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우리에게 뱃살만 남긴 게 아니다
설 명절, 우리에게 뱃살만 남긴 게 아니다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2.0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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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까먹었던 우리의 모습과
가족이라는 든든함을 깨우친다"
이 혜 원  커뮤니티매니저
이 혜 원 커뮤니티매니저

 

설 명절이 지나갔다. 지방에서 경기도에 사는 조부모님 댁에 올라오신 부모님은 설 당일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셨다. 하루는 ‘온전히’ 쉬면서 다음날 일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나도 ‘온전히' 하루는 휴가를 얻었다. 엄마가 채워주신 냉장고를 정리하고 침대에 혼자 누우니 이제 ‘다시' 일상이다. 그래도 설 명절 동안 복작거렸던 소리와 기억이 마음을 채워준 게 느껴진다. 온전한 나의 소속감이 그것이다.
고백하자면 난 친척 간에 오랜만에 만나는 그 순간이 어색하다. 매우. 학창시절에는 그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직장 생활을 하고부터인가? 또래의 사촌들이 결혼하고 친했던 언니들은 이제 시댁을 간다. 어렸던 조카는 나보다 키가 훨씬 커서 우러러보아야 할 정도가 되었다. 서로 집도 멀기에 자주 이야기 전하지 않으니 학교생활, 건강 혹은 미세먼지 걱정까지 그저 그런 이야기만 하다가 TV에 집중하게 된다. 사실 부모님이 종종 서울 오실 때도 그렇다. 현관에서 마주하는 5분 남짓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다. 해외에 살다가 가끔 한국 들어오는 대학 친구 볼 때보다 더. 두 달에 한번 보는 내 독서 모임 그룹원들보다 더.

그런데, 어색할지라도 안부 인사 나누다가 한 상에서 밥을 한 두 끼 먹다보면 어느새 같이 웃기도 하고, 한 방에서 누워있기도 한다. 집안 어른들이 권하는 술을 거부감 없이 받아 마시고, 항상 같은 이야기지만 말씀을 집중해서 듣게 된다. (재미는 없을지라도 말이다.)
어쨋든 한 공간에서 마주보고 무언가를 나눈다. 화장실 갈때도 눈치 게임하다가, 아침이면 어쩔 수 없이 부스스한 모습을 서로에게 보이게 된다. 그러다 문득, 누구에게 이런 모습을 보인단 말인가? 하는 생각과 두 살 터울 남동생과 키가 훌쩍 큰 사촌 동생들의 뒷모습이 똑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엄마는 분명 ‘외할머니 닮았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지금은 외모나 습관 일부분이 닮아간다는 것을 인정하신다. 나도 종종 엄마를 닮은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엄마가 주장하시는 외모는 아닌 것 같지만. 일 년 혹은 평생 중 많은 순간 나의 성격과 외모가 부모님, 더 넓게는 친척을 포함한 가족에게서 온 것을 잊고 산다. 각자는 여러 환경과 사람을 만나면서 닮은 부분이 희석되고 섞이면서 단 한 명의 나로 성장하지만, 나를 구성하는 많은 부분이 가족에게 온 것임은 분명하다. 쉽게 고개를 끄덕거리는 부분도 있고, 인정하기 싫은 부분도 있지만. 이 당연한 것을 나는 내내 까먹고 지내다가 꼭 설과 추석에만 기억해낸다. 그러고는 또 까먹고 지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다행이고 감사한 것은 나의 분명한 소속이 있다는 것이다. 굳이 증명하지 않으려 해도 되고, 나를 있는 그대로 소중하게 여기는 ‘가족'이란 소속된 곳이 있다.
어느덧 4년 남짓, 타지에서 직장 생활이란 걸 하면서 어른이 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소속감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거의 반 자동으로 주어진 학교, 반이라는 소속이 있었고 항상 고정적으로 만나던 친구 무리가 있던 시기와 달리 사회초년생으로 보내는 타지 생활은 언제나 나의 소속을, 소속감을 내가 결정하고 확인하고 증명 해야 했다. 평소엔 느끼지 못하다가 작년 가을 이직을 기점으로 소속과 역할을 중요시했던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연인으로서의 소속감, 사교 모임에서의 소속감, 그리고 업무에서의 소속감 등 이를 위해 목표 의식을 가지고, 노력했던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관계가 만족스럽지 않았을 때 무거운 실망과 괴로움을 느꼈다. 어디에서든 나의 역할과 존재 의미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으리라. 그런데, 아주 가까이 그리고 오래전부터 꾸미거나 애쓰지 않아도 되는 ‘가족'이 있었다는 것을 이번 설에야 깨달았다. 사회에서 맺은 관계에서 조금 삐끗하기도 하고, 기대했으나 서로 맞지 않는 점에 이별을 고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그래도 한숨 돌리고 다시 찾아 나서도 문제가 없구나 싶은 건, 나도 모르는 사이 더욱더 닮아가고 있고, 무슨 일이든 털어놓을 수 있는 가족이 든든한 추진제가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설 명절에 갑작스러운 좁은 잠자리, 가끔은 어떻게 답할지 모르겠을 진학, 취업, 결혼 질문들도 받고, 끝없는 설거지도 있지만 그러면서 ‘가족'의 존재를 확인해간다. 내가 조금 더 자신 있어도 된다는 소속을 깨닫게 된다.
명절에 우리가 얻는 것은 뱃살만이 아니다. 당연하지만 자주 까먹었던 우리의 모습과 가족이라는 든든함을 깨우친다. 자, 다시금 시작된 살벌한 사회생활! 자신감을 가지고 달려보자. 다음 추석은 언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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