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계무대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대표적인 민족예술의 하나로 판소리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은 판소리가 오랜 역사에 걸쳐 구축된 한민족의 예술적 기량을 고루 갖추고 있고, 그 어떤 예술 장르보다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판소리 <춘향가>는 문학성과 음악성 그리고 연극적 요소 등 예술성이 단연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춘향은 본래 <춘향전>이라는 소설의 주인공으로서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춘향가>라는 판소리로 전승되었던 인물이다. 춘향은 소리판에서 공연될 때마다 가장 많이 판소리꾼들에게 오르내리며 살아 숨 쉬는 인물이다.
신분과 죽음을 초월한 사랑의 화신
춘향이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살아있는 이유는 우리와 똑같이 현실을 아파하고 진정으로 현실을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임과 만났을 때 노골적인 성애를 표현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임이 떠나고자 하였을 때 발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춘향이 보여준 사랑의 절정은 옥중상봉 대목에서 거지 행색의 이몽룡을 만나는 순간에도 절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방님을 잠시라고 뵈었으니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고도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살아날 가망이 전혀 없는 극한 상황이지만 춘향은 여전히 이몽룡을 사랑하고 뒷일까지 부탁한다. 죽음을 앞둔 절박한 상황에서 춘향의 유언은 눈시울을 뜨겁게 하고, 우리를 감동의 세계로 몰아넣기에 충분하다.
약속과 신뢰를 통해 시련을 극복하는 마인드
보통 기생들은 권세와 재물 앞에 굴복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춘향은 이몽룡과의 약속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시련과 역경을 이겨냈다. 그래서 춘향은 변학도의 수청을 거부하고 오직 이몽룡만을 섬기는 일부종사와 일편단심으로 백년가약을 저버리지 않았다. 살아있는 조개는 이물질이 들어오면 고통스러워 자신의 물질을 분비하여 시련과 눈물의 결정체인 진주를 만들듯, 춘향은 변학도의 매질과 감옥살이라는 시련과 역경을 통하여 이몽룡과의 재회의 소망과 기쁨을 바라보고 마침내 재회하였다.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는 백성의 대변자
춘향의 신분은 기생이었다. 조선시대에 한번 기생은 영원한 기생이었다. 당시에 다른 종을 대신 넣고 기적(妓籍)에서 이름을 지우는 것은 위법이었다. 그래서 기생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굴레를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춘향은 당시 사회의 현실적인 제약을 뚫고 기생이지만 기생이기를 거부하고 양반과 평등한 인간이라는 주장을 앞장서서 펼치고, 더구나 양반의 아들인 이몽룡과 결혼함으로서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까지 하였다.
춘향은 봉건 체제 아래에서 신분 타파와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존엄하다는 정신을 염원하는 백성들의 대변자였다. 그래서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항거하였다. 춘향의 반항은 민중들의 항거였고, 춘향의 주장은 백성들의 염원이었고, 춘향의 아픔은 민초들의 고통을 대변하였다.
춘향가의 표면적인 주제는 남녀 간의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이면적인 주제는 자유와 평등을 향한 당시 백성들의 염원을 대변한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 백성들은 춘향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하며 함께 판을 만들고 추임새로 동조하였다.
수많은 고전의 인물들이 있지만, 춘향만큼 모든 국민의 사랑과 공감을 받은 인물은 없다. 춘향의 이상은 만인이 평등한 사회의 실현이었다. 그래서 춘향은 위대한 선택을 하였고, 그 선택을 위해 자신의 온 생명을 걸었다. 이런 멋진 춘향을 오늘도 목 놓아 부른다.
김정태(전라북도립국악원 학예연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