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서원(三川書院)
삼천서원(三川書院)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2.07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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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삼천서원(三川書院)의 역사를 알고 있는가. ‘용담팔경(龍潭八景)’은 진안의 옛 용담현 경내 아름다운 여덟 가지 경치를 이른다. 옛 용담현 내의 팔경을 읊은 사언절구(四言絶句)로 성은명(成殷命)이 지었다고 한다. 용강추월(龍崗秋月)은 용강산에 걸린 가을 달, 태고청풍(太古淸風)은 태고정에 부는 시원한 바람, 응봉낙조(鷹峰落照)는 응봉에 깃드는 저녁 노을, 송림수학(松林垂鶴)은 송림에 드리운 학의 정취, 소요낙안(逍遙落雁)은 소요대에 날아드는 기러기 떼, 옥천모종(玉泉暮鐘)은 옥천암의 저녁 종소리, 삼천서원(三川書院)은 삼천 서원의 풍광, 성남귀범(城南歸帆)은 성남 마을로 돌아오는 돛단배 등을 말한다.
진안군 용담면 월계리(月溪里)는 주자천이 반달처럼 에워싸 흐르므로 달계 또는 달기라고도 불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달계역의 존재가 기재된 것으로 보아 ‘달계’라는 이름의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달계’의 ‘달’을 월(月)로 보고 월계로 고쳐 부르게 됐다. 또 다른 전승으론, 벌판을 옥토로 만들기 위해 닭이 우는 새벽부터 일을 해 달기 동네라고 부르던 것이 달계, 월계로 변했다고 한다. 용담댐 수몰로 전 마을이 수몰되었으나 서북쪽 남산 기슭에 신월계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마을을 조성했다. 현재 리의 면적 대부분이 물에 가라앉은 상태이다.

월계리엔 1667년, 용담 현령 홍석(洪錫, 1664~1668 재임)이 창건한 삼천사(三川祠)가 있다. 서원은 안회(顔回) 등을 배향하고 훗날 사액되면서 번창했다. 1732년 삼천서원 묘정비를 경내에 세웠으나 서원이 철폐되자 명두산 중턱에 옮겨 세웠다. 훗날 주민들과 용담향교 유림들이 협력, 지금의 용담면 황산리에 있는 태고정 앞에 옮겨 세웠다.
18세기의 ‘해동지도’는 각 도별 군현 지도에 조선 전도와 서북피아양계전도(西北彼我兩界全圖)를 덧붙인 회화식 지도책이다. 용담현에는 금강으로 흘러드는 주자천, 정자천과 지도에는 보이지 않지만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보이는 동면 지역의 안자천이 있다. 읍치 서쪽에 위치한 삼천서원(三川書院)은 안회, 정호·정이·주희·제갈량 등을 배향하고 있다. 삼천서원이 17세기 후반에 세워진 사실을 볼 때 17세기를 전후로 두드러진 유교적 사회 분위기가 지도에 반영, 제작됐음을 알 수 있다.
‘용담현읍지’는 용담현의 읍지로, 편찬 연대는 조선 시대 정조 연간으로 추정된다. 학교(學校)에는 향교(鄕校)의 위치와 규모를, 서원(書院) 항목에는 삼천서원의 위치와 내력을 적었다. 한때 이 지역에서 서액서원으로 널리 알려졌던 삼천서원의 옛터가 이제 흔적도 없이 물에 씻기고 망가져 찾을 수 없어 안타깝다. 서원 묘정비는 망향의 동상에 옮겨져 세워져있으며, 교재용 목판은 진안역사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어 천만다행이다.
/이종근(문화교육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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