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현과 전북
최익현과 전북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3.1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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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동천(馬耳洞天)’ 각석(刻石)은 진안 이산묘 옆 암벽에 각자된 인명록이다. 1924년, 선비들이 한말 유학자 송병선과 최익현의 사당을 건립하기 위해 성금을 거둘 때 협조한 인사들을 기념하기 위해 마이동천 암벽에 그들의 성명을 새겼다. 이는 당시 성금을 거두는 방책이기도 했다. 각 인명은 ‘마이동천 제명록(馬耳洞天題名錄)’이라고 해서 ‘대한이산묘지(大韓駬山廟誌)’에도 실려 있다.
진안출신 이도복(李道復)은 남명의 학문을 가학으로 이어받았으며 송병선에 사사했고, 최익현의 문인이 됐다. 또, 이규홍(李圭弘)의 오하일기(梧下日記)는 정읍 태인에서 최익현과 임병찬을 만나 의병에 동참할 것을 맹약하는 1906년 초부터 이듬해 4월까지 1년 4개월간에 걸친 기록이다. 최제학(崔濟學)은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최익현을 흠모해 사제의 의를 맺었다. 1906년 4월 최익현을 중심으로 임병찬 등과 함께 정읍 무성서원(사적 제166호)에서 의거했다. 참모직을 맡아 의병 소집 및 군비를 편성해 활동했지만 불행히도 동지들과 함께 일본군에게 체포돼 감금됐다. 출옥 후 대마도로 최익현을 찾아가 극진히 간병했지만 끝내 순국하니 부산으로 운구를 모셔와 장례를 극진히 했다. 사람들은 “면암(최익현)이 없으면 습재(최제학)도 없고, 습재가 없으면 면암도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고창 의병은 최익현의 의진에서 고석진(高石鎭)과 정시해(鄭時海) 등이 활동했고, 법정에서 형을 받은 고창 출신 의병 활동자는 강대영, 김공, 김대옥, 김동환, 김보배, 김상묵, 김도돌, 김화숙, 김응구, 박도경, 오치규, 이용태, 최영만, 하천일, 홍익선 등이 있다. 도동사(道東祠)는 최익현과 고석진의 숭고한 도학 정신과 위국충절을 추모하고자 건립을 추진했던 사당이다. 그러나 1924년 3월 일제의 강압으로 공사가 중지됐다. 이후 1928년 3월에 전국의 유림들이 다시 사당을 완공했으나 치안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향사(享祀)를 금지했다. 앞서 최익현은 외삼문 안의 방호정사를 자주 오가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정시해는 성송면 태생으로 1905년 국권이 강탈당하자 이듬해 최익현의 의병진에 중군장으로 참전해 33세에 전사한 항일 의병으로, 고창 항일역사도서관에서 그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최근들어 청양 최익현초상은 충남 유형문화재 제248호, 청양 최익현압송도는 충남 유형문화재 제249호로 각각 지정됐다. 청양군이 면암선생의 제자 장모 선생의 손자(군산 거주)가 이를 보관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림을 넘겨받은 후, 몇년 만에 문화재로 지정이 됐다. 더욱이 이 두 작품은 전북에서 활동한 석지 채용신(1850-1941)의 것이란다. 3.1.운동 백주년이 되는 이 달, 전북에서 활동한 최익현과 채용신에게 한 잔의 술을 정성껏 바치고 싶다.
/이종근(문화교육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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