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수의용담이야기](6)용담면 와룡리 호랑이상
[이철수의용담이야기](6)용담면 와룡리 호랑이상
  • 이종근 기자
  • 승인 2019.02.17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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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고 있던 용담면이 호랑이의 포효로 깨어나다

-와룡교가 놓이면서 시작된 재앙
-호랑이상을 세운 후 변고 사라져

 

용담면 와룡리 호미동마을은 여우골에서 내려오는 산세가 여우가 산을 올라가다 뒤돌아보는 형국이며, 마을 뒷산 산세가 여우가 산으로 올라가다 뒤돌아보는 형국입니다. 마을은 여우 꼬리 부분에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을 명칭이 호미동(狐尾洞)입니다. 그래서 마을 이름의 '호'는 여우호(狐)를 씁니다. 호미동 마을풍수는 2가지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바로 여우골 형국과 괘바우(고양이바위)와 관련된 풍수신앙이 바로 그것입니다. 괘바우는 주자천 변에 자리해, 주자천을 경계로 산정마을쪽에서 위치하면서 호미동을 비치고 있습니다. 호미동쪽 강변에는 쥐바위 수십 여 개가 놓여있습니다. 괘바우는 고양이바위이며, 쥐바위는 쥐가 들판에서 곡식을 주워 먹는 모습과 비슷해 쥐바위로 부릅니다. 

예전에는 징검다리로 건넜습니다. 하지만 와룡교가 설치되어 산정마을의 고양이가 건너와 호미동의 쥐들을 잡아먹을까 우려한 나머지 그 근처에 2기의 호랑이상을 세워놓았습니다. 와룡교는 1993년 12월 31일에 놓았으며, 길이 72미터, 폭 6미터입니다. 다리 입구에는 호랑이 두 마리를 신정마을 쪽을 향해 앉혀 놓았군요. 신정교 위쪽에는 고양이 바위가 있고 여우 꼬리에 해당하는 기슭 ‘왜두들’ 논에는 바위 수십 개가 있었던 바, 이를 고양이를 노리는 쥐로 보았습니다. 다리가 없어 건너오지 못하고 있던 차에 다리가 놓여지면서 와룡마을에 침입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청년 너댓 명이 음독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자 건너오지 못하도록 호랑이 두 마리를 앉혀 지키게 했습니다. 그 뒤로 부터는 이같은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는 쥐와 고양이는 상극이고, 고양이와 호랑이는 상극이기 때문이다. 호랑이상을 세운 후 마을에 변고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호랑이상은 산정마을을 향해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정면으로 바라보고 다가오고 있는 맹호출림(猛虎出林) 호랑이 그림은 배가 고파서 사냥하러 나오는 호랑이기 때문에 포악합니다. 1996년 촬영할 그 당시의 호랑이의 포효가 느껴지나요? 
‘용담호랑(龍潭虎狼)’은 부귀면 대곡리에서 전해오는 효자가 호랑이로 둔갑한 이야기를 말합니다. 부귀면에서 조사된 내용에서는 황구 서른 마리가 약이 된다는 내용이지만, 이본에 따라서는 황구 1,000마리, 또는 황구의 신(腎) 100개나 1,000개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또 호랑이가 인간으로 둔갑하지 못하게 한 원인을 제공한 아내를 이본에 따라서는 물어 죽이지만, 부귀면 본에서는 ‘자기 마누라 같은 청춘 여자’를 잡아먹는 것으로 바뀝니다. 부귀면 본에서는 이야기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로 ‘용담’과 ‘심인재’ 등 주변 지역의 지명이 등장하고 있으며, 화자의 조부님과 힘이 장사였지만 호랑이를 잡는 과정에서 가슴을 할퀸 호랑이 이생원 같은 실제 인물도 등장시키고 있는 점이 독특한 차별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병이 깊어지자 의원은 황구(黃狗) 30마리를 먹어야 낫는다는 처방을 내립니다. 그러나 아들은 가난해 황구를 살 수가 없어 산에 가서 열심히 기도를 합니다. 그러자 산신으로부터 변신할 수 있는 둔갑 책을 얻게 됩니다. 이 책을 읽고 재주를 폴짝 넘으면 호랑이로 변신이 되고, 다시 재주를 넘으면 사람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들은 밤마다 호랑이로 변신해 황구를 잡았던 바, 30마리를 채워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인은 남편이 밤마다 집에 오면 개 비린내가 나기 때문에 못 견뎌 했습니다. 하루는 부인이 숨어서 이를 지켜보니까 남편이 책을 펴놓고 재주를 넘자 호랑이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놀란 부인은 그 즉시 둔갑 책을 태워버렸습니다. 호랑이로 변신했던 남편이 돌아와서 책을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해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 뒤로 호랑이는 ‘용담 호랑이’가 되어 어슬렁거리다가 배가 고프자 자기 마누라 같은 청춘 여자를 잡아먹었습니다. 결국 관에서 전문 포수를 동원해 용담 호랑이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용담면 원와룡(臥龍) 마을은 지금으로 부터 약 300여년 전에 마을 뒷산에 큰호랑이가 서식(捿息)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지나가던 풍수가 산세를 보고는 호랑이 꼬리가 닿는 골짝터가 명당이라고 해서 그곳에 집을 지었더니 호랑이가 밤마다 재물을 물어다 주어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을 명칭도 호미동(虎尾洞)이라 불렀으며, 지금도 매년 한차례씩 시루떡을 만들어놓고 산신(山神)에게 제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용담면 호암(虎岩)마을에 살던 김효자가 노모가 병 들어 개고기를 먹고 싶다고 함으로 주문(呪文)을 외워 호랑이로 둔갑해 밤마다 개를 잡아다 노모를 공양했습니다. 밤마다 나갔다 들어오는 남편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 아내가 어느 날 숨어서 남편의 둔갑술을 보고는 주문을 몰래 불태워 버리자 김효자는 다시는 인간으로 환생할 수가 없었으며 눈물을 머금고 방황하다가 죽어서 바위가 됐다고 합니다. 그리해 마을 이름을 범바위라 부르며 한자로 호암이라 칭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 마을은 용담면의 관문에 있는 마을로 260여년 전부터 마을이 형성됐습니다.
한줌 햇살, 한 줌 행복이 정성 어린 농부들의 손끝에서 태어납니다. 진안 운장산 일대는 지리적 특수성으로 인해 씨 없는 감나무가 잘 자라고 있어 예부터 씨 없는 곶감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처마엔 어김없이 붉은 곶감이 달려있습니다. 햇살 한 줌 탐이 나서 하늘에 손뻗어 움쥐어보니 호랑이가 무서워할 정도로 그 맛이 좋습니다. 시나브로 손 안에 든 햇살에 맑은 가락이 흐릅니다. 햇살 한 줌, 바람 한 점이 하늘담은 삶터에서 하늘닮은 당신을 하늘거리게 만드는 오늘입니다.

/글=이종근 새전북신문 문화교육부 부국장·사진=이철수 용담호사진문화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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