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수의용담이야기](14)정천면 입석정
[이철수의용담이야기](14)정천면 입석정
  • 이종근 기자
  • 승인 2019.04.14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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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휴식처, 물 속으로 영원히 잠들다

진안 정천출신 임종우시인의 `입석정' 시에 사연 소개
1997년 가을에 여러 명의 사람들이 철거하며 사라져

 

 

귀퉁이가 깨진 학독이 냇가에 나뒹굴어 을씨년스럽습니다. 건너편 호학동, 농산마을을 지나면 신기마을입니다. 교동마을 쪽엔 정천중학교가, 농산마을 곁엔 정천초등학교가 있었습니다. 버스 승강장 앞이 바로 입석정 자리입니다.

이곳은 정천면 신기(新基)마을입니다. 160여년 전에 새로 형성된 마을로서 당시 이(李)씨, 임(林)씨, 한(韓)씨 등 3성이 농사를 짓기 위해 새로 잡은 터라하여 마을 명칭을 새 터라 부르다가 구한말 무렵에 글자 붙힘으로 새로울 신(新)자와 터기(基)자를 붙여 신기라 개칭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다음은 결록입니다. ‘이 마을은 금강 상류인 정자천이 마을앞에 흐르고 있다. 마을의 조산은 세봉우리의 아름다운 삼태봉이다. 건해내룡에 임자룡으로 돌아 간입수한 횡보녹존형이다. 천건방에서 물이 들어와 소총방으로 적시며 나간다. 천시성은 탐랑제좌에 올랐으며, 고개 중간에 손방으로 흘러 서쪽으로 들어왔으니 금어격이다. 삼양 육수산이 서로 응대하고 있으니 공직이 영예롭고 옥격이 있어 양반이 나오며 학교의 터는 큰 명당이다. 서쪽산이 높이 솟아 군인이 나오며 밑에 있는 산과 물이 서로 조아리고 있어 사람들이 영민하고 인심이 활달한 터이다. 풍수지리적으로 비보를 할 곳은 도로변의 나성사격이다. 이게 허물어졌으므로 학교대지, 공직, 영예, 신분 등의 발복에 지장을 준다’
무거에서 내려오는 내동천으로 햇살에 물 비늘 이른 바, 윤슬이 반짝입니다. 윤슬이란 말 참 예쁘지요? 화창한 날, 잔잔히 흐르는 강물을 보고 있노라면 햇살에 부딪쳐 반짝이는 잔 물결들이 두 눈과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하늘의 별은 그냥 별이라 부르지만 물가의 별은 윤슬이구요. 이 땅의 별은 당신이지요. 
땅에도 윤슬이 있지요. 윤슬을 사람 이름으로 가져다 쓰는 경우가 많으며, 김해문화의전당의 미술관 이름이 ‘윤슬미술관’이며, 피리와 가야금과 해금을 전공한 세 명의 여성 국악인으로 구성된 ‘윤슬’이란 실내악단이 있습니다. 
윤슬은 무색, 무취, 무향으로 살아가지만 오로지 소리만 내지요. 그러나 사람들과는 달라 큰 소리를 내는 법이 없지요. 보석을 뿌려 놓은 듯 아름답군요. 소금을 뿌려 놓은 듯 아름답군요. 당신이 강물 위, 바다 위, 개울 위, 시냇물의 치아인 까닭입니다. 함께 흘러 주어서 고마워요 함께 건너 주어서 행복해요 함께 견뎌 주어서 감사해요.
정자천(程子川)은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에서 발원해 정천면 월평리와 봉학리에서 용담호로 흘러드는 하천을 말합니다. 과거 정자천의 하류에 해당했던 갈용리·모정리·망화리 등의 하천 유역은 용담호에 수몰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월평천은 정자천의 일부 구간을 말합니다. 부귀면 두남리에서 정천면 월평리를 거쳐 용담호로 유입되는 구간을 월평천이라고 합니다. 
정자천은 주변에 정자가 있다고 해서 정자천이라고 불렸으나, 이웃한 주천면과 용담면 지역에 주자천(朱子川)이 흐르므로 이에 견주어 중국의 현인인 정자(程子)와 맞추어 이름을 고친 듯하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여지도서’ 용담현 산천조에는 ‘정자천은 현의 남쪽 15리에 있는데, 진안에서 발원하여 달계천으로 들어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용담댐이 건설되면서 월평 마을의 아래부터는 이전과 모습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많은 마을과 정천 초등학교·모정 초등학교·용평 초등학교·정천 중학교 등 학교들이 사라졌으며, 조림 초등학교만 새로 이전된 정천면 소재지로 이전하여 남아 있을 뿐입니다. 가뭄이 들어 용담호의 저수지 바닥이 드러날 때나 이들의 흔적을 겨우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정자천 주변은 예로부터 경치와 풍광이 아름다웠으나 용담댐의 건설 이후에 대부분의 마을들과 시설물들이 물속에 잠겼습니다. 용평리 신연 마을의 경우에는 조선시대 마을에 내려진 신도비가 있었지만 지금은 용담호를 건너는 대교 옆으로 이전해 세워져 있습니다.
완주군 동상면 대아수목원 언덕에 정착한 진안 용담호 망향목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옛 정천중학교 교정에 살았던 이 나무는 용담댐 준공 직전인 2000년 가을 폐교된 학교가 철거되면서 타향살이를 하게 됐습니다. 
‘무려 300여 년된 느티나무가 바로 그것으로, 당초 망향목은 옛 정천중학교 교정에 살았다고 합니다. 수령을 생각하면 망향목 주변에 학교가 들어섰다고 보는 게 옳겠습니다. 주민들은 1970년대 초 이 곳에 학교를 짓고 망향목 앞에는 교문을 만들었습니다. 망향목은 그렇게 교문지기 노릇을 했습니다. 김칫국물 범벅 책가방을 둘러메고 흙투성이 고무신을 질질끌던 산골 아이들의 등하교 모습이 눈 앞에 선합니다. 또 해마다 이맘때면 콧물 훌쩍이며 들어서던 입학생을 맞고, 눈물 찔끔대며 떠나는 졸업생도 수없이 배웅했을 것만 같습니다. 그랬던 망향목도 새터민이 됐다. 용담댐 준공과 함께 학교는 폐교되고 물에 잠겨버린 까닭입니다. 그 당시 학교 안팎에는 같은 수종의 노거수가 두 그루 있었다고 합니다. 한 그루는 교문 밖 입석정 정자나무로, 또다른 한 그루는 교문안 교문지기로 살았다는 얘기입니다.<새전북신문 2015년 4월 14일자로, 정성학기자가 쓴 전북의 나무이야기 <13>진안 용담호 망향목 기사중>’ 
‘입석정(立石亭)’ 정자나무는 곧바로 베어져 가구점에 팔려나갔습니다. 이철수 사진가는 뿌연 먼지 속에서 꺼내든 사진첩에는 철거직전 정천중 모습 몇 컷을 담았습니다.
진안 정천출신 임종우시인의 ‘입석정’이란 시는 뜻밖의 사실이 소개됩니다. ‘지리산 청학동에서 예기치 못한 입석정을 만났다 행여 꿈은 아니겠지 싶어 상량을 살펴보니 수몰 전 우리 마을 느티나무 아래 독선거리 팔각정에서/보매기 샛술 마시고 벼농사 인삼농사 이야기 꽃 피우던 그리움이 새겨져 있다/이제, 용담호 물결과 나는 새들만이 오늘 만난 정자의 추억을 알까’
입석정은 1988년 6월 18일에 세워진 바, 팔각정이며, 슬라브 기와지붕입니다. 독선거리라 불리는 곳엔 선돌이 하나 서있었습니다. 말을 탄 사람들이 이곳에서 내려 농산마을 앞을 지나 까치목까지 걸어갔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독선거리 입석을 기리기 위해 100년이 더 되었다고 하는 느티나무 아래 정자를 지어 ‘입석정’으로 불렀습니다. 입석(立石)은 원래 선돌이라 하여 옛날 부족국가 시절에 부족간의 경계로 돌을 세웠고, 그러기에 선돌이라 하였던 것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입석이라 칭하게 되었습니다. 
신단수라는 당산나무는 우주산의 소슬한 봉우리에 솟아 있는 세계의 축(軸)이자 기둥입니다. 하늘을 떠받들고는 하늘과 땅을 이어 주는 우주나무이자 세계나무입니다. 그리하여 천신을 지상에서 맞아서 고사를 지내고 굿을 올리는 제단의 한가운데, 높다란 곳에 우람하게 솟아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의 중심에 솟은 중추까지 지상에서 하늘을 떠받드는 축, 천상세계와 지상세계를 이어 주는 기둥으로서 우리네 당산나무는 경건하고, 거룩하게 우거져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97년 가을에 여러 명의 사람들이 철거를 합니다.
‘오매 비라도 쏟아지문 집안이 엉망이 돼불 건디’ 걱정하며 바라본 마당에 호박말랭이가 살뜰히 널어져 있어 더 애잔해지던 마음을 기억합니다. /글=이종근 기자·사진=이철수 용담호사진문화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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