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무정읍 시무민주, 그리고 시무실록
약무정읍 시무민주, 그리고 시무실록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5.2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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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이 없었다면 민주주의도,
조선왕조실록도 없다”
유 진 섭-정읍시장
유 진 섭-정읍시장

황토현 전승일인 5월 11일이 동학농민혁명 국가 기념일로 제정됐다. 그리고 지난 11일 첫 국가기념식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있었다. 더불어 올해로 52회째인 황토현 동학농민혁명 기념제가 덕천면 황토현 전적(黃土峴 戰蹟, 사적 제295호)에서 열렸다. 오전에는 서울 국가기념식에, 이어 오후에는 황토현의 기념식에 참석하느라 몸은 고됐지만 가슴은 벅차고 감회가 새로웠다. 서울 기념식을 두고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동학농민혁명(이하 동학혁명)이 가진 전국적, 세계사적 의미에서 본다면 첫 해 서울 개최도 의미 있는 일이다. 특히 서울 입성을 꿈꿨던 농민군들의 125년 만의 서울 입성이기도 하지 않은가! 하지만 뜻있는 많은 이들이 동학혁명 국가 기념식만큼은 혁명의 발원지이자 상징인 정읍에서 열리는 것을 소망하는 만큼 내년에는 꼭 정읍에서 열리기를 기대한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동학농민혁명 국가 기념공원이나 녹두장군 전봉준 거리 조성 마무리 등 제반 여건이 갖춰지면 국가기념식은 당연히 정읍에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동학혁명의 현대사적 의미는 무얼까? 단언컨대, 동학혁명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뿌리다. 1894년 정읍에서 봉기하지 않았다면, 또 관군과 처음으로 맞선 황토현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했다면, 지금 우리 모습은 지금과는 사뭇 다를지 모른다. 동학혁명은 3.1만세운동, 4.19혁명, 6.10 민중항쟁, 2017년 시민촛불혁명으로 이어지며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완성시켰다. “약무정읍(若無井邑) 시무민주(是無民主), 정읍(동학농민혁명)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민주주의도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또 정읍을 광주 5.18 민주화 운동 등과 연계해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민주화의 성지로 키워 가야 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정읍에서 외세와 부패한 권력에 맞선, 동학혁명이 일어났던 배경은 무얼까? 자신있게 답한다. 동학혁명은 조선왕조실록과 태조어진을 지켜낸 정읍인들의 기상과 역사적 사명감에서 출발한다. 약무정읍 시무민주(若無井邑 是無民主)는 ‘정읍이 없었다면 조선왕조실록은 없다, 즉 약무정읍(若無井邑) 시무실록(是無實錄)’에 근원을 두고 있다. 여기에서 실록은 조선왕조실록 그 중에서 태조에서 명종에서 이르는, 조선 전기 200년을 담은 기록이다. 국보 제151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이하 실록)은 조선 초기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왕들의 역사를 담은 기록물이다. 세계적으로 실록은 여럿 있지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된 실록은 조선왕조실록이 유일하다.
바로 이 실록이 내장산, 즉 정읍이 있기에 지금까지 존재한다. 임진왜란 당시 4대 사고 중 서울 춘추관과 충주, 성주 3곳의 실록이 불타버리고 전주사고(전주 경기전)마저 소실될 위험에 처한다. 이때 태인의 선비 손홍록과 안의를 비롯한 희묵대사 등 수 많은 정읍 사람들이 실록과 태조어진(국보 제317호) 지키기에 나선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전주사고에 보관돼 있던 실록 805권을 예순 여 개 궤짝에 담아 태조어진과 함께 내장산까지 옮겨 370여 일 동안 지켜냈다. 이후 실록은 선조가 피신해 있는 해주까지 이송됐다가 영변의 묘향산으로, 다시 강화도로 옮겨졌는데 이때 실록을 옮긴 것도 손홍록과 안의였다.(*전봉준, 김개남과 함께 혁명을 이끌었던 손화중은 손홍록의 후손이다)
안의와 손홍록은 실록과 어진을 내장산으로 이안하고 지켜낸 과정을 상세히 담은 기록물인 임계기사(壬癸記事, 전북도 유형문화재 제245호)를 남겼다. 임계기사 안에는 특히, 수직상체일기(守直相遞日記, 일종의 당직일지)가 수록돼 있는데, 충무공 이순신이 임진왜란 중 남긴 기록인 난중일기(亂中日記)에 빗대 ‘안의의 난중일기’로 불린다.
충무공은 왜란 중인 1593년 사헌부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에서 ‘약무호남(若無湖南) 시무국가(是無國家),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도 없었을 것이다’는 말을 남긴다. 약무정읍 시무민주 그리고 시무실록의 뿌리인 셈인데, 충무공이 왜란 발발 직전인 1591년 3월 전라좌수사로 부임하기 직전 정읍 초대현감을 지냈다는 인연이 새롭게 다가온다.
若無井邑 是無民主, 그리고 是無實錄이다. 정읍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갖자. 역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자랑스러운 선조들의 후손임을 잊지 말자. 그 자긍심으로 정읍 발전, 나아가 대한민국 발전의 큰 힘이 되기를 소망한다. 더불어 모든 이들이 국사(國史)는 결국 지역의 역사가 모인 것임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이는 곧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역사에 대한 자긍심과 더불어 다른 지역 역사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족 하나, 문화재청은 2018년 정읍 사람들이 실록과 어진을 내장산으로 옮긴 날인 6월 22일(당시 음력 6월 22일)을 ‘문화재지킴이의 날’로 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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