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명이 없는 미술관 인젤 홈브로흐
작품명이 없는 미술관 인젤 홈브로흐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2.12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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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고,
자연의 아름다움보다 더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곳"
김 선 정  전주문화재단 문화진흥팀장

 

필자는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유학 시절 손님이 오거나, 혹은 지인이 손님이 왔다고 방문할 곳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이용하는 리스트가 있었는데, 뮤지엄 인젤 홈브로흐Museum Insel Hombroich는 그 리스트의 세손가락 안에 있었다. 보통 작품명제표와 지킴이가 없는 미술관으로 알려진 인젤 홈브로흐는 독일의 뒤셀도르프의 남쪽에 인접해 있는 노이스라는 도시에 자리 잡고 있다.
필자는 뒤셀도르프가 아닌 타 도시에서 어학과정에 있을 당시 인젤 홈브로흐를 처음 방문했다. 차로 끝없이 펼쳐진 한적한 들판을 달리다 보면 저 멀리 들판에 덩그러니 서 있는 건물을 볼 수 있다. 필자가 그곳을 처음 찾았던 때가 6월이었는데 비교적 쌀쌀했던 체감온도와는 달리 인젤 홈브로흐는 녹음이 우거져있었다. 어지간한 갤러리 규모쯤 되는 매표소를 지나고 나면 마치 거대한 숲속으로 안내받는 것과도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첫 번째 만나는 정방형의 건축물에는 다른 미술관과 비교해 다르지 않을 법하게 작품이 걸려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작품의 명제표와 조명, 지킴이가 없다는 것이다. 누구의 작품인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법한 작품이었는데 매우 다른 태도로 작품을 대면하고 읽었던 기억이다. 그렇게 의문을 안고 건물을 나오면 산길이 굽이굽이 휘몰아쳤다. 나무들은 어디 아마존에서나 만날 법한 몇백 년이나 되어 보이는 나무들과 연못인지 웅덩이인지 모를 습지도 간간이 있었다. 그렇게 숲을 빠져나오니, 마치 동화 속에서 마법에서 풀린 것처럼 낮은 구릉 아래 야트막하게 자리 잡은 오두막이 보였다. 그곳에는 커피와 빵, 사과 그리고 버터와 잼을 뷔페형식으로 가져다 먹을 수 있도록 되어있는데. 식사의 값은 무료다. 음식의 가격은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았고 계산하는 곳도 사람도 없었으며 출입구 옆에 기부를 위한 작은 모금함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각자 자유롭게 자신이 먹은 감사의 표시를 하면 되었다. 그마저도 내키지 않는다면 그냥 나와도 괜찮다.

인젤 홈브로흐는 1982년 뒤셀도르프의 부동산 업자이자 미술품 수집가인 칼-하인리히 뮐러Karl-Heinrich Müller가 자신이 이십 년 이상 모아온 예술작품을 전시하고 친분이 있던 두 명의 예술가의 아틀리에로 이용할 공간으로, 뮐러는 이곳을 자연과 공공미술관과 예술가를 위한 아틀리에가 공존하는 거대한 미술관으로 기획했다. 인젤 홈브로흐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1970, 80년대 나토가 로켓기지로 이용했던 군사기지가 있었는데, 1993년 미국과 소련의 합의로 폐쇄되었다. 그러자 뮐러는 1994년 이곳을 매입하여 라켓텐슈타치온 홈브로흐Raketenstation Hombroich로 조성한다. 이곳의 구성 또한 인젤 홈브로흐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인젤 홈브로흐의 아틀리에가 노이스와 뒤셀도르프 기반의 그의 오랜 지인들인 지역의 예술가와 학자를 위함이고 그들이 건축과정에 동참했다면 라켓텐슈타치온 홈브로흐에는 세계에서 온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공간을 메우고 있다. 어쩌면 뮐러는 90년대부터 호모 컨버전스를 꿈꾸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인젤 홈브로흐와 라켓텐슈타치온 홈브로흐, 60 핵타르가 넘는 거대한 두 홈브로흐를 조성하고 뮐러는 시에 운영을 넘긴다. 이에 노이스 시와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가 인젤 홈브로흐 재단을 설립하여 공공미술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미술관 창립자 뮐러는 그가 만들고자 하는 미술관의 그림이 확고했다. 건축물의 비중이 총면적의 십퍼센트를 넘기지 않고 미술관 내부와 공원에 전시된 작품들의 명제표도 작품을 지키는 인력도 작품을 비추는 조명도 두지 않는다. 물론 더 세심한 경비 체제가 돌아가고 있음은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작품 명제표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미술관처럼 한 번 정도 피카소가 그렸든, 클림트의 작품이든 나의 순수한 비평대에 올려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누구의 어떤 작품인지, 이 작품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혹은 이 작품이 왜 이렇게 유명한지, 등의 생각은 그곳에서 잠시 접어두어도 좋다.
예술을 뜻하는 영어인 art와 독어인 kunst 모두 어원은 바로 인공의 것, 인간이 만든 것에서 왔다. 자연적인 것이 아닌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다. 인젤 홈브로흐에서는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고, 그 어떤 예술작품도 자연의 아름다움보다 더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곳이다.
전주시는 슬로시티에 매우 걸맞은 도시라고 생각한다. 마천루 대신 낮은 구릉과 제방 공사를 하지 않은 하천이 도시를 자연스럽게 나누고 있다. 아날로그 감성과 함께 사람들은 그곳에서 좀 더 많은 소통의 기회를 만나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천천히 걸을 수 있는, 도시 산책자에게 선물 같은 미술관이 전주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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