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 로비의 좌측, 기획전시실 입구에는 높이 약 2.1m, 지름 약 1.6m의 거대한 나무통이 있다. 통은 바닥보다 아가리가 넓은 원통형으로 나무로 된 널을 잇대어 대나무테로 조여 고정하였고, 반으로 접히는 뚜껑과 한 조이다. 당초 이 자료는 박물관 개관 당시 KBS 진품명품 패널의 감정을 통해 전통 저장구인 곡갑(穀匣)으로 소개되었다.
그러나 관람객 중 몇 분이 나무통이 술통 혹은 장아찌통이라는 소견들을 내놓았고 박물관은 의견을 경청해 자료조사를 시작하였다. 인터넷 검색과 자료열람, 국립민속박물관, 일본민족학박물관과 연계하여 내린 결론은 이 통이 타루(樽, たる) 혹은 오케(桶, おけ)로 불리며 술, 장, 초 등을 담아 숙성시키는데 사용하는 일본 전통 저장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박물관은 일본 저장구 타루가 조선 저장구 곡갑이 된 사연을 추적했고 관람객들의 통의 소용으로 거론한 술 혹은 장아찌를 단서로 추적한 결과, 군산의 나라즈케에 도달했다. '나나스키', '나나스께', '나나스케' 등으로 불리는 나라즈케는 일본 나라현(縣) 특산 즈케(漬け, 절임)를 이르며 청주박(淸酒粕, 술지게미)에 울외를 절여 숙성시킨 일본식 장아찌를 말한다.
군산은 일제가 김제만경평야지역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수출하고, 전북 및 충남지역에 일본의 자본제적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장시킨 식민지 거점 도시이다. 1899년 군산 개항 후 일본 조계지가 설정되었고, 이를 중심으로 도로와 철도가 연결되면서 군산은 격자상(格子狀)으로 구획, 본격적으로 개발되었다.
1931년경 김제의 미곡생산량은 약 50만 가마로, 김제 경제는 쌀을 대상으로 한 상공업활동이 중심이었다. 공장도 김제역과 부용역 근방에 있는 정미공장이 주였고, 노동자는 연인원 10만 명, 연 생산고는 현미 28만 석에 달하였다고 한다. 김제는 조선 제일의 미곡 이수출 지역이었으나, 일본인 지주나 농업주식회사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제국경제시스템에 종속되었기에 가장 빈곤한 지역이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수탈된 쌀이 군산항에 결집되어 ‘쌀의 군산’이라는 별칭을 낳고 정미업과 양조업이 성행하는 계기가 됐다. 군산에 일본식 청주(사케, さけ)공장이 세워진 것은 1917년으로 알려져 있다. 1915년 일본인 니시하라가 충남 논산에 조선주조를 세우고 '조화(朝花)'를 생산했는데, 1917년 군산에 조선주조 군산분공장을 설립해 경성 공급 수요를 조달했다고 한다.
조선 내 일본식 청주공장은 일제강점기에 약 120여개 정도 운영되었으며 군산은 현재도 일본식 청주와 그 부산물인 나라즈케 생산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발하다. 앞선 박물관자료 목통, 곧 타루는 바로 그 술통과 절임통의 맥락과 닿아있다.
김제만경으로 대표되는 호남평야의 풍요를 빨아들여 일본으로 건네는 수탈의 홈통이었던 군산과 김제만경 농민의 피땀인 조선 쌀-사케-나라즈케-타루(술통 혹은 나라즈케 절임통)로 이어지는 연쇄 속에 식민지시대가 그대로 응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