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의 모든 것
제비꽃의 모든 것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3.11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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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때 봄 소풍 길에 선생님이 물었다. “이 꽃이 무슨 꽃 인줄 아니?” 우리의 눈길은 둑방길에 피어있는 작은 꽃 위에 모였다. “오랑캐꽃이요” 마치 묻기를 기다렸다는 듯 내가 대답했다. 선생님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정답’을 말씀하셨다. “제비꽃이란다”. 분명히 할아버지는 동네에 지천으로 핀 그 꽃을 가리켜 ‘오랑캐꽃’ 이라고 하셨다. 꽃 이름이 하도 특이한 지라 어린 기억에도 또렷이 남아있던 터였다. 아는 척 했다가 당한 머쓱한 ‘오랑캐꽃’ 충격은 봄만 되면 제비꽃을 허투루 보지 않게 한다. 나중에 백과사전을 보고 나서야 ‘오랑캐꽃’은 ‘제비꽃’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걸 알았다.
지난 주에 지인으로부터 책 한 권을 선물로 받았다. ‘제비꽃의 모든 것’이라는 책을 펼치며 기어이 어린 시절 ‘오랑캐꽃’ 추억을 소환했다. 봄기운이 아지랑이 되어 나른하게 아른거릴 때 쯤 들녘 낮은 곳에서 보라색 정도로 피어있는 꽃, 나의 제비꽃에 대한 지식은 거기까지였다.

‘무려 806종의 제비꽃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만 해도 80여 종이 자생하고 있다’며 사진과 함께 그 증거를 제시해 놓은 책을 보고 놀랐다. ‘오랑캐꽃’이 ‘제비꽃’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알았을 때의 희열이 무색해졌다. 그냥 삼짇날 무렵이면 아무렇게나 피는 보랏빛 들꽃인 줄 알았다. ‘사람들이 봄을 느끼기도 전에 양지바른 어느 곳에서 피기 시작하는 꽃이 둥근털제비꽃과 왜제비꽃’ 이라는 책의 머리말에서부터 호기심의 입맛을 당기게 한다.
각시제비꽃에서부터 뫼제비꽃, 여뀌잎제비꽃, 축령제비꽃, 충주제비꽃 등 80여 종의 생소하고 신기한 제비꽃 사진들이 생생하게 책 속에 피어있다. 세 명의 작가들이 10년동안 산과 들을 누비며 찾아 낸 아름다운 제비꽃이 가득한 책 속에 이미 봄이 와있다.
매화며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 봄을 장악하는 꽃들은 사람의 눈 높이 이상에서 핀다.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눈에 잘 띈다. 들녘이나 묵정밭 한 켠에 보일락말락 피어있는 낮은 꽃들과는 그 위용부터 다르다. 낮은 꽃들을 대하려면 허리를 굽히거나 쪼그려 앉는 겸손함을 보여야 한다. 이들은 혼자서는 결코 빛나지 않는 작은 꽃들이다. 이들에게 작지만 큰 세계가 있다는 걸 책을 보며 알았다. 하얗듯 보랏빛 파격이 담긴 제비꽃을 보노라니 삶에 대한 여유와 관조, 낮은 꽃들이 사는 뒤안을 훔쳐보는 잔재미가 쏠쏠하다. 일상적인 삶의 마디들이 사진 속에서 실물 크기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겸양’을 꽃말로 가진 제비꽃은 성실과 겸손을 나타낸단다. 꽃의 모양새다운 꽃말이다. 티없이 소박한 흰제비꽃, 성모마리아 옷 색깔 같은 하늘색꽃, 농촌의 행복을 표시한다는 노란제비꽃까지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애칭들이다. 가수 조동진은 그의 노래 ‘제비꽃’에서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라고 노래했다. 새처럼 날지 않으면 어떠랴. 척박한 담장 밑에 보랏빛으로 피어나는 소박함 자체만으로도 이미 ‘소. 확. 행’ 인걸. 제비꽃이 땅 위 세상으로 고개를 내밀 무렵 모처럼 반가운 제비꽃 책이 나왔다. ‘제비꽃의 모든 것’. 세상! 보는 만큼 보이는구나.
/권영동(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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