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전봇대
나무 전봇대
  • 이종근 기자
  • 승인 2019.03.12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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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향교 위 옥류 벽화마을을 방문하면 나무 전봇대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전봇대는 1920년대부터 1970년대 이후에 콘크리트를 썼지만, 그전까지는 나무였다. 전봇대 바로 위 '거북이가 알을 낳는 집' 구강재에서 하룻밤을 묵어간다면 정읍선비 성당 박인규선생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옥류 벽화마을 전망대에서 오르면 남천교와 청연루가 한눈에 들어오는 가운데 멋진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지난달 16일 오후 6시 익산시청 주차장에 10여 명의 사람들이 집결, ‘나무 전봇대를 찾아 떠나는 익산 골목투어’를 다녀왔다. 예전엔 누구네집 골목길에서든 정겹게 만날 수 있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콘크리트 전봇대에 자리를 내주고 몇 개 남지 않은 나무 전봇대들이 보물찾기라도 하듯 골목길에 숨어 있다.

현재 익산에는 아직 9개의 나무 전봇대가 남아 있다고 한다. 이들은 불켜진 나무 전봇대의 정취를 느껴보았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중앙동 제일은행 사거리에서 시장으로 들어가는 수선집 골목길 어귀에서 10여 미터의 것이란다. ‘소변금지’ 팻말이 단연 압권이라는 장경호 익산시의원의 설명이다.
‘전봇대'라는 말은 '전보(電報)'에서 온 말이다. 전력선만 가설되어 있는 것을 전주(電柱), 통신선만 가설되어 있는 것을 통신주(電信柱), 전력선과 통신주가 같이 가설되어 있는 것을 전신주(電信柱)라고 한다. 한국전력이 처음 동네에 전기를 공급하던 1950년대 후반 나무 전봇대가 없었으면 동네는 암흑천지가 될 뻔했다. 오죽하면 뱀술을 팔던 약장수들이 “한 잔 마시면 오줌줄기가 담을 넘고, 두 잔 마시면 전봇대가 부러진다”면서 너스레를 떨었을까. 1923년 10월 28일자 <동아일보>엔 전기를 주제로 다루면서 “전깃불이 있는 곳에 오줌을 누면 안된다”고 설명한다. 또, 허가 받지 않는 전단이나 플래카드 역시 전봇대에 기생해 광고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시절, 가로등이 켜지면서 개 짖는 소리와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었다. 돌이나 깨진 벽돌을 동그랗게 다듬어 비석치기를 하고, 헌 공책을 뜯어 딱지를 접었다. 이 모든 놀이가 골목길에서 이루어졌다. 그렇게 정신없이 놀다 보면 어느새 하루해가 저물었다. 고샅 끝에서 저녁 먹으러 오라고 부르던 어머니의 음성이 지금도 귓가에 아련하다.
우리나라에선 40~50년만 그대로여도 낡은 동네로 치부되며 재개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유럽은 이와는 정반대다. 나무 전봇대는 예나 지금이나 ‘골목의 역사박물관’이다. 간혹 나무 전봇대를 발견한다면 스스로를 되돌아 볼 일이다. 아직도 꼿꼿이 서 있는 나무 전봇대, 세월의 흔적 안고 여전히 동네를 밝히고 있는 가운데 문화관광 상품이 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나무 전봇대를 품은 동네에 대해서도 평가하는 기회가 다시오지 않을까.
/이종근(문화교육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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