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얼굴

“성형보다 우주의 조화로운 기운을 담아야 자꾸만 보고 싶은 그리운 얼굴이 된다"

“교수님, 기대하세요!”
학생이 크리스마스카드를 주며 말했다.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아, 하하. 너무 기대하지 마시구요.”
너스레를 떤다. 카드를 여니 오른쪽 면에 깨알 같은 글씨가 빼곡하다. 왼쪽 면에 안경 쓴 사람이 트렌치코트를 입고 서 있다. ‘존경하는 스승님’이라고 써진 걸 보니 내 초상인데 도통 얼굴이 낯설다. 그 아래 덧붙여 놓기를 
‘약간 남성적으로 그려졌지만 제 작은 성의이니 받아주세요.’
얼굴이 네모지고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눈매가 쭉 찢어졌으며 각진 어깨에다가 입술이 넓적하다. 내가 이렇게 생겼나 하고 다시 보았다.
저녁에 한 모임에 가서 크리스마스카드를 보였다. 벽화를 그리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선생님을 그리라고 하면 다 자기 얼굴을 그려요”라고 하면서 그 학생이 이렇게 생기지 않았냐고 되물었다. 그러고 보니 학생의 이미지가 내 초상에 배여 있었다. 어찌 보면 꼭 학생의 얼굴이었다. 
중국 한(漢)나라 때 곽림종(郭林宗)은 관인팔법(觀人八法)을 주창했다. 눈은 양의 기운을, 입은 음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남자는 눈이 중요하고 여자는 입이 중요한 이유다. 눈에는 해와 달의 기운이, 입에는 바다의 기운이 들어 있다. 이마와 귀는 초년, 눈썹과 눈은 30대, 코는 40대, 입과 볼과 턱은 말년의 기운을 담고 있단다. 얼굴이 우주의 형상을 담아서 ‘소우주’라 한다. 
사람 보는 눈이 전혀 없는 나와 달리 내 베프(Best Friend)는 첫인상에 민감한 편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호불호가 확실하다. 어떻게 모르는 사람을 대놓고 피하냐고 물었다. 
“얼굴이 일그러졌잖아. 뭔가 균형이 안 맞아. 느낌이 그래.”
베프는 ‘환한 얼굴, 균형 잡힌 얼굴, 빛나는 얼굴’이면 괜찮은 성격의 소유자고 반대면 아무래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기의 얼굴은 여럿이다. 30개월 둘째는 얼굴이 시시때때로 바뀐다. 낮 동안 할머니와 놀고 나면 할머니를 닮는다. ‘손녀가 할머니 판박이’라고들 한다. 주말에 아빠와 지내고 나면 아빠 눈매와 표정이 얼굴에 가득하다. 보는 사람마다 ‘그 아빠에 그 딸’이라고 한다. 밤에 뒤척이며 나와 찌걱거리고 나면 아침에 남편이 말한다. ‘둘째는 당신의 2세, 주니어 당신’이라고. 뼈와 살이 부드러워 신기하게도 수시로 바뀌는 얼굴이다. 생존전략일까.
시시때때로 변하던 얼굴이 마흔이면 굳어진다.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가 마흔이란다. 생애의 굴곡이 얼굴에 새겨진다. 새겨지기 전이 중요하겠다. 마흔 전에 선행을 되도록 많이많이 쌓아야 한다. 선한 일을 하면 복이 쌓여서 조화로운 얼굴이 된다. 선한 얼굴은 환한 얼굴, 균형 잡힌 얼굴, 빛나는 얼굴이다. 볼수록 자꾸만 더 보고 싶은 얼굴은 선행으로 얻어진다. 
얼굴은 그리움을 담는다. 누군가에게 떠올리고 싶은 얼굴이 되자.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이 되자. 똑같이 생긴 눈과 똑같이 생긴 코를 가진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다 다르다. 아무리 고쳐도 똑같아지지 않는다. 얼굴이 사진처럼 고정 물체가 아니라 세포로 이루어진 ‘자연(nature)’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얼굴은 큰 눈, 높은 코, 앵두 입술이 아닐 수 있다. 그보다 우주의 기운을 담은 조화(調和)로운 얼굴이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