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에 이어져온 `인두 그림' 낙화장 국가문화재되다
임실에 이어져온 `인두 그림' 낙화장 국가문화재되다
  • 이종근 기자
  • 승인 2019.01.08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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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을 중심으로 전승된 인두 그림 '낙화장'이 국가문화재가 됐다.
문화재청은 「낙화장(烙畵匠)」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김영조(金榮祚,충북 보은군) 씨를 보유자로 인정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36호 「낙화장(烙畵匠)」은 종이, 나무, 가죽 등의 바탕소재를 인두로 지져서(烙) 산수화, 화조화 등의 그림(畵)을 그리는 기술과 그 기능을 보유한 장인을 말한다. 
우리나라 낙화에 대한 기원은 조선후기 실학자 이규경(李圭景, 1788~1863)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수록된 ‘낙화변증설(烙畵辨證設)’에서 찾을 수 있으며, 19세기 초부터 임실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왔다.
조선 낙화의 중흥조에 해당하는 수산 박창규(遂山 朴昌珪)로 1837년 화화법(火畵法)을 창시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이 시기 전후로 낙화의 기법이 체계화됐다. 
박창규는 임실군 지사면 관기리 출신으로, 그의 직계로 둘째 아들 남계(南溪) 박진욱(朴鎭郁, 1833~?)와 증손인 석천(石川) 박상필(朴相珌, 1895~?)이 있다. 그리고 송암(松庵) 박이규(朴履珪, 1819~?)와 운초(雲樵) 박훈규(朴勛珪, 1836~?)를 비롯하여 죽파(竹坡)박진호(朴鎭灝,1842~?),월산(月山)박계담(朴桂淡,1869~1948), 소산(小山) 박상전(朴相典, 1901~1959), 옥천(玉川)박상근(朴相根,1907~?) 등으로 우리나라 낙화가의 태반이 이 가계에서 명맥을 이어왔다. 
박창규 이후 낙화는 그의 종제와 후손을 중심으로 150여 년 동안 전통과 기법을 전승시켜오고 있다.
한국의 낙화기법은 본래 전통회화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기본 화법은 전통 수묵화 화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동양화의 부벽준(斧劈皴), 우점준(雨點皴) 등과 같은 각종 준법을 붓 대신 인두로 표현하며, 수묵화에 나타난 먹의 농담도 인두로 지져서 나타낸다는 점에서 독특한 차이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낙화장은 인두와 불을 다루는 숙련된 손놀림과 미묘한 농담을 표현하는 기술이 중요하다. 
‘낙화장’ 보유자로 인정된 김영조 씨는 현재 충북 무형문화재 제22호 ‘낙화장’ 보유자로, 1972년에 입문하여 지금까지 낙화를 전승하고 있는 장인이다. 김영조 씨는 낙화유물을 포함한 다수의 동양화에 대한 모사를 통해 산수화‧화조화 등 전통낙화에 대한 숙련도를 높여 왔으며, 전승공예대전 등 다양한 공모전에서 수차례 수상함으로써 낙화의 전승에 이바지해왔다.
부벽준(斧劈皴)은 산수화에서 산이나 바위를 그릴 때 도끼 자국이 난 듯, 강하게 붓을 찍어 바위의 날카로운 질감 등을 표현하는 기법, 우점준(雨點皴)은 크기와 농담이 다른 빗방울 같은 점들을 무수히 찍어서 바위나 산 등을 표현하는 기법, 준법(皴法)은 동양화에서 산, 암석의 굴곡 등의 주름을 그리는 기법을 말한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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