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옷을 입고 바람에 차가움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가을이 무르익어 겨울로 가는가 보다. 가슴으로 전해오는 따뜻한 마음들이 점점 그리워지고 소중해지는 시간이다. 고은님의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시구가 저절로 떠올려진다. 이 계절이 되면 왠지 누구에게라도 편지를 하고 싶다. 사람 냄새 오롯이 묻어나는 손 편지를 쓰고 싶다. 책갈피로 정성스레 꽂아두었던 단풍잎을 하나 넣고 한자 한자 정성으로 쓰인 편지에 이때쯤이면 생각나는 결핵협회 크리스마스실을 부쳐 행복한 마음으로 우체국으로 달려가고 싶다. 하지만 마음만 성큼 앞서지 손 글씨로 정성스레 편지를 써본지가 언제였을까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요즘은 가끔 유명 스타들이 팬서비스 차원에서 직접 썼다는 손 편지들과, 경찰의 날을 맞아 감사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경찰서에 전달했다는 어린 초등학생들의 훈훈한 이야기들만으로도 무한한 감동을 받는다.
소통의 방법이 달라지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맞게 우리는 매일매일 다양한 메신저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다. 분명 우리의 한글인데도 그 뜻을 모른다. 세대마다 다르게 그들만의 언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특히 우리의 아이들은 대부분 다른 세대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단어들로만 대화를 한다. 그것이 그들만의 진정한 소통이라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삶을 꿈꾸는 우리들은 단지 손으로 써서 고치는 과정에서 구겨져버리는 종이보다는 디지털 기기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훨씬 환경을 생각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잘못 출력된 좋은 종이들을 재활용하기는 싫어한다. 그렇기 때문인지 가끔은 매일 실시간으로 빠르게 전달되는 모바일 서비스의 기계적인 글귀보다는, 진심을 담은 마음의 손 편지가 그리워지는 것은 이 계절에만 느낄 수 있는 낭만인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소통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가족의 해체 등 가족 간의 문제로 인한 사회적인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진단하고 이를 실천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가족 간의 의사소통, 대화가 강조되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출퇴근시간 지하철의 풍경을 보더라도 눈을 감고 잠을 자는 사람들조차 모두들 자신의 핸드폰만을 생각하는 것 같다. 초등학생에서부터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 모두 디지털 기기들과만 소통을 한다. 아주 가끔 노약자석의 어르신들만이 옆의 사람들과 대화를 할 뿐이다. 도시로 갈수록 더욱 그렇다. 낯선 사람의 방문에 정겨운 시선과 따스한 말 한마디, 무언가를 나누어 주고 싶어 하는 시골버스의 매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혹시 부딪치기만 해도 무성의한 표정이나, 자기만의 세계에 침범한 것을 질타하는 차가운 시선만이 되돌아온다. 사람들은 소통의 시대라고들 하지만, 우리는 언제부턴가 디지털 시대 소통 방법의 빠른 변화 속에 적응하느라 무척이나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그 속에서 진정 인간다운 소통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4차 산업혁명시대 소통의 화두는 통섭이다. 통섭은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이 사용한 ‘컨슬리언스(consilience)를 최재천 교수님이 번역하여 제시한 용어로서 지식의 통합을 의미한다. 물론 통섭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디지털시대 스마트 혁명을 불러일으킨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철학을 전공했던 것처럼 세계 IT업계에서는 최근 인문학과 기술에 대한 이해 모두를 갖춘 '통섭형 인재'가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업에서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인문학적 소양과 기술을 겸비한 차세대 인재 양성에 주력하고자 혁신적으로 도입하였다. 통섭에 대한 관심의 하나로 학문간 융복합이 대학가에서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가?’에 대한 해답을 통섭을 통해 얻으려 한다.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과의 사이의 소통은 서로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서로의 학문만이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기보다는 보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눈높이를 맞추고 소통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음을 열어야 한다. 교육에서도 내 지식만 고집하여 가르치겠다는 태도에서 벗어나 낯선 문화를 탐구하는 가치 있는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학생들과 진정한 소통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학문의 경계를 넘어 낯선 분야를 개척하고 탐구해보는 지식인의 자세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또 다른 삶에서의 소통의 가치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