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어느 철학자의 삶] (16)굿바이 조지오웰
[연재소설 `어느 철학자의 삶] (16)굿바이 조지오웰
  • 이종근 기자
  • 승인 2019.02.11 1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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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정윤성

기억할 수가 없구나. 너와 언제 처음으로 마주했는지. 
서점 ‘조지오웰’ 앞인 것만은 확실하지.

아마도 너는 서점여인이라 불리던 나의 여러 모습에서 케미스트리를 확신하였을 거야.
그렇지 않고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점의 정기 출근자가 되지 않았을 테니. 고무적이었지.
서점에서 5년 동안의 여정은 오늘로써 대미를 장식하게 될 것이다. 네 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 인간들의 대화쯤은 네 몸을 터는 것만큼이나 수월한 일이겠지.
‘이사’라는 단어를 몇 달 동안 수천 번을 들어서, 아마도 네 애칭쯤으로 입력시켰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우리 가족은 타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어. 평균연령이 젊은 도시. 중산층이 주를 이루는 도시. 무엇보다 동물에 대한 인식이 남달라서인지, 그 도시의 상징도 네 이웃인 고양이더구나. 너도 조금은 안심이 되지?
너는 우리 서점의 상징이었지. 조지오웰이 통찰력을 네게 빌려주기라도 한 듯, 너는 거침없이 상황을 판단하고 평정하였지. 네 특유의 뒤끝은 책 구매를 포기한 손님에게 폭발해 나를 기절초풍하게도 했었어. 풍부한 햇살을 벗 삼아 서점 문턱에 자리 잡은 너의 후광은 가히 전설적이었단다. 서점에 방문하는 자, 누구도 그런 너를 하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문자 꽤나 익히지 않았을까?’
이런 유쾌한 상상쯤은 누구라도 시도했을 게 틀림없다.
너의 부재는 서점의 큰 타격이 될 것이다. 실추된 명예를 탈환하기만큼 어려운 게 없을 텐데 말이야. 너는 곧 단골동물병원 의사가 조치한 진정제에 의지한 채, 네가 그토록 힘겨워하던 차에 몸을 싣고 장장 3시간을 버텨내야 할 것이다. 마지막 모험이라 여기고 부디 이겨내기를 바랄 뿐이다. 하긴 대수술의 험로도 통과했는데 멀미쯤이야.
이 과정을 무난히 지나면, 공원이 너의 뒷마당이 되는 또 다른 삶이 기다릴 것이다. 대체로 동물과 친화적인 시민들과 팻전용 놀이터는 너를 황홀함으로 이끌지도 모르겠다.
네 정체성의 본산이기도 한 서점으로 돌아가 보자.
서점과 네가 분신할 수 없는 것이, 이정표와 같은 역사를 세웠다는 것이다.
네가 주인공이 되어 서점과 함께 책이 탄생했지. 아직 폭발력을 보이진 않지만, 화로속의 불씨처럼 전소되지 않는 미담으로 오래 남을 것임에 확신한다. 
네가 부재한 서점에 궁금증을 보이는 손님들에게 대신 전해주마. 네 역할을 끝내고 휴식의 시간으로 접어들었다고.
난로 앞에 놓인 쿠션은 더욱 너의 빈자리를 명시하게 하는구나. 늘 나의 두 다리 한 폭 떨어진 곳에 자리한 쿠션에서 낮잠을 즐기기도, 작업 중인 나를 애타게 구애하기도 했었지.
너는 서점을 거쳐 간 수많은 군상들을 목도하며 쌓은 안목을 통해 내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위력도 선보이곤 했어. 귀여운 강아지답게.
“보리야 네 고향을 떠나는 소감이 어때?”
‘소감이랄 것까지. 왜 적응력의 귀재겠어!’
“두렵지 않아?”
‘두렵지 않아. 고통의 끝을 본 놈은 결코 두렵지 않아.’
입춘이 지남과 무섭게 찾아온 한파는 새로운 시작과 매치가 잘 안되지만, 걸출한 스타의 퇴장에 걸맞는 소용돌이처럼 느껴지는 구나.
아듀! 조지오웰! /조정란(인문학서점 조지오웰의 혜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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