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벨과 근로시간 단축
워라벨과 근로시간 단축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4.15 14: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과 삶의 균형도 중요하지만
제도와 현실의 균형도 충분히 고려해야”
백 승 만-전북지역인적자원개발위원회 사무국장
백 승 만-전북지역인적자원개발위원회 사무국장

지난 주말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사무실에 잠깐 나왔다. 간단한 업무만 처리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평소와 달리 발걸음이 무거웠다. 아마도 지천으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다들 봄나들이를 가는데 사무실에 가야한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불과 십여년 전까지만 해도 토요일 출근이 당연한 일이었는데 말이다. 이제 주말은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거나 휴식을 취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우리에게 주말 휴식을 갖게 했던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된 2004년 이후 14년 만에 근로자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하여 주당 최대 노동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됐다. 2019년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따라 지난해 7월부터 근로자 300명 이상 사업장은 주 52시간 근무제를 이미 시행하고 있다. 50인 이상 299인 이하 사업장은 오는 2020년 1월부터, 5인 이상 49인 이하 사업장은 2021년 7월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될 계획이다.
노동시간 단축의 가장 핵심적인 취지는 역시 ‘저녁이 있는 삶’을 중요시하는 삶의 질 개선이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많은 근로자들은 자기계발에 투자하고 체육, 문화, 예술, 여행 등 레저문화를 즐기며,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신규 일자리 창출은 물론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뜻의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을 실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를 통해 근로자의 삶의 질은 나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모두가 워라밸을 중요시하는 근로시간 단축을 반기는 것만은 아니다. 많은 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인력난과 인건비 상승, 수익성악화, 경쟁력 하락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전주상공회의소가 최근 도내 8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기업의 의견을 조사한 결과,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3곳 중 1곳(35%)은 아직까지 뚜렷한 대응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는 ‘외부 수요 변화에 대한 생산능력 저하(38.3%)’가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업체는 외부의 수요에 따라 생산량을 조절해야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근로시간 단축이 제대로 정착하려면 기업의 노동생산성 향상이 급선무이다. 그렇다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탄력근로제’를 비롯한 다양한 유연근무제를 도입하여 이용할 수 있다. 탄력근로제란 업무량이 많은 주에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하더라도 업무량이 적은 시기에 근로시간을 줄임으로써 평균적으로 주52시간 한도를 맞추도록 하는 것이다. 특정 시기에 업무가 집중되는 사업체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제도이다. 또한 근로자가 자신의 근로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정하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나 근로시간이나 업무수행방법을 근로자의 재량에 맡기는 ‘재량 근로시간제’ 등을 검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성적으로 초과근무가 이뤄지거나 각기 다른 근무 여건을 가지고 있는 기업에서는 탄력근로제나 선택적 근로시간제 등과 같은 유연근무제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이러한 경우에는 재직자의 직무능력 향상을 통해 노동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난해 전북지역인적자원개발위원회에서 조사한 2018년 인력 및 훈련 수요조사 결과에 따르면 재직자 직무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훈련 수요는 총 53,603명으로 전년 대비 17,731명(42,4%) 증가하였으며, 반대로 채용예정자(구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훈련 수요는 1,392명으로 전년 대비 557명(28.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업의 인건비 부담 가중으로 인해 신규채용자에 대한 수요 보다 현재 기업에 근로중인 재직자의 보다 전문성을 요구하는 단계의 훈련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자 하는 기업의 의지를 담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일과 삶의 균형을 말하는 워라밸은 누구나 꿈꾸는 일이며, 이는 주 52시간 근무제로 다가왔다. 주 52시간 근로제가 적용된다고 할지라도 한국은 여전히 장시간 근로 국가이다. 유럽연합(EU)은 주당 노동시간을 최장 48시간으로 제한하였고, 독일과 프랑스는 주 35시간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또한 야근이 당연시 됐던 기성세대와 달리 2030세대는 어려운 취업난 속에서도 적당히 벌면서 잘 살기를 바란다. 돈 보다는 나의 삶을 잃지 않길 바라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업이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재직자 교육에 활발히 참여하고 근로자의 학습활동이 기업 경쟁력으로 선순환 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면 양질의 인력도 확보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주 52시간이 안착하기까지 숱한 시행착오와 진통이 예상된다. 여전히 ‘저녁이 있는 삶보다 저녁거리를 살 수 있는 삶을 달라’고 하는 목소리도 높고 멘붕(?)에 빠진 기업들이 많다. 일과 삶의 균형도 중요하지만 제도와 현실의 균형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많이 본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