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어느 철학자의 삶] (20)시원하게 뜨거운
[연재소설 `어느 철학자의 삶] (20)시원하게 뜨거운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3.11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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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풀이 해장국 한술에 따라오는 감탄사가 아니다.
감정의 소용돌이를 이보다 명료하게 전달할 수가 있을까. 나는 아니다.

정기적인 이별은 마음을 단련시킬 법하지만, 오히려 느슨하게 한다. 황량하게 느슨한.
기차는 정해진 트랙으로 정해진 정차역을 거치며 나를 내려놓는다. 늘 하차하던 역에.
그러면 나는 북서쪽으로 서행하는 “경의선‘ 열차로 갈아타고, 서울과 멀어질수록 재색으로 변해가는 차창 밖의 풍경을 감상한다.
평화모드가 이상을 넘어 현실화된다면 이 열차는 서행이 아닌 급행으로, 잿빛 풍경이 아닌 힙한 분위기가 점령하겠지. 
거쳐가는 역 중에 ’곡산역‘이 나의 뇌리를 잠시 붙든다. 다산이 청백리 암행어사로 활약하던 곳이 아닐까? 당시의 황해도가 경기 북부까지 포괄했을 거란 개연성에 무게를 실어본다.
황량한 벌판과 무거운 기운이 감도는 몇몇의 국가기관을 지나니 정돈된 도시가 펼쳐진다.
실체보다 과잉 포장된 이미지 때문에 싫었던 초록색 간판의 까페로 스스럼없이 들어가선, 숨바꼭질로나 찾을 수 있는 외진 자리를 찾아낸다. 그리고 감탄한다.
얼마 전 그린이 선물로 준 기프트 카드를 프리패스 카드마냥 당당하게 보이며 입증한다. 나의 목구멍은 카페라떼만 받아드렸던 바, 당연히 일관된 주문이 이뤄져야 하지만 기분은 관성을 타파한다.
”시나몬 듬뿍 뿌린 카푸치노 한잔 부탁해요”
“기프트 카드 충전이 필요할 듯 한데요? 충전하시겠습니까?”
“네! 만원 충전이요”
많지도 적지도 않은 금액. 팬은 되기 싫지만 한 번씩 들릴지도 모른다는 암묵적 동의.
나의 가치관엔 어울리지 않는 기행. 시원하게 뜨겁지도 않은 애정의 현주소구나.
하지만 강렬하고 내 가슴에 꽂히는 이 음악. 언제가 그린이 친절하게 알려준 곡.
5 Seconds of Summer가 부른다는 ‘Valentine’
잠시동안 이뤄진 잠행을 걷어치우고 까페를 나선다. 집을 향해 걷는다. 이 세상 멋드러진 이름들을 전부 가져다 놓은 듯한 수많은 까페들을 지나치면서. 며칠 못 본 보리를 만나는 설레임이 이미 나의 가슴을 지배하고 있다. 보리 너도 현관문만 정확히 응시한 채 너의 가슴을 이미 반납했겠지. 
“보리야!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니?”
‘내가 죽는다면 까맣게 탄 가슴 때문일 걸요.’
시원하게 뜨거운 감정이 전신을 맴돈다. 연출할 수 없는 감정이다. 나는 안다.
전국적인 비소식은 이 도시를 피해갔다. 많은 이들이 기다렸을 소식이었는데. 예보를 거스른 뒤늦은 비소식이라도 괜찮다. 일상이 된 회색빛 하늘과 탁한 공기만은 제발 타성에 젖지 않았으면 좋겠다. 타성에 젖는 건 보리 너와의 애정전선만으로 족하니까.
어느 신문에선가 소개했었지. 우울하면 싱싱한 과일과 야채를 덜 먹는다고. 막연히 공감이 간다. 기후는 인류의 식생활까지 관여해가고 있다. 
눈부신 햇살을 감상하고 싶다. 촉촉한 공기를 마시고 싶다. 달콤한 바람에 기대고 싶다.
온몸으로 맞고 싶다.
시원하게 뜨겁구나. /조정란(인문학서점 조지오웰의 혜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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