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락달그락]군산 3·5 만세운동을 아시나요?
[달그락달그락]군산 3·5 만세운동을 아시나요?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3.0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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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3.1 운동 100주년, 시민들과 함께 알아가는 100년

청소년기자단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청소년과 시민들에게 군산에서 독립운동의 역사의 과정과 의미를 바로 알리기 위해 인터뷰에 나섰다. 구암동산 성역화 사업과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건립 추진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군산 문화원 31호 ‘3·5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은 구암동산’ 글을 집필 하는 등 역사를 알리기 위해 힘쓰는 군산문화원 조성돈 감사와 수업시간에는 배우지 않는 역사의 이면과 지역시민으로서 역사에 대한 학습의 중요성을 묻기 위해 군산영광여자고등학교 양영민 역사교사를 만났다.
/편집자주

청소년기자단이 독립 정신 기억에 함께하겠습니다. 그린이:전하진
청소년기자단이 독립 정신 기억에 함께하겠습니다. 그린이:전하진

▲ 조성돈(군산문화원 감사)
△ 양영민(군산영광여자고등학교 역사교사)

Q 군산 3·5 만세 운동이 무엇이고 이가 가지는 의미는?

▲조 : 군산은 한강 이남에서는 최초로 만세운동이 일어났으며, 외국 선교사들이 활발히 활동한 지역으로 구암동산에 세워진 군산 영명학교를 중심으로 교사, 학생, 예수병원 신자, 기독교인, 애국지사들은 물론 주민들이 가담해 독립 만세를 일으켰다. 외세에 조직적으로 저항한 호국정신이 투철하였음을 널리 알리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Q 3·5 만세운동의 이유를 꼽자면?

△양 : 군산은 일제시대에 수탈을 목적으로 급속도로 성장하게 된 지역이다. 의도적으로 키운 이유는 전라도 일대 물자 수탈 무역항구로 활용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신작로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도로가 군산근교에 자리 잡았다. 군산에서 생산 된 쌀 반출로 인해 일본인에 대한 감정이 더 좋지 않아서 3.5 만세운동이 일어난 계기라고 볼 수 있다.

Q. 군산에서의 독립운동 이야기가 더 궁금해요.

▲ 조 : 군산에서 공립보통학교 김학술, 라명조, 신형식 등이 주축이 되어, 70여 명이 동맹하여 퇴학 원을 제출하고 항거했다. 또한 이남진 김수남 학생은 군산 공립보통학교는 친일학교로서 독립운동에 저해되는 학교라고 생각해, 학교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이 결과 많은 학생이 부당하게 무거운 형을 판결받았다. 이처럼 청소년들도 구국일념으로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항거한 결과, 그 영향으로 일본인이 많이 사는 대화정 방화사건, 3월 30일 재판 전야의 야간 만세운동, 31일 재판장에서 만세운동, 4월 5일 대대적 시위, 일인 상가 방화 등을 일으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

Q.‘역사교과서에서는 배우지 않는 3·1절'의 이야기가 있다면?

△양 : 국내에서 1919년 고종 황제 사후 독살 의혹은 국외 정사와 국내 사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민심이 동요되었고, 이광수 등 일본 동경에서 2·8 독립선언서를 작성해 독립 운동을 전개했다. 일본 유학생 중 한 명이 독립 선언문을 서울로 가지고와 민족 대표 33인에게 상황 전달을 하였다. 33인은 독립선언서 낭독일을 고종 장례식이 열리는 3·3일 탑골 공원에서 계획했다. 탑골 공원에서 비폭력 시위를 의도 했으나 고종 황제 장례식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 폭력 시위로 변질 될까 우려한 33인은 장소를 옮겨 태화관에서 소규모로 낭독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자취를 남기기 위해 종로 경찰서에 자수도 했다. 한편 탑골 공원의 학생들은 독립 선언서 낭독의 소식을 듣고 기다리고 있었으나 나타나지 않자 한 학생이 단상으로 뛰어 올라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그 결과 3·1운동이 발단됬다. 유관순 열사는 고향인 천안 아우내 시장에서 지역 지식인과 학생들을 모아 만세 운동을 계획 후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유관순 열사의 부모님이 사망했고 서대문 형무소 구치소에서 본인의 오빠와 재회하였다. 형무소 안에서의 만세운동 주도 해 출소를 얼마 남기지 않고 고문에 대한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일제에서는 고문으로 사망한 사실을 밝히지 않기위해 유관순 열사의 시신을 태우기 위해 토막을 내어 석유통에 담아 놓았으며, 양도를 거부 하였으나 이화학당 선교사의 요구로 그 상태의 시신을 수습하게 되었다.

Q. 역사를 바로알기 위해 시민이 노력해야 할 점은?

△ 양 : 가장 근본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한국사의 시수는 극히 부족하지만 수능을 볼 수 있는 지식을 알려주어야 하기 때문에 시험을 목적으로 하는 단편적인 지식만을 수업하게 되면 역사적인 의미와 같은 것들은 뒤로 미련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지만 역사를 알리는 데 힘을 쏟기 위해 여러 활동과 다양한 수업을 시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청소년의 경우 자발적인 행사와 배움을 통한 의식전환을 필요로 한다. 조선의 마지막 의병운동이 일어났던 지역이자 한강 이남지역 최초의 만세운동을 전개한 지역이라는 점에서 군산은 독립과 관련하여 의미가 깊은 곳이다. 시민들이 내 고장에서 일어난 활동들에 대해 알고 자부심을 느끼는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Q.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바로 잡아야 할 것이 있다면?

△양 : 군산이라는 지역은 근대역사거리라는 이름으로 옛 가옥들을 개조하여 카페를 만들거나 숙박업소로 사용되는 건물들이 다수이다. 이러한 일이 가슴이 아프다. 기억해야 할 역사와 사실이 많지만 단지 관광지로 여겨지는 것이 아픈 역사를 희화화 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군산지역의 일제에 대한 저항을 담은 역사들을 알리고 홍보 하는 것에 주력을 더하면 더욱 큰 시너지 효과를 불러 일으킬 것이다.

Q 이러한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기 위한 군산만의 노력이 있다면?

▲ 조 : 구암동산 성역화 사업으로 영명 학교의 옛 모습을 재현한 3·1운동 100주년 기념관과 한강 이남에서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근대역사박물관의 주변을 찾는 관광객들을 구암동산과 연계하거나 전국 학교에 수학여행 적임지임을 홍보, 여행사에 홍보 책자 배부, 방송 매체 활용 홍보, 영화나 연극 제작 등을 통해 3·1절을 좀 더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3·1운동 100주년기념관에서 꼭 봐야 할 곳이 있다. 100주년 기념관 입구 양편 벽화마을 230m에 달하는 축대 벽, 석축, 담장 등을 활용한 항일 운동 관련 인물, 사진 등을 살펴보며 올라가면 좋다고 말하고 싶다. 군산 3·1운동 역사공원 아치를 지나, 왼편에 옛 구암교회 건물이 현재는 영상관으로, 군산 3·5만세 운동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되어 있는 군산의 그 역사의 날을 감상 할 수 있다. 기념관은 3층 건물로 되어 있는데 1층은 추모 기록실, 2층은 역사 대현실, 3층은 체험교육관 관람 및 체험을 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3·5만세 운동 조형물을 통해 애국애족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순서로, 살펴보시면 된다고 추천하고 싶다. /전하진, 조은결, 김소영, 이재은, 진보민 청소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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