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수의용담이야기](13)정천면 두곡마을의 이사가는 사람들
[이철수의용담이야기](13)정천면 두곡마을의 이사가는 사람들
  • 이종근 기자
  • 승인 2019.04.07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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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연기 불사르면서 꽃분네의 행복을 기원한다

1988년 봄 세 명의 할머니가 친구의 이별을 서러워해
이별은 뜻밖의 일,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져

 

 

용담댐 수몰로 인해 정든 친구와 헤어지기가 마냥 섭섭합니다.‘생자필멸(生者必滅) 거자필반(去者必返)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했나요.

흔히 산 것들은 반드시 죽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며,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고 말을 하지요.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회자정리와 거자필반은 만해 한용운 스님의 ‘님의 침묵’ 이라는 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소중한 사람이나 물건들을 오래 곁에 두고 싶고, 영원히 변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이 많이도 변하고 사라지게 됩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사랑스럽고, 소중하고, 귀중한 것들이 언제나 항상 변하지 않고 우리 곁에 머물기를 기원하면서 ‘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는 말을 사용하는가 봅니다. ‘회자정리’란 만나면 언젠가는 반드시 헤어지게 되어 있다는 뜻으로 아쉬운 이별을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다는 인생의 무상(無常)함을 일컫는 말입니다. 
정천면 두곡(頭谷)마을. 마을은 조선시대에 용담군 일남면으로 있을때 일남면 사무소가 자리잡고 있었던 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지금으로부터 약 300여년전에 유(劉)씨와 신(申)씨가 정착하게 되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왕(王)씨와 유(劉)씨가 많이 살고 있습니다. 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가 마치 용의 모양과 같은 형국으로 이 마을이 바로 그 용의 머리 용두(龍頭)에 자리잡고 있다고 해서 마을 명칭을 처음에 머리실이라 부르다가 후에 머리 두(頭)자를 붙여 두곡이라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머리실 뒷산은 임자 내룡에 해입수로 크게 높고 귀함을 띄고 있는 터에 마을의 터가 마련됐다. 좌선룡이고 신득수에 진파이다. 녹건수가 왔으므로 관재구설수를 조심하고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 개인의 집터 가운데 감입수이거나 임자좌향의 터는 양생득수가 되어 있어 자손이 총명하고 준수하고 화목하다. 양생방의 산이 드높이 솟아 있으니 급제하고 식록이 풍족한 마을의 터이다. 또, 건방산이 우뚝 솟아 있으니 장수하며 서쪽에 있는 옥녀산발형(玉女散髮形)의 명당은 대국중의 소인 3등급이다. 이 명당으로 인하여 마을 이름이 붙여졌으며 파군방으로 물이 흘러가니 길조의 마을터이다(결록)’
1988년 봄, 정천면 두곡마을, 봄꽃이 함초롬히 피어난 가운데 세 명의 할머니가 친구의 이별을 서러워합니다. 가운데 할머니는 심각한 표정으로 담배를, 나머지 두 명의 할머니는 왼손을 들고서 지난 세월을 반추하면서 건강하게 다시 만날 것을 기원합니다. 또 다른 한켠에도 이별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를 가기 위해 트럭에 탄 할머니, 그리고 차창 밖의 할머니는 지금 뭐라고 말하면서 붙잡은 손을 놓지 못하는 것일까요. 
자고로, 영원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은 변하며(諸行無常, 제행무상), 영원한 것이 없기 때문에 나라는 것 또 한 없으나(諸法無我, 제법무아) '나'에 집착해 보고 싶어 괴롭고 보기 싫어 괴로워 하는 일체의 행동이 괴로운지도 모르겠습니다.(一體皆苦, 일체개고)

용담 수몰민들은 이북 실향민보다 더 가슴 아파합니다. 이북 실향민들은 통일돼면 갈 수 있지만 우린 통일돼도 못가기 때문입니다. 뻔히 눈으로 보면서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물속에 잠겨 있어서. 호수나 댐을 보면 애잔함으로 다가옵니다. 저 밑에 고향을 묶고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요.
‘흥학당(興學堂) 옛 자리에 세워진 초등학교/그 나이 일흔 여섯에 쓰러지는 오늘 여기/손자의/바른 손을 잡고/노인 하나 서 있다’
임억규 시조시인의 ‘모교가 헐리던 날’입니다. 정천초등학교, 모교의 숨이 끊어지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노송이 스러지자 마음이 허물어졌습니다. 유리창이 깨질때 가슴이 부서졌습니다. 훗날 시인은 손자와 함께 그 곳을 찾았습니다. 하지면 여태껏 시인의 눈엔 모교가 그때까지도 헐리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가슴을 쿡쿡 찔렸습니다. 고통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눈물만 났습니다. 
‘고향에서 늙어가면서 어린 시절 잘 몰랐던 풍경들을 눈에 익히며, 마침내 그 자신이 풍경의 일부로 스며드는 것… 산다는 것은 그처럼 공간과 친화하고, 친화된 공간 속에서 소멸하는 일이다. 낡은 풍경, 늙은 얼굴들이 서로 교환(交歡)하는 곳이 고향이다. 사람들이 고향을 찾는 일을 물길을 거슬러 근원에 당도하는 것과 같이 비유한다면, 여기를 떠난 사람들을 물길이 막혀 거슬러 오를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흘러갈 수도, 거슬러 오를 수도 없는 생애… 용담호가 생긴 뒤로 아침 안개가 부쩍 늘었다. 새벽에 이 길을 지나가다 보면 마치 수룡의 한숨처럼, 실향민들의 한숨이 엉겨 저 안개가 된 것처럼 보인다.” 
소설가 김용병씨의 ‘길위의 풍경’에 수록된 <용담호, 탑돌이 하는 길>의 일부입니다. 김용병 소설가는 수몰민은 아니지만 진안에 대한, 특히 용담에 대한 애정이 남다릅니다. 용담 이야기가 나오면, 자기도 모르게 흥분한다고 합니다. 그는 시정하고픈 마음에서가 아닌, 내 고향에 대한 나의 애정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한 할매는 아예 포크레인의 옴팡한 삽날에 들어앉았습니다. “차라리 나를 죽여라”고 외치던 할매의 목쉰 소리를 그는 기억합니다. 그에게는 소리까지 첨부된 `들리는 사진’입니다. 그래도 철거의 삽날을 막아낼 수는 없었습니다. 난데없이 밭 가장자리에 나앉은 집도 있습니다. 허술하게 둘러친 천막에 방문짝이 달렸습니다. 이것도 집인가. 집입니다. 까치집 두어 채 매달린 큰나무 아래 쉼터, ‘물이 차도 안 나간다’는 손글씨도 만납니다. 그 선언과 다짐, 진심이었을 게다. 그래도 이별과 철거의 날은 속속 다가오고…. 
이사 가던 날 돌이는 하늘이 무너졌고 돌이 서울로 취직하여 떠나던 날 순이는 떠나는 얼굴을 볼 수가 없어 숨었답니다. 오늘은 가슴 아리는 어린 시절의 풋내기 첫사랑 평생을 두고 말 못하며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우리 이웃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따라 ‘나는 못간다’는 통곡이 귀에 쟁쟁쟁 울려오는 듯합니다.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끌려가다시피 겨우 집을 뜨는 할매의 모습입니다. 살던 집에서의 마지막 기념사진들도 여러 장. 문짝도 없고 만신창이가 된 집을 뒤로한 채 “여그가 우리집인디 인자 떠나네. 한 장 박아주소!”라고 청하던 어르신들의 말씀에 목이 메이던 순간들을 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글=이종근 기자·사진=이철수 용담호사진문화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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