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임영춘은 장편소설 『갯들』(1981년, 현암사)을 통해 현 김제시 광활면, 곧 일제강점기 당시, 동진농업주식회사가 모집한 이주 농민의 삶을 기록하였다.『갯들』은 주인공 ‘나’(소설명 임판순, 작가 임영춘)를 중심으로 부친인 임종해, 조부인 임치석 삼대와 주변이 어떻게 땅을 잃고 간척지에 정착하여 혹독한 노동에 종사하였는지에 대한 간난신고의 기록이자, 당대의 집단 기억이며 우리지역에 대한 정밀한 민족지이다.
동진농업주식회사는 일본재벌인 아베 후사지로(阿部房次?)가 자기자본 백만원과 총독부 자본 백만원을 들여 1924년부터 1927년까지 김제군 진봉면 거전에서 학당까지 약 10㎞의 방조제를 쌓아 조성한 1,800정보(국제규격 축구장 약2,500개)의 간척지 농장이다. 그 과정에서 일본 군부 출신의 후쿠이 시게키(福井重記)가 방조제 완공과 간척지 조성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는데, 후쿠이는 1921년 12월에 베르사이유 조약 평화실시위원이자 국제연맹 군사감독위원도 겸임할 정도의 일본군부의 재원이었다.
1929년부터 1935년까지 총676호의 이주 농민이 간척지에 정착했다. 당시 동진농업주식회사에서는 이민자를 받을 때, 손바닥 검사 등 신체검사를 통해 소처럼 일을 할 수 있는 소작인을 모집하였다. 바람을 겨우 막는 삼칸 초막을 거처로 이주농민 부부가 한해 농사지어야할 논의 규모는 6천평(초기에 7천이백평)으로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최소한의 시간으로 먹고 자고 남은 시간 전체를 노동에 쏟아 생산량을 맞추어 쫓겨나지 않는 것이었다.
소작 분할은 4 · 6제로 4할이 농민의 것이라지만 조세, 논갈이대, 비료대, 종자대, 연차로 갚는 입주가옥대, 식량 빚 등으로 갈취당하고 이주농민은 최소한의 식량으로 연명해야 했다. 이와 반대로 동진농업주식회사의 수입은 각종 지표상 목표량에 도달하였고, 아베는 농장 안에 간척출장소 및 농사시험장 등을 세워 토지개량사업을 통한 산미증식계획에 일조하였다. 이는 이 시기 간척사업이 가지는 수탈적 성격을 방증하는 것이다.
당시 이주농민이 참혹한 노동환경은 소설 곳곳에서 처절하다. 농민들은 바쁜 모내기철을 맞추기 위해 날이 밝기가 바쁘게 나와 어두워질 때까지 쉴 새 없이 모를 심어야 했으며, 곪은 손가락을 헝겊으로 싸맨 채 모를 꽂다가 모가 떠 치도곤을 당하거나, 못줄 속도를 못잡아 허둥대다 기함해 기절하였다. 아이를 낳고도 사흘이면 반드시 논에 나와야했으며, 거센 해풍으로 논에서 일을 하는 동안 한 해만 해도 얼굴 가죽이 몇 번씩 벗겨지곤 했다.
참혹한 노동환경보다 감당하기 어려웠던 일은 어렵게 낳아 기른 자식들을 노동에 쫓기느라 지켜지 못해 배앓이병으로 잃고, 식수용 물항아리 등에 사고로 잃는 것이었고, 이 슬픔을 방조제 아래 몰래 묻어야 하는 것이었다. 또 동진수리조합에서 공급하는 용수 외에 별도의 식수원이 없었기 때문에 용수로 주변 윗마을의 생활오물이나 죽은 동물의 사체까지도 간척지의 몫이 되어, 더운 여름날 목마름을 참지 못하고 끓이지 않은 똘물을 마시고는 배를 앓다 죽는 경우들이었다.
임영춘선생의 갯들은 처절한 생존의 기록이자 광활 간척지 이주농민의 삶을 통해 들여다 본 식민지시대의 기억이다. 또한 작가의 처절한 경험이 녹아있는 일화 하나 하나가 매우 절실하여 여운이 길다. 그래서 좀 더 길게 생각하고 되뇌다 보면 임영춘선생의 작업들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에 대한 답을 얻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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