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담은 풍경, 하늘닮은 사람
하늘담은 풍경, 하늘닮은 사람
  • 이종근 기자
  • 승인 2019.04.07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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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학곤 40년 결산 그림전

오늘, 물안개 피는 용담호에서 옛 추억을 더듬으면서 아릿다운 한국화 속 풍경 하나를 나끈히 건진다. 용담댐 건설로 만들어진 인공호에서 마치 용처럼 굽이치는 물줄기들이 빼어난 경관을 펼쳐보이는 이곳의 상큼한 아침. 물에 잠겨 섬 이 된 산봉우리들 사이로 깔리는 물안개의 때깔이 참으로 곱다.
김학곤화백이 ‘삶의 고향 마음의 고향-용담댐’ 수몰 기록화를 비롯, 무주촌, 독도 이야기 등으로 화업 40년을 결산하는 자리를 갖는다. 김학곤 40주년 초대전이 2일부터 6월 2일까지 삼례예술촌 내 모모아트갤러리에서 열리는 것.

중국 무주촌 물푸레나무의 가지를 잘라 물에 한 개만 담궈 하룻밤만 묵어도 천년의 세월이다.
비바람에 찢겨져 흩어지느니 차라리 목을 꺾는 비장함, 이내 맘도 푸르게 푸르게 언제나 떨리며 흘러가는 우리는 자랑스런 백의민족이다.
시나브로, 독도 동도와 서도의 산을 안은 물빛, 산그림자를 그리듯 어슴프레히 당신을 수놓고 있다. 하늘닮은 사람들의 하늘을 담고 있는 까닭이다. 그대여! 장식 전혀 없는 모습으로 귀밑 수줍은 바람의 미동마저 한없이 고마워하는, 풋풋한 삶이고 싶다. 

용담호의 담수가 시작된 후 작은 다리를 건너 강변마을을 오가던 시골버스가 더 이상 오고가지 않지만 작품엔 용의 형상을 닮은 ‘용담(龍潭)’의 하늘에 여명이 깃들고 호수의 환한 빛깔이 실경(實景)산수화로 남아 여전히 자태를 뽐낸다.
주변에 수초와 갈대가 멋스럽게 자란데다 반도처럼 튀어나온 지형도 있어 풍광이 근사하지만 수몰로 빼앗긴 작가는 애오라지 ‘수구초심(首丘初心)’을 지향한다. 망향의 기억을 간직한 물안개가 안개꽃으로 피어나고 고독의 섬으로 변한 산봉우리는 일년 삼백예순다섯날 그 자리에서 갈색의 추억을 반추케 만들고, 작가는 고향 상전면의 애환을 다시금 그려보나니.
유난히 설경 속 흑염소가 많이 등장하는게 작업의 특징의 하나다. 군집생활을 하는 흑염소는 가족애를 상징한다. 흑염소가 거니는 시골의 정감있는 풍경과 가족간의 끈끈한 정은 일맥상통하는 면이 많다.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많은 가족 구성원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하는 아픔을 겪게 되는 가정이 늘어만 가고 있다. 그러다보면 가족 사이에 미움과 분노가 쌓이기 마련이다. 시나브로, 검은 염소가 흰 눈밭을 탐색하는 용담 풍경이 작가의 붓 끝에 잡혀 애잔한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다. 용담댐 수몰 뒤 뿔뿔이 흩어진 마을 사람들도 함께 웃고울던 마을공동체의 기억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의 표현이랄까.
기다림이나 그리움의 색깔은 무채색이다. 하지만 작가가 들려주는 색깔은 전혀 어둡지 않다. 염소 등이 등장하면서 오히려 눈이 시리도록 선연한데다 가슴 시린 이야기를 담고 있어 관람객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있다. 작가는 지는 석양빛이 아무리 슬퍼도 저 감나무처럼 꼿꼿이 서서 바라볼 일이다. 당신이 떠난 그 겨울 자리에 저기 저 바람으로 남아 강이 되어 흐르고 있다.

수묵담채로 1999년에 가진 1차 용담수몰기록전, 진한 채색이 가해진 수묵채색의 2009년 2차 용담수몰기록전에 이은 요즘의 작품들은 더 진한 채색으로 빚어낸 수묵채색으로 서정의 빛깔들을 갈무리했다.
“늘 새로움의 작업에 집중하고 내 체질로 형상화된 자연의 신구상”이라고 작가가 말한 것처럼 현대성을 함의한 조형성의 연마와 다름 아니다. 어둠보다는 밝음을, 생동감의 살아있는 색을 쓰려하고 또 그런 방향으로 시도해 나가고 있다.
작가는 심원법과 평원법이 적절하게 구사한다. 자연을 관찰함에 있어 , 가까이 그 성질을 보고(小觀) 멀리서 수몰지역의 산세나 골짜기, 마음자리를 넉넉하게 볼 수 있는(大觀) 전통산수의 기본적인 원리를 차용한다. 길이며 물줄기며, 학교나 교회 같은 건물들을 한 눈에 짚어볼 수 있는 그림들은 심원법으로 그려내 더 트이고 시원스런 느낌이다. 
수묵채색으로 작업되어지는 작품들은 물감의 농담과 붓 터치, 그리고 물감의 번짐 등을 자유자재로 사용한 까닭에 느낌이 편안하다. 반복적인 수묵의 집적을 통해 진행되는 눅진한 적묵(積墨)의 깊이는 물론이거니와 무게를 지니고 있는 실경 작업, 분방한 필묵의 경쾌한 속도감이 두드러지는 작업 등 다채로운 표현의 미학을 살려 작품 속에 잘 담아내고 있다.
작가의 산수풍경은 투명하리 만치 맑고 담백한 맛을 자아낸다. 무엇보도 담담한 이미지를 통해 시선을 아주 깊은 곳까지 끌고 들어간다. 작가는 자연의 형태 속에서 물질적인 실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를 보며 그 섭리를 가능케 하는 정신을 파악하려고 한다. 작가만의 감성으로 승화된 설경은 회화적인 구도 속에 담백한 조형미가 담백한 담묵의 겨울 산수풍경으로 잘 알려진 작가의 특징이 드러나 보이고 있다.
숲은 산들바람에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으로 물들었다. 하늘을 한 번 우러러보니 바람에 실려 떠도는 너울 한자락과 햇빛 사이로 무지개 되어 떠도는 구름이 이제 막 흘러간다.

산길처럼 들길처럼 걸어가라 하네.
햇살처럼 윤슬처럼 지나가라 하네.
강물처럼 별빛처럼 흘러가라 하네.
구름처럼 바람처럼 살다가라 하네.

이 조그만 조각배 서신에 살듯한 정을 담아 이 계절이 다가기 전, ‘슬로시티’ 손 편지 한 통을 써서 당신에게 부치고 싶은 오늘이다. /이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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