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홍재일기, 동학농민혁명을 증언하다

“기념일 제정과 함께 동학농민운동으로 죽어간 사람들의 명예회복 이뤄져야"

 

2004년부터 지속되었던 동학농민혁명기념 법정기념일 지정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모양이다. 고창, 부안, 정읍, 전주시가 각각 무장기포일(4월 25일), 백산대회일(5월 1일), 황토현전승일(5월 11일), 전주화약일(6월 11일)을 기념일로 지정할 것을 제안하고 이를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각각의 날짜는 모두 동학농민혁명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기점이 되는 날이어서 그 나름의 역사성과 정당성을 갖추고 있다고 할 것이다. 
기념일 지정에 뒤늦게 뛰어들었던 부안은 `홍재일기' 1894년 3월 27일자 일기의 내용을 근거로 3월 26일을 백산대회일로 판단, 당시 양력 5월 1일을 백산대회기념일로 지정할 것을 촉구해 왔다. 백산대회는 1894년 음력 3월 35~27일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면서 그 날짜가 정확하지 않아 그 실체마저 의심하게 되었다. 이런 사정으로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애당초 기념일로서 주목되지 않았다. 
그런데 `홍재일기' 1894년 3월 27일 일기에 “날씨는 어제와 같았다. 오후에는 남풍이 불었다. 동학군(東學軍)이 어제 백산으로 진을 옮겼다. 금일 우리 고을에 들어온다고 하였다. 도소봉에 올라가 바라 보았는데 거취를 알 수 없어서 바로 내려왔다. 친구 최수겸과 성운이 다녀갔다. 동학군은 즉시 전주로 향했다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위의 내용에는 ‘백산에 모인 동학군’이 언급되어 있다. 해석에 따라 백산대회를 긍정하는 것인지 부정하는 것이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한가지 중요한 것은 ‘동학농민혁명’에 참가하지 않았던 부안 사람 기행현(奇幸鉉)은 ‘동학도(東學徒)’, ‘동학당(東學黨)’ 등으로 지칭하였던 ‘무리’를 3월 27일을 기점으로 최초로 ‘동학군(東學軍)’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동학’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여실히 살펴 볼 수 있다. 이것은 그동안 백산대회에 대한 평가와도 일치하고 있는 부분이어서 백산대회에서 동학군의 전열을 가다듬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지역자료를 찾아 조사하고 이를 연구하는 필자로서는 개인일기 한 줄이지만 간과할 수 없는 이유이다. 
`홍재일기'는 부안군 주산면 홍해마을에 살던 기행현이 1866년부터 1911년까지 45년간 쓴 일기이다. 행주기씨 족보에 의하면 기행현(奇幸鉉)은 부안 입향조 기종와의 손자 기사운(奇師雲)과 부안김씨 김명황(金命璜)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초명은 행현(幸鉉), 자는 성첨(聖瞻)이고 족보명은 기태현(奇泰鉉)으로 1843년(헌종9) 4월 20일생이다. 기행현의 일기에는 19세기 후반기 부안과 인근의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전문(傳聞)’과 ‘시사(時事)’ 등이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 원납전 징수, 가뭄으로 인한 농민들의 피폐와 쌀값의 변동, 유학전이니 훈예전이니 하는 명목세의 증가, 선정비 건립을 위한 비역전(碑役錢) 할당, 1894년을 전후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견문(見聞)’, 그리고 그 이후의 변화상까지 살펴볼 수 있기 때문에 그 역사적 가치가 더욱 높다. 이름 없는 선비 기행현이 역사적 인물로 떠오른 순간이다. 
필자는 2013년에 인근의 연구자와 함께 지역사료연구회를 구성하여`홍재일기' 탈초를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17년 12월이 되어서야 7책 45만여 자의 `홍재일기'의 탈초를 마쳤다. 그동안 자료를 촬영하고 목록을 정리하고 탈초를 진행하면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찾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아직도 더 많은 시간과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무엇보다 이제 `홍재일기'를 번역하여 공유함으로써 연구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홍재일기' 외에 기행현의 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는 전적류 22책과 고문서 48건에 대한 추가 연구도 필요할 것 같다. 또 기념일 제정과 함께 `홍재일기'에 나타나고 있는 동학농민혁명을 전후한 시기에 동학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로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추가조사와 명예회복도 같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