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의 고장, 김제이야기] (19) 풍요의 이름, 호남(湖南). 김제 벽골제 호(湖)의 남쪽

 

2018년은 한반도의 서남부지역이 ‘전라도’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지 천년이 되는 해로 한 해 동안 다양한 기념행사가 진행 중에 있다. 고려 성종 14년(995)에 강남도(江南道 : 전주 · 영주 · 순주 · 마주 등)와 해양도(海陽道 : 나주 · 광주 · 정주 · 승주 등)로 구획하였던 것을, 현종 9년(1018) 5도 양계 개편 시, 두 도를 통합하여 각각 전주목과 나주목의 앞 글자를 따 전라도(全羅道)라 명명하였다. 

정명인 전라도가 호명됨과 동시에 우리는 지역을 말하는 오래된 별칭도 함께 떠올린다. 바로 호남(湖南)이다. ‘전라도’라는 공식 명칭과 함께 호남은 한반도 서남부지역을 이르는 오래된 별칭이다. 그럼 ‘호남’이란 명칭은 어디서부터 연유하는 걸까? 

쉽게 연상되는 것은 중국 지명 호남과의 연관성이다. ‘8백리 동정’이라 칭해지던 중국 최대의 담수호 동정호(洞庭湖)를 기준으로, 그 남쪽은 호남, 그 북쪽은 호북이라 칭했다. 당(唐) 광덕 2년(764) ‘호남관찰사를 두었다’는 기록이 처음이다. 동정호 주변의 도시들은 비옥한 평야에서 나는 여러 농작물의 집산지이자, 내수면 어업, 그 중 잉어 잡이로 유명하다. 중국 내 호남이란 지역의 명칭과 의미가 자연스럽게 우리 강역 중 풍요의 이름으로 연계되었을 것이다. 

그럼 호남이란 별칭이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시기와 연유는 어떠한가? 사용례를 찾아보면 고려 고종 대의 천태종 승려, 정명국사 천인(1205~1248)의 시 중 ‘나는 호남의 마을들을 두루 다니고자 하나니(我行欲遍湖南村)’라는 대목이 호남이 사용된 가장 이른 기록이다. 기록의 전후관계를 따지면 대략 1240년 7월 이전으로 보이며, 당시 이미 ‘호남’이라는 별칭이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호남 유래를 설명한 기록은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의『반계수록(磻溪隨錄)』을 들 수 있다. 유형원은 ‘전라도와 충청도의 이름이 호남과 호서가 된 것은 이 벽골제에서 유래한 것이다.’(全羅忠淸之名爲湖南湖西 由於此堤)고 기술하며, 호남을 ‘벽골제호의 남쪽’으로 풀이하였다. 또 같은 글에서 ‘우리나라의 조세는 호남에서 나오는 것이 반을 차지한다.(一國租稅 出於湖南者居半)’ 라며 호남이 가진 생산력을 강조했다. 

호남의 호(湖)에 대한 이견도 존재한다. 옛 금강의 이름이 호강(湖江)으로 이 ‘호강의 남쪽’을 호남이라 했다는 주장은 1963년 발간된 이홍직의『국사대사전(國史大事典)』(1963)에서 처음 주장되었는데, 내용에 별도의 사유와 연원을 기재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후에 호강 연원설은 여러 연구자와 문헌에서 인용되기도 하였지만, 호강과 금강의 상관관계 불명으로 이병도 등에 의해 반박된 바 있다. 

‘이름’은 사물과 생물과 사건과 현상, 그리고 이 경우엔 공간에 부여된 ‘다른 것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붙여서 부르는 것’이다. 올해 전라도 정명 천년을 기념하며 우리지역이 가진 물산과 문화와 역사가 재인식 환기되었다. 동시에 동전의 앞뒷면처럼 비공식 별칭이나 정명과 거의 같은 의미맥락에서 광범위하게 통용되어 온 풍요의 이름, 호남의 연원을 더투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