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의고장,김제이야기](35)김제 거전(巨田)·심포(深浦), 황금밭에서 조개를 캐다
[지평선의고장,김제이야기](35)김제 거전(巨田)·심포(深浦), 황금밭에서 조개를 캐다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4.04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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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시는 서해 연안지대로서 만경강과 동진강 사이에 대평야를 이루고 황해에 접하고 있어 일찍부터 어로가 발달했을 것이라 추정된다. 새만금사업이 진행되기 전 썰물 때에는 김제시 해안선 33㎞의 드넓은 갯벌이 드러나는데, ‘금을 캐는 뻘밭’이라 할 만큼 패류 등의 생산력이 좋았다.  
심포에서는 동죽, 생합, 죽합, 바지락 등이 많이 잡혔는데, 그 중 동죽 수확이 으뜸이었다. 김제에서는 동죽을 꼬막이나 동죽고막 또는 동죽꼬막이라 부르고 골이 진 남도산 꼬막은 참꼬막이라 불렀다. 거전 현지에서는 상대적으로 값이 저렴했던 동죽을 사용한 칼국수와 회무침이 유명해져 지역의 명소가 되었다. 

동죽 국물은 시원하고 감칠맛이 좋았고, 살짝 데쳐낸 동죽을 매콤새콤하게 무쳐내면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그리고 백합 곧 생합은 전복에 버금가는 패류로 쳐지며 조개 중의 조개로 대우받았다. 또 대나무모양을 닮은 조개인 죽합은 달콤하고 즙이 많아 사랑을 받았는데, 채취하는데 기술이 필요하여 비싸게 거래되었다.  
맨손어업인 조개 채취는 어촌의 가장 중요한 경제 활동이었다. 예전에는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때가 되면 바다에 나가서 조개를 잡아 많은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이른 나이에 남편을 잃고 강보에 싸인 아이를 안고 홀로 어촌에 이사를 온 젊은 아낙도 조개를 잡아 논밭을 구입하고 자식을 훌륭히 키울 수 있었다. 
박물관은 2009년과 2014년 김제의 바다를 주제로 2회의 기획전시를 진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진봉면 현지조사에서 다양한 김제의 어로도구와 바다관련 사례를 수집할 수 있었다. 그 중 진봉면 심포리 거전의 임선구 어촌계장이 1991년에 작성한 작업일지에는 김제 갯벌의 생산성이 생생하게 기록되어있다. 
1991년 당시 바지락 20㎏ 1망의 단가는 21,620원으로, 10월 29일자 18망 작업자는 360kg를 수확하였고 환산금액은 389,160원이다. 조개 양식장 주인과 작업자는 수익을 약 6대4 혹은 7대3으로 나누었다고 한다. 18망을 4할의 작업비로 계산하면 154,800원이다. 1991년 공무원 9급 1호봉은 204,000원으로 확인된다. 
깔꾸리와 손망만 갖추면 누구나 조개잡이를 할 수 있었다. 조개잡이 체험에 참여한 초보자의 경우, 조개잡이 재미에 빠져 뻘밭을 헤메다 보면, 돌아올 때 수확한 조개의 무게를 이기지못하고 낭패를 보기 일쑤였다. 그만큼 갯벌의 생산력은 막강하였고, 이는 “거전에서는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풍설로 회자되곤 했다. 
우리 어민들에게 바다와 갯벌은 무한한 생산의 터전이었으며 황금을 캐는 뻘밭이었다. 2019년 현재 새만금사업이 진행되며 황금 뻘밭은 내륙이 되었고 심포 앞바다는 내수면이 되었다. 그리고 ‘새만금 중심도시’ 김제의 바다는 지금 새롭게 열리는 중이다. 부디 고래로 그 땅의 주인인 우리 어민들에게 지속가능한 공유의 바다가 열리길 기대해 본다.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 학예연구사 정윤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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