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인문학] 공산무인 수류화개, 가생유인 수지화락
[그림인문학] 공산무인 수류화개, 가생유인 수지화락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3.2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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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인문학을 엿보다 26-최북 & 소동파

“빈 산에 사람 없어도 물이 흐르고 꽃이 피지만,
헛된 삶엔 사람 들끓어도 물은 멈추고 꽃도 진다”

채하: 공산무인 수류화개(空山無人 水流花開)라는 말을 들어봤니?
선아: 처음 듣는 말인데요. 한시(漢詩)를 잘 모르기도 하지만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채하: 송나라의 대 문장가이자 시인인 소동파(소식)가 만든 명구란다. “빈산에 사람이 없지만 물이 흐르고 꽃이 피네”라는 뜻이다.
선아: 사람이 없기 때문에 빈산이라고 하시는데 사람이 없다고 빈산이라고 할 수 있나요? 사람 이외에 초목이나 짐승들이 있지 않나요?
채하: 여기서 빌 공(空)은 문자 너머의 의미를 갖고 있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다.
선아: 저도 알고 있어요. 언어의 내포(內包)라고도 하는데 문자너머의 의미란 문자가 암시하는 내적 함축을 말하잖아요.
채하: 맞다. 빈산이라는 구절은 소동파가 나한(아라한, 득도한 불교의 성자)을 그린 그림을 보고 노래한 ‘나한찬송’에 나오는데 그 후에 여러 시인의 시와 화가의 그림에서 유난히 이 구절만이 다양하게 인용되었다.
선아: 그런데 소동파가 누구에요. 요즘 세태는 한시를 읽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잘 모르기도 하고요.
채하: 우리가 당(唐)나라 이백(李白)만큼이나 잘 아는 송(宋)나라(북송) 소동파(蘇東坡)의 본명은 소식(蘇軾), 자(字)는 자첨(子瞻)이며 동파는 바로 그의 호(號)이다. 아버지 소순(蘇洵), 동생 소철(蘇轍)과 함께 '3소'(三蘇)라고 일컬어지며, 모두 문장에 뛰어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에 속한다. 소동파는 좋은 시와 훌륭한 문장 그리고 글씨와 그림으로도 일세를 풍미했지만, 그는 단순한 시인묵객이 아니었다. 유불도(儒佛道)의 철학을 두루 섭렵한 사상가였다. 특히 장자(莊子)의 제물철학(齊物哲學)과 불교의 선(禪)에 깊이 영향을 받았다. 소동파의 작품에는 그의 호방한 심정과 천부적인 재능이 자연스럽게 표현되고 있다. 평범한 표현 속에 절묘한 이치가 들어있고, 경쾌한 리듬 속에 유머가 배어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해서 보통 다섯 홉을 넘기지 못했지만 벗들이 마시는 장면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넓어지고 얼큰해져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며 한 달에 술을 여섯 말씩이나 빚어놓았다고 한다. 술이 목적이 아니라 술을 마시면 근심과 걱정을 다 잊고 순수하고 천진한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선아: 대단한 시인이었군요. 봄꽃이 잇달아 피는데 소동파의 봄을 노래한 시를 들려주세요.
채하: 月夜與客飮酒杏花下 소동파 월야여객음주행화하 / 杏花飛簾散餘春 明月入戶尋幽人 행화비렴산여춘 명월입호심유인 / 褰衣步月踏花影 炯如流水涵靑蘋 건의보월답화영 형여유수함청빈 / 花間置酒淸香發 爭挽長條落香雪 화간치주청향발 쟁만장조낙향설 / 山城薄酒不堪飮 勸君且吸杯中月 산성박주불감음 권군차흡배중월 / 洞簫聲斷月明中 惟憂月落酒杯空 통소성단월명중 유우월락주배공 / 明朝卷地春風惡 但見綠葉棲殘紅 명조권지춘풍악 단견녹엽서잔홍
 달밤에 손님과 살구꽃 아래서 술 마시며 / 살구꽃 주렴에 날려 흩어지는 이 봄밤에 / 밝은 달 창가에 비쳐 은자를 불러내네 / 옷자락 걷고 달빛 아래 꽃 그림자 밟고 걷노라니 / 흐르는 물에 젖은 부평초가 넘실대는 듯 / 꽃 아래 술 따르니 맑은 향기 절로 돌고 / 긴 가지 당겨보니 향설이 내리누나 ‘산마을의 멀건 술 마시기가 뭣하거든 / 그대여 잔 속에 뜬 달까지 함께 마시게나 / 휘영한 달빛 속에 퉁소소리 아득한 데 / 오로지 달이 지고 술잔 빌까 걱정이네 / 내일 아침 봄바람이 모질게 몰아치면 / 푸른 잎 사이에 붉은 꽃은 몇 송이나 남으려나.
 선아: 정말 멋진 시에요~ 살구꽃 심상(心象)이 심장을 찔러 가슴이 흔들렸어요. 공산무인 수류화개(空山無人 水流花開)에 대해 설명하시고 오늘 밤 달빛이 비취처럼 빛난다고 하던데 한잔 하러 가실까요?
채하: 어느 날 소동파는 당나라 말기의 화가인 장현의 그림 ‘아라한상’을 구했는데 몹시 즐거워 새로 그림을 표구하고 그림 속 나한의 모습을 차례로 묘사한 ‘나한찬송’을 지었다. 소동파가 이처럼 나한을 묘사한 일은 이후의 나한도 제작에 활용될 정도로 회화사적으로도 중요한 자료이지만 문학사적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특히 이 구절인 ‘공산무인 수류화개(空山無人 水流花開)’는 이 작품의 압권으로 통한다.
선아: 그처럼 내포적 가치가 크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데 일반적인 해석은 무엇인가요?
채하: 이 구절의 의미에 대해 중국 문인들의 논의가 다양한데 대체로 ‘깨달음 후에 다시 보는 산수’, 즉 나라는 인격과 외물과의 경계가 사라진 ‘불아합일(不我合一)’의 경지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누구든 그의 생각과 욕심으로 비롯되는 모든 인과(因果)의 고리에서 벗어나는 깨달음에 이르렀을 때에 산은 여전히 산이고 물은 여전히 물이며 그 속에 꽃도 여전히 피고 진다”
선아: 소동파는 북송 제 1의 시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단한 시인인데 천재의 탄생은 천재의 노력만이 아니라는 말을 따르면 그 구절의 기원이 있지 않나요?
채하: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공산(空山)’ 혹은 ‘공산무인(空山無人)’이라는 말은 이미 당나라 때부터 시어로 사용하던 말이었다. 소동파가 이를 활용하였다고 보아야겠지. 당나라 시인 위응물의 시에도 유사한 구절이 나오며 당나라의 시를 모은 ‘전당시’와 글을 모은 ‘전당문’을 검색하면 유사한 구절들이 많이 나온다. 가령 당나라 시인 유건의 시에서도. “빈 골짝 사람이 없는데 물 흐르고 꽃이 피네”라는 구절이 있다. 즉 공산, 공산무인, 수류화개 등의 말은 당나라 때 만들어져 송나라 문인들 귀에 익숙한 시어였다. 소동파의 이 구절이 뛰어난 명문인 까닭은 게송(揭頌, 불교의 교리를 담은 한시)에 적용한 천재적 재능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소동파의 구절을 이해해야 한다.
선아: 그 구절이 적힌 그림도 있다고 들었는데 누구의 그림이에요?

공산무인도(空山無人圖), 최북

 

채하: 최북이 그린 ‘공산무인도(空山無人圖)’다. 최북은 범상치 않은 화가였다. 제 눈을 찔러 애꾸를 만들었다는 기이한 행적, 온 세상을 업신여겼던 오만방자한 언행, 술과 돈을 관리하지 못했던 무분별함에 대한 거듭되는 기록을 보면 최북은 지독한 광기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그가 한문소설을 많이 읽었고, 한시를 지어 내놓지 않았다는 기록, 교류한 문인들이 그의 작품을 제작했고, 그림 위에 적힌 그의 서체 또한 예사롭지 않은 것을 보면 노력형 천재라고 봐야 한다.
선아: 최북의 기이한 행적에 대한 기록은 그의 삶의 일부분이며 무엇보다 비범한 재주를 부각하고픈 그 당시의 역설적인 설명이라고 봐야겠군요.
채하: 최북(崔北)의 호는 호생관(毫生館)이었다. 호생관은 원래 명나라의 동기창이 나한도를 그린 화가를 칭송하는데서 비롯된 말이다. 동기창은 이 화가에게 호생관이라는 인장을 만들어 주었으며 화가가 붓으로 그릴 때 보살이 살아서 내려온다는 뜻으로 풀이하였다. 말하자면 화가의 붓끝으로 보살을 탄생시키는 세상의 모든 사람의 공력에 대한 지극한 예찬이다. 최북이 그 자신을 호생관이라 불렀던 까닭은 화가로 한 평생을 살면서 그의 손끝으로 세상을 그려내리라는 호기와 포부였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무인 수류화개(空山無人 水流花開)의 지극한 경지를 붓끝으로 보살을 그려내듯 그렸다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선아: 동양화는 익숙하지 않은데 그림을 감상할 지점을 말해주시겠어요?
채하: 최북이 마련한 그 나름의 목적과 고심 그것을 드러낸 화면 속 고안이다. 공산은 사람의 생각과 욕심이 사라진 경지, 사념에서 벗어난 선의 높은 경지이다. 최북은 이를 표현하기 위해 먹을 흥건하게 찍어 붓을 빠르게 휘둘렀던 것 같다. 잡다한 생각이 머물 틈 없는 붓질의 속도를 따라 넉넉한 습기가 화면에 번진다. 잔손질을 더하지 않았으니 잔심(殘心)이 고이지 않는다. 화면의 중앙을 텅 비워 두웠다가 후에 인장을 꾹꾹 찍은 것이 눈에 띈다. 그가 만든 공산무인의 분위기이고 노련하고 활달한 붓질이 만든 기량이다. 그러나 최북은 빠뜨리지 않았다. 거친 듯 날카로운 듯 필치로 ‘공산무인 수류화개(空山無人 水流花開)’ 이 글자를 굳이 크게 적어 넣었고 화면의 왼편 끝에 흥건한 먹 사이 필선을 대어 흐르는 물을 그렸고 화면 오른편 끝에는 대여섯 묽은 점으로 보일 듯 말 듯 붉은 기운을 찍어내어 꽃이 핀 것을 그렸다. 또한 사람이 없는 텅 빈 정자(亭子)는 빈산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축자적인 이미지에 그치는 그림이라면 유치하기 짝이 없겠지만 휘둘러 기량을 펼친 이 그림 속에 축자적인 이미지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최북의 충실한 정성이 가슴에 닿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사랑하는 이유는 화가가 베풀고 있는 기량과 성실함의 깊이 때문이다.
선아: 선생님, 그러고 보니 꽃이 피고 물이 흐르며 만물이 소생하는 봄입니다. 소동파와 최북에 비해 한참 부족하지만 춘심(春心)을 거스르지 못해 ‘공산무인 수류화개’에 짝을 지어 한 구절을 지어봤습니다. “공산무인 수류화개(空山無人 水流花開) 가생유인 수지화락 (假生有人 水止花洛)/빈산에 사람이 없지만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데, 헛된 삶에는 사람은 들끓지만 물은 멈추고 꽃은 진다” /박제원(전주완산고등학교 사회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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