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연 교수의 전북문화재 이야기]춘향과 사랑의 콘텐츠 도시 `남원’
[이승연 교수의 전북문화재 이야기]춘향과 사랑의 콘텐츠 도시 `남원’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5.2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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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의 러브스토리 고향 남원에서
성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의 길을 따라 가보자”
이 승 연-서예가,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초빙교수
이 승 연-서예가,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초빙교수

남원은 오래전부터 춘향의 도시로 인식되어 왔다. 조선후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약 400여년동안 남원과 춘향을 소재로 한 문화콘텐츠는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이제는 세계적인 명소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즉 설화와 판소리, 소설의 주인공으로 인해 한 고을이 웃고 우는 배경이 되어 이제는 무형문화재의 온상지가 된 것이다. 이는 실존인물인지도 알 수 없는 춘향이의 사랑이야기가 남원을 중심으로 구전되어 내려오다가 조선후기에 이르러 ‘춘향가’라는 판소리로 창작되었고, 곧 이어 작자미상의 소설 「춘향전」이 탄생되었으니 우리의 값진 무형자산인 것이다. 이는 단순한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엄격했던 상반사회에서 신분과 계급을 초월한 사랑의 완성을 대주제로 하면서도 지배 계급의 부조리와 권력남용, 전횡에 저항하는 한 여성의 절개를 통해 사회적인 모순을 동시에 폭로하고, 암행어사라는 정의를 등장시켜 다이나믹한 반전을 꾀하므로써 당시 임진왜란 후 피폐했던 남원 지역 백성들의 상처를 치유시켜주는 예술치료 역할도 겸하였다.
판소리 12마당으로 엮어진 춘향가는 성춘향과 이몽룡의 사랑 이야기를 소재로 다루면서 구절구절 애절한 이별의 고통과 수청을 거부하고 절개를 지켜내는 과정에서의 절규는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여내기에 충분하였기에 더더욱 민초들의 가슴 속에 깊이 파고들게 되었다. 내용은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과 퇴기 월매의 딸 춘향이가 광한루에서 만나 사랑을 나누다가, 남원 부사가 내직으로 승차하여 서울로 돌아가자 두 사람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이별한다. 새로 부임한 신관 사또가 춘향에게 회유와 협박으로 수청을 강요하지만, 춘향은 일부종사를 내세워 거역하다가 모진 매를 맞고 옥에 갇혀 죽을 지경에 이른다. 서울로 올라간 이몽룡은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내려와 탐관오리였던 남원 부사를 봉고파직(封庫罷職) 시키고, 춘향을 구출하여 함께 서울로 올라가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엔딩이지만 당시 사회상을 고발하는 형식을 내함하고 있기도 한다.

이러한 춘향가가 민중 예술의 하나로 소리판에 모습을 드러낸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충청도 목천(木川)의 만화(晩華) 유진한(柳振漢,1711-1791)이 1753년 호남을 여행하면서 춘향가를 듣고 돌아와 이듬해인 1754년에 지은 「가사춘향가이백구(歌詞春香歌二百句)」(『만화집(晩華集)』)에 춘향가의 기록이 있으니 이미 18세기 중엽에는 골격을 갖춘 춘향가가 호남 지역에서 널리 불려졌고, 양반층의 관심을 끌 수 있을 만큼 독자적인 예술성을 확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춘향전」이 소설로 출현하여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며 서민들 뿐만아니라 양반계층으로 파고 들어가 국민소설이 되었으며, 처음 등장했다고 추측되는 영조~정조대이후 이본들이 100여 편이 넘는다. 대표적인 「춘향전」 판본으로는 1754년 유진한의 한시본을 비롯하여 경판본, 안성채본, 완판본, 고대본, 일사본, 신재효본 등이 있다.
따라서 판소리 ‘춘향가’와 소설 「춘향전」은 남원의 큰 문화자산으로, 주인공인 성춘향과 이몽룡의 러브스토리와 데이트장소는 관광콘텐츠화 되어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영원한 사랑의 무대였던 광한루(廣寒樓, 보물제281호)와 오작교(烏鵲橋), 춘향의 집인 월매 집, 춘향과 이몽룡이 헤어진 오리정(五里亭), 박석고개, 암행어사로 돌아온 이몽룡과의 해후 장소인 남원부청, ‘마고열녀춘향지묘(麻姑烈女春香之墓)’라고 쓰여진 비석이 세워진 춘향묘, 춘향영정과 초상화가 모셔진 춘향사당 등이 중요 관광자원이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광한루는 조선초기의 명정승인 황희(黃喜, 1363~1452)가 남원으로 유배됐을 때 지은 것으로, 원래 이름은 광통루(廣通樓)였으나 세조 때 정인지(鄭麟趾, 1396~1478)가 그 수려한 경치에 감탄해 흡사 달나라에 있는 궁전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처럼 아름답다 하여 광한루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명정승들의 유래보다 춘향이와 이몽룡의 데이트 장소로 더욱 유명해졌으니 남원의 대표적인 보물은 광한루와 춘향이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이들의 슬프고도 아름다웠던 러브스토리를 애절하게 담은 춘향가를 흥얼거리면서 무형문화재의 도시 남원일대를 관광해봄은 매우 멋진 여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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