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의고장김제이야기](36)서양종교와 한국유교가 만나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다 `김제 금산교회'
[지평선의고장김제이야기](36)서양종교와 한국유교가 만나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다 `김제 금산교회'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4.1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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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모악산 금산사 앞 금산리는 전주나 서울을 오가는 길목이다. 이 곳에 초기 한국교회 건축의 공간적 전형을 보여주는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36호 김제 금산교회가 위치한다. 엄뫼 모악산에 깃든 많은 종교적 염원 중에 오늘은 서양종교와 한국유교가 만나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공간을 창출한 김제 금산교회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전라북도 개신도의 정착은 1894년 3월 테이트(Tate, 한국명 최의덕 : 1862~1929) 등의 활동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최의덕은 전주에서 말을 타고 모악산 옆을 돌아 김제 금산을 주무대로 선교활동을 펼쳤는데, 금산교회의 설립주체인 조덕삼, 이자익 등에게 선교하여 지금의 금산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금산교회 설립 초기 예배장소는 조덕삼의 사랑채였는데, 1905년 조덕삼이 두정리에 있는 과수원 대지를 희사하여 그곳에 다섯 칸짜리 한옥교회를 설립하였다. 이후 교세가 확장되자 1908년 4월, 배재(梨峴)에 있는 전주이씨 재실을 인수 해체하고 재목를 더하여, 현재의 자리에 새로운 형태의 ‘ㄱ자형 한옥교회’를 건립하게 되었다. 설립시 초가였던 금산교회는 볏집으로 올린 지붕 모습이 매우 웅장했다고 전해진다. 
금산교회 평면은 조선시대 남부지방의 살림집 형태인 一자형 구조에 부엌이나 외양간을 직각으로 이어 붙인 형태로, 좌우가 반전된 ㄱ자 형태로 건축되었는데 내부는 통칸으로 이루어졌으며 남북방향 5칸과 동쪽방향 2칸으로 구성되었다. 남북방향 5칸과 동쪽방향 2칸이 만나는 곳에 설교 강단을 설치하여 남쪽은 남신도석, 동쪽은 여신도석으로 구분하였다. 
또 공간 분리와 함께 강단의 오른쪽 기둥에 줄을 매고 휘장을 쳐, 남신도와 여신도 사이를 시각적으로 차단하였다. 그리고 설교시 목회자는 여신도 쪽을 바라보지 않고 남신도 방향을 향하여 설교를 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이런 방침을 보더라도 당시 엄존했던 유교사회의 남녀유별 인식이 교회 내에도 엄격하게 반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외부 출입문은 세 방향으로 설치되었는데 남쪽으로 남성이, 동쪽으로 여성이 출입하였고 목회자는 북서쪽의 문으로 출입하였다. 북서쪽에 설치된 목사의 출입문은 두 단을 높인 강단으로 인해 작게 구성되었다. 
남녀의 공간을 분리한 ㄱ자 형 한옥교회라는 독특한 형태의 초기 한국교회 건축은 선교 초기 서양 기독교가 엄격한 남녀유별의 유교전통 위에 기반한 조선사회에 충돌없이 스며들어 선교의 지평을 넓히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보인다. 공간은 토착화에 심혈을 기울인 기독교의 선교전략과 남녀유별의 당대 세태를 동시에 반영하며 새로운 전형을 창출하였다. 
이와 같은 ㄱ자형 한옥교회는 189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조선을 넘어 만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건립되었다고 하는데, 황해도 소래교회, 평양 장대현교회, 전주 서문밖교회, 광주 북문안교회 등이 대표적인 교회로 현재 문화재로 기존의 대지에 원형으로 남아있는 ㄱ자형 한옥교회는 김제 금산교회가 유일하다.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 학예연구사 정윤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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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19-04-13 09:35:13
새롭게 종교인구 산출을 어떻게 해도, 한국인은 행정법상 모두 유교도임. 가족관계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2항 등에 의해 그렇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25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