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5년, 전북은 안전한가
세월호 참사 5년, 전북은 안전한가
  • 권동혁 기자
  • 승인 2019.04.15 1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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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6일 그날의 기억, 그리고 지금은? 

 

 

2014년 4월16일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을 포함해 476명의 승객을 태우고 인천에서 제주로 가던 세월호가 전남 진도 앞 해상에서 침몰한지 오늘로 꼭 5년이 됐다. 당시 사고로 172명이 침몰 전 구출됐지만 나머지는 차가운 바닷물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실종자 5명은 아직도 시신을 찾지 못해 미수습자란 꼬리표를 달고 있다. 국가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대형 재난을 총괄하는 콘트롤타워를 만들고, 매년 국가안전대진단을 통해 재난 예방과 신속한 대처를 약속하고 있다. 하지만 그날의 사고를 통해 우리 사회가 정말로 안전해지고 국민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됐느냐는 질문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달린다. 새전북신문은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아 그날의 아픔을 되돌아보고, 전북의 안전도는 어느 수준인지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프롤로그 ; 그날의 기억, 그리고 지금]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몽글몽글 코끝에 내려앉았다. 뭉게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이 수채화처럼 떨어지는 연분홍 벚꽃잎 위에 한들거리던 2014년 4월16일. 황급한 전화를 받고 찾아간 남녘의 바다는 세상모르는 듯 평화롭기만 했다. 저 멀리 맹골수도의 성난 바다에서 들려온 참극의 소식을 모른 채. <관련기사 6면>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은 아비귀환에서 빠져나온 생존자들의 울음과 탄식으로 뒤덮였다. 온몸이 물에 젖은 아이들은 진도 부녀회에서 전해준 모포 한 장씩을 덮고 애타게 친구와 선생님을 찾아 해매다 그대로 차디찬 바닥에 주저앉았다. “OO이 봤어? OO이는 못 나온거야? 우리 선생님은?”
그날, 수학여행을 떠나던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을 포함해 476명의 승객을 태우고 인천을 떠나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는 조류가 거센 진도 앞바다의 맹골수도에서 급변침을 하며 침몰했다. 오전 8시51분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단원고 학생이 119에 구조요청 신고를 했다. 선내에서는 “침착하게 자리에 앉아 기다려라. 이동하지 말라”는 방송이 계속 흘러나왔다. 9시35분 해경 경비정 ‘123정’이 사고 해역에 도착했다. 속옷 차림의 선장을 포함한 기관부 선원들이 맨 먼저 경비정으로 탈출했다. 조타실 선원들도 뒤를 이었다. 인근을 지나던 어선들은 필사적으로 승객들을 구조하기 위해 뛰어들었지만 123정은 침몰하는 세월호에 빨려 들어갈 것을 우려해 저 멀리 떨어졌다. 그렇게 172명이 침몰 전 세월호에서 구조됐지만 이후에 탈출에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그달 23일은 사고 현장에서 두 달여 동안 머물면서 가장 참혹했던 밤이었다.
이제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알려진 ‘팽목항’은 애끓는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부둣가에는 아이들의 명찰을 단 부모들로 가득했다. 해경 경비정은 세월호 선체와 인근 해역에서 찾아낸 시신을 한구씩 하얀 천막 속 간이영안소로 옮겼다. “OOO번 시신입니다. 성별은 여자, 키는 1m60㎝가량, 오른쪽 귀에 검은색 귀고리….” 수백명의 실종자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검시관의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파도소리와 함께 찰랑거렸다. 
“어! 어! 어!” 4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한 여성이 그대로 쓰러졌다. “내 새끼, 왜 이렇게 차갑냐. 엄마다. 말 좀 해봐! 제발” 영안소 천막문 사이로 하얀 가운을 덮어쓴 딸아이의 시신 앞에서 절규보다 더한 통곡을 쏟아내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의 창백한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은 아버지의 뒷모습은 “끅끅” 들썩거리기만 했다. 영안소 밖에 서 있던 한 경찰은 “이거이 뭔일이여. 참말로 눈뜨고는 못봐주것구만”하며 두 손가락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구조단은 이날 사고 발생 이후 가장 많은 38구의 시신을 찾아 육지로 옮겼다. 하지만 진도의 바다에는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5명이 남아있다. 그들의 유가족은 끝내 기다리던 이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시신 없는 장례를 치렀다. 

오늘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참혹한 사고 중 하나로 기록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5년째다. 정부는 그동안 ‘안전한 국가’를 국정 최우선 과제로 택할 만큼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했다. 2013년 국민안전처를 만들고, 2017년에는 행정안전부에 재난안전관리본부를 탄생시켜 해당 부처가 재난 대응을 총괄하게 했다. 매년 국가안전대진단이란 이름을 붙여 점검하고 훈련하기를 반복, 또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물음표는 여전히 남는다. ‘그만큼 대한민국은 안전해졌을까?’ 온 나라를 공포로 몰고 간 메르스 사태와 각종 대형 화재, 사건·사고 등은 이런 물음표의 색깔을 더욱 진하게 한다.
시야를 넓히지 않고 전북만 보더라도 적지 않은 사건·사고들이 이어졌다. 모두가 국가 안전과 국민 생명을 강조한 세월호 참사 이후 터진 것들이다. 
2016년 9월 전북지역 최고 상급 병원에서는 기도 차지 않을 일이 생겼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아이가 견인차에 치어 전북대학교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이송됐지만 병원 측이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한 것이다. 아이는 사고 발생 7시간 후에 헬기편으로 수원 아주대학교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OCI 군산공장에서는 유독물질이 누출되는 사고가 잇따랐다. 자칫 초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11월에만 2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앞선 달에도 질소가 누출돼 근로자 8명이 다쳤고, 그해 7월에는 황인 유출, 2015년에는 사염화규소 누출로 16명의 인명피해가 났다. “철저히 점검했다”고 했는데도 생긴 일들이다.
사건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지난해 6월에는 주점 주인과 실랑이를 한 50대 선원이 업소에 불을 질러 34명의 사상자가 나기도 했다. 과연 전북은 5년 전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은 안전한 곳인가 하는 물음표를 하나씩 되짚어 봐야 할 때다. 희생자들을 차가운 시신으로 끌어안아야 했던 유가족의 심정으로. /권동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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