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창] 남원 동학과 보국안민의 맥

“동학의 보국안민의 계책으로서 국가와 민족의 기운을 회복 하는데 큰 역할 할 것”

 

우리민족에게 가장 큰 고통과 슬픔을 안겨준 사건은 1910년 8월 22일 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인 육군대신 통감 데라우찌 사이에 조인된 한일합병(韓日合倂)이다. 8개조로 짜여 진 이 조약은 제1조에서 한국전체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영구히 일본정부에게 넘길 것을 규정함으로써 한국은 조선왕조가 건국 된지 27대 519년 만에 그리고 대한제국이 성립 된지 14년 만에 망하고 말았다. 이것이 경술국치 국권침탈 사건이며 1945년 8월15일 까지 36년의 긴 시간동안 한국고유의 전통은 물론 민족의 혼마저 파괴되어가는 일제치하의 수모와 지배를 당하게 되었다. 경술국치로 인하여 우리민족은 길을 잃었으며 찢어지는 통곡과 가슴 저미는 아픔을 겪으며 얼마나 울었던가! 그 뼈저린 고통과 아픔의 세월을 안고 흐른 109년의 세월! 2019년(포덕160년) 기해년(己亥年)이 밝았다.

“그런고로 우리나라는 나쁜 질병이 가득 차서 백성이 한 때도 편안할 날이 없으니 이것은 또한 상해의 운수니라. 서양은 싸우면 이기고 치면 빼앗아서 무슨 일이든지 못할 노릇이 없다 하니 천하가 모두 멸망 한다면 순망지탄(脣亡之歎)의 탄식이 없지 않을 것이라.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계책이 장차 어디서 나올 것인가.”(동경대전.포덕문)

보국안민(輔國安民)은 나라를 지켜 외세의 침략을 막고 백성을 도탄에서 건져 편하게 하려는 수운최제우의 동학 창도정신이다. 관(官)으로부터 탄압을 받으면서도 나라의 안전과 백성의 평안을 위하여 뿌리 깊은 전통문화가 살아 숨 쉬는 남원으로 향하여 교룡산성의 은적암에서 춥고 배고프지만 안도감과 평온을 찾는다. 훗날 관(官)에 체포되어 다리가 부러지는 혹독한 고문을 당하지만 다시개벽의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수운 선생으로서는 남원의 은적암은 대우주의 커다란 기운을 포태할 포근한 어머니의 품속처럼 다가왔다.
사통팔달(四通八達)의 남원에는 남원을 상징하는 남원성이 사적 제298호로써 축성된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통일신라 신문왕 11년에 축성하였다고 했다. 성의 규모는 둘레 약 3㎞(11,345尺), 높이 약 5.4m(18尺), 성 안에 군사용으로 샘이 71개소, 마면 16개소, 치첩이 1,016개소가 있었고 성 밖에는 성을 둘러 넓이 6m의 호를 파놓고 물을 흐르게 하였으며, 성안에는 부사청(동헌)을 비롯하여 주요 관아와 관리들의 주택지가 마련되어 있었다. 4대문이 있었다. 
숙종 18년(1692)에 임진왜란 때 파손되었던 성과 함께 남원의 수호신의 역할을 담당하는 4 개의 성문이 복원 되었다. 동문은 임춘루(臨春樓), 남문은 완월루(翫月樓), 서문은 망미루(望美樓), 북문은 공진루(拱震樓)이다. 남원은 교룡산성 은적암터, 갑오토비사적비, 동학농민혁명유적지 요천, 방아치전투지, 유적지 쪽뚤, 유물깃대바위, 유물 박봉양불망비, 유적지 광한루원, 유적지 유치, 김개남장군 동학군 집결지 등과 함께 동학의 향기를 품어내고, 동학의 정신을 표현하는 칼춤 용담검무는 보국안민의 민족적 기운이 강하게 서려있어 남원이 안고 있는 동학의 정신과 기운은 커다란 문화적 가치와 함께 향토적 색채를 품고 있어 가히 동학의 성지라 할 수 있으며 남원이 역사문화도시로서 그 바탕이 된다.

용담검무(龍潭劍舞)는 쾌활하고 부드럽고 강한 무예를 바탕으로 한 춤사위와 지극히 한국적인 멋을 품은 에술적인 선(線)을 가진 목검(木劍)으로 추는 검무이다.
수운 선생에 의해서 남원 은적암에서 추어진 수운의 검결(劍訣)과 함께 하는 용담검무는 동학의 보국안민의 계책으로서 국가와 민족의 기운을 회복 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결과 용담검무는 문화적 가치와 함께 무예성, 예술성, 건강성을 함께 지니고 있어 남원이 나라 전체에 자랑하고 또 남원시민의 건강을 지키는 방법론으로서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