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0년09월23일19시51분( Wednesday ) Sing up Log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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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자의 슬픔

“태어나는 것은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선택해야”
조준모-방송인
조준모-방송인



지난 8일 새벽,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창업주인 故조중훈 회장의 장남으로 1949년 인천에서 태어나 향년 70세의 나이로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다. 수송으로 국가에 보답한다는 ‘수송보국(輸送報國)’을 경영철학으로 故조중훈 회장이 항공업에 첫발을 내딛었다면, 조양호 회장은 성장 기틀을 마련했다 할 수 있다. 故조양호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1992년 대한항공 사장취임, 1999년 대한한공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으로 취임하며 항만?항공분야의 기업 경영인으로서의 입지뿐만 아니라, 스포츠 외교에도 큰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대기업 총수라거나, 공과를 떠나 모든 죽음은 안타깝다. 그런데 조양호 회장의 별세소식에 애도의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씁쓸함을 주고 있다. 갑작스러움 때문인지 대다수의 국민들이 조회장의 죽음에 대해 모르고 있거나, 심지어 조양호 회장이 누구인지 조차 몰랐으나 땅콩회항 물의를 일으켰던 조현아 대한항공 전부사장의 아버지로 인지하고 있는 국민들이 많았다고 한다. 한진 일가의 갑질 파문과 비리에 사회적 물의와 공분을 사고 있는 시기에 들려 온 부고이다 보니, “조 회장의 사망 안타깝지만, 가족들의 갑질은 기억될 것”과 같은 뉘앙스의 기사가 쏟아지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장녀 조현아, 차녀 조현민, 부인 이명희 모두 갑질로 논란이 된바 있다. 본인 또한 갑질로 유명하다. 조양호 일가는 어느새 국민들에게 갑질의 아이콘이 되었다. 내부자들의 고발이나 동영상으로 폭로된 로열 패밀리의 갑질에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어디 그 뿐인가, 밀수 의혹, 면세품 부당이익, 故조양호 회장의 270억 횡령, 배임 등 비리는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어, 수사기관과 관세청,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대한항공 일가의 불법 여부를 캐는 데 앞다퉈 나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망원인은 섬유질 결합 조직이 과도하게 누적돼 폐 벽이 두꺼워지고, 혈액에 공급되는 산소량이 줄어들며 호흡 장애를 일으키는 폐섬유증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부의 책임을 질타하는 정치적 목소리에 동조하고 싶지는 않으나, 매서운 사정의 바람에 당사자가 받았을 스트레스의 영향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번 주주총회에서 대표 이사직에서 쫓겨나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하지 않았던가.

조양호 회장의 사망소식에 한진 관련주들이 급등했다고 한다. 한 회사의 총수가 죽었는데 회사의 주가가 떨어지지 않고 올랐다고 하는 아이러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과 인의에 대해 언급하면서 ‘인의’라고 하는 관념에 대해 일상생활에서 적극적으로 실천할 것을 요구했다. 현실 삶 속에서 끊임없는 가치충돌의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두 가지의 가치를 지향한다고 했다. 하나는 금전, 권력, 지위, 명예, 향락 등을 포함하는 외면적 가치, 다른 하나는 인격, 지식, 예술, 자유, 우정, 정의 등을 포함하는 내면적 가치가 그것이다. 외면적 가치의 달성과 유지, 독점을 위해 공평하지 않는 방법을 동원하는 사회적 강자나 부자들의 위선을 우려하기도 했다.

한진 일가에서 시작된 오너일가의 여러 잡음들을 시켜보면서 가치의 균형차가 너무나 크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어긋난 가치 기준과 행동이 한 사람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지 않았을까. ‘사이좋게 협력해 나가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들었다. 내면적 가치와 외면적 가치의 협력적 균형을 이룬 삶이었다면. 가족뿐 아니라,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협력하는 더불어 함께하는 삶이었다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좀 더 애틋하지 않았을까? 어떻게 살 것인가, 아니, 어떻게 죽을 것인가, 수송보국을 꿈꾸던 故조양호 회장이 우리에게 남긴 화두가 아닐까 한다. 태어나는 것은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는 선택할 수 있다. 내가 우리 은하에 다년 간 흔적을 어디에 어떻게 남길 것인가, 남은 반백은 그 질문에 답하며 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