대 때 정읍 지역에 자리했던 고대국가 초산도비리국과 고비리국의 오월제와 시월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시대에는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는 <정읍사井邑詞> 악곡에 맞추어 장고를 치며 부르는 ‘무고舞鼓’, 곧 장고춤이 보이기도 하고, 조선시대 후기 정읍에서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에서 동학군을 훈련시키는 데 농악을 활용한 기록도 보인다. 일제강점기에는 정읍 보천교에서 농악을 종교음악으로 사용하면서 전국 농악 명인들이 정읍으로 모여들어, 정읍농악이 근대화하는 기초가 되었다. 당시에 이런 변화의 중심에 선 인물이 정읍 감곡면 유정리 출신의 김도삼이다. 광복 후에는 전문적인 ‘대회농악’ 활동으로 이어져, 1958년 ‘제1회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 최우수상 등을 수상하였다. 1960년대 『호남농악』 조사보고서에서 우도농악 부분은 정읍농악을 중심으로 기록되었다. 1970~1980년대의 침체기를 거쳐, 1990년대 이후 유지화·김종수·이영상이 전라북도 지정 무형문화재가 되었다. 현재는 유지화(쇠)·김종수(고깔소고)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정읍농악보존회’와 ‘정읍시립농악단’이 정읍농악을 보존 계승 전파하고 있다.
정읍농악 쇠잽이의 주요 계보는 박만풍-김도삼-현판쇠-미상의 계보가 중심으로, 김홍술-김광래-전사종 등으로 이어지는 계보와 김바우-박남석-유지화 등으로 이어지는 계보가 있다. 장고잽이의 계보는 김홍집-이봉문-이정법/유남영/추교동-김병섭-이영상으로 이어지는 계보와 김홍집-김대근/신기남/김슬길-이동원-김형순으로 이어지는 계보가 있다.
소고잽이 계보는 권홍근-김진철/김종수의 계보와 정오동-홍유봉-김종수/김진철의 계보가 있다. 잡색(대포수)의 계보로는 김도삼-이봉춘/전재성-김영수/서남규으로 이어지는 계보가 있다.<김익두 전북대 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